서대문구 연세로5다길 46

 

신촌은 양면적인 공간이다. 청춘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번화가를 벗어나면 한적한 원룸촌이 펼쳐진다. 유흥과 일상의 경계에서 신촌의 다양한 모습을 담는 공간이 있다.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펍 ‘일상의 온도’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매장 소개 부탁한다.

A. ‘만인의 꿈’에서 ‘일상의 온도’를 운영하는 김성만이다. 만인의 꿈은 청년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신촌과 강남 지역에서 30여 개의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데, 200명 정도의 청년들이 입주해있다. 일상의 온도는 셰어하우스 입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길 바라며 개업한 펍이다. 매장 직원도 입주민이고, 입주민을 위한 행사도 열고 있다. 물론 입주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Q. 상업적인 목표만 좇지 않고 커뮤니티 공간을 지향하다 보니 매장을 운영하는 방식이 특별할 것 같다.

A. 입주민 청년들에게 건강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유연한 근무시간이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시험 기간 같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많이 곤란했다. 아르바이트 일정 때문에 원하는 일상을 살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지 않나. 우리 직원들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해외여행 같은 개인 일정이 생기면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바꿔주고 있다.

또 이곳에서의 일과 본업을 병행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많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자신의 본업에 소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에게 매장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직원이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안주가 있다거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직원이 공간 배치를 바꾸고 싶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일상의 온도에서 직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

 

Q. 매일 오늘의 문장을 가게 앞에 적어놓는 것도 직원이 낸 아이디어인가.

A. 맞다. 캘리그라피 업체를 운영하는 직원이 좋아하는 문장을 손님들과 나누고 싶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입간판에 매일 다른 문장을 적어 가게 앞 골목에 내놓는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꾸준히 하다 보니 일상의 온도만의 특색이 됐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만히 서서 문장을 곱씹어 볼 때, 일상의 온도가 지향하는 고즈넉함과 어울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도시에서의 삶은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쁘지 않나. 분주하게 살던 사람들이 문장을 읽으며 잠깐이나마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것 같아 기쁘다.

 

Q. 신촌의 다른 술집들에 비해 분위기가 고요하다. 매장도 번화가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가.

A. 일상의 온도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으면 좋겠다. 신촌은 청춘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많이 소비되는데,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특히 일상의 온도는 원룸이 밀집된 지역에 자리해있다. 번화가에서 청춘들이 젊음을 즐길 수 있다면 일상의 온도에선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른 술집들과 달리 회전율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회전율을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불편한 의자를 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빠른 비트의 음악을 트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쿠션이 있는 편안한 가구만 가져다 놓았고, 음악도 잔잔한 노래 위주로 선곡한다. 화려한 신촌 속의 고즈넉한 공간이 되고 싶다.

 

Q. 매장 내부에 일기서점을 운영한다. 일기서점은 무엇인가.

A. 일상의 온도가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다들 어렸을 때 한 번쯤 일기를 써보지 않았나. 일기는 나만 보는 글이기 때문에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각자의 고민과 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장에는 두 종류의 일기장이 배치돼있다. 교사, 직업군인, 도박 중독자 등 특정 사람들의 일기를 엮은 책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주제로 쓴 일기들만 엮은 책이 있다. 전자는 대여만 가능하고, 후자는 판매까지 한다. 일기서점뿐 아니라 일기 낭독회를 열어서 서로의 일기를 공유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일상을 나누며 따뜻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Q. 매장을 운영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A.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다. (웃음) 한 번은 단골손님에게 큰 꽃다발을 받은 적이 있다. 선물로 받았는데 둘 곳이 없다며 가져오셨는데 알고 보니 꽃집에 들러 일부러 사 오신 거였다. 매장과 꽃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이처럼 손님들과 함께 일상의 온도를 만들어가는 순간들이 너무 좋다.

다양한 신촌 주민들이 매장을 찾을 때도 뿌듯하다. 한 번은 이 골목에서 곱창집, 삼겹살집, 횟집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매장 앞을 서성인 적이 있었다. 왜 들어오시지 않고 서 계시냐고 물으니, 옷에서 냄새가 많이 나 민폐가 될 것 같다고 대답하셨다. 편하게 들어오시라고 말씀드린 후로는 가끔 퇴근길에 들러 맥주 한잔 씩 하고 가신다. 골목의 색소폰 학원 원장님, 닭꼬치집 사장님들도 자주 오신다. 반려견 커뮤니티에 부담 없이 개를 데려갈 수 있는 공간으로 소문이 났는지 요즘에는 강아지들도 많이 온다.

 

Q. 신촌에서 어떤 공간이 되고 싶은가.

A. 신촌의 사랑방이 되고 싶다. 신촌 주민들 누구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시끄러운 것은 싫지만 신촌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는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분주한 도시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

 

일상의 온도는 오늘도 아름다운 문장을 골목에 적어놓은 채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맞고 있다. 신촌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시끄러운 술집은 부담스럽다면 한 번 찾아보는 게 어떨까. 잔잔한 노래 속에서 은은하게 번지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사진 박민진 기자
katarin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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