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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여성운동사 120년 살펴보기
  • 이희연 기자
  • 승인 2019.11.03 23:02
  • 호수 53
  • 댓글 0

여성운동. 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여성들의 조직적·지속적인 사회운동을 이르는 말이다. 가부장제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한국에서 여성은 남성과 평등한 지위와 권리를 요구해왔다.

#1890년~1910년대 - 여성단체의 설립과 여성운동의 시작
한국 여성운동의 시작은 개화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로 들어온 서구 문물과 사상은 ‘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에게 확산했다. 그간 교육에서 배제돼왔음을 깨달은 여성들은 단체를 조직했다. ‘찬양회’와 ‘여우회’가 한국 최초의 여성단체다. ‘여우회’는 순성 여학교를 설립했고, 경복궁 앞에서 최초의 축첩 반대 연좌시위*를 벌였다. 이 외에도 여러 여성단체가 등장했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부인회’, ‘혈성단애국부인회’, ‘대한민국애국부인회’ 등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국채보상운동이 진행됐다.

#1910년~1940년대 - 근우회의 전국적 여성운동 조직
일제강점기 여성운동은 크게 두 분파로 나뉜다. 바로 부르주아 여성운동과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이다. 전자는 남녀의 평등한 권리 확립을 위해 봉건 질서의 철폐를 주장했다. 한편 후자는 차별에 대항하는 여성의 투쟁을 필연적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지원하는 계급 운동이었다. 두 흐름은 1927년 ‘근우회’의 창립 이후 전국적인 여성운동 조직으로 통합됐다. 민족주의·자유주의계 여성단체와 사회주의계 여성단체를 통합한 것이다. 근우회는 가부장제의 철폐를 주장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구조 극복을 외치며 전국적인 운동을 전개했다.

#1950년대 - 전쟁으로 인한 여성운동의 침체기
일제강점기 여성운동의 두 흐름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다. 부르주아 여성운동은 친일 기독교계 여성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조선여자국민당’, ‘한국독립촉성애국부인회’ 등을 조직해 우익 정치단체를 지지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은 독립 국가 건설과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들은 노동여성, 농가여성 등이 포함된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했으며, 특히 공창제**의 폐지에 기여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은 한국 전쟁 이후 정부의 탄압으로 소멸했다. 부르주아 여성단체는 구호사업을 펼치며 명맥을 지속해나갔다.

#1960년~1970년대 - 사회민주화운동으로서의 여성운동
이 시기에는 부르주아 여성단체의 활동이 주를 이뤘다. 이들의 활동은 대부분 유신정권을 지지하는 것에서 그쳤다. 인권운동으로서의 성격은 매우 약했다. 하지만 1973년에는 62개 여성단체가 ‘범여성 가족법 개정촉진회’를 구성해 운동을 펼쳤고, 성차별조항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가족법이 개정됐다. 한편 기독교계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성 교육운동을 전개했다.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가족법 개정 운동’과 ‘미인대회 폐지 운동’을 벌였고, 이때 만들어진 ‘여성해방노동자기수회’는 민주화 운동과 여성 노동운동의 기반이 됐다.

#1980년대 - 이론적·체계적 여성운동의 본격화
이 시기 여성운동의 목표는 여성해방이었다. ‘여성평우회’의 설립 이후 ‘여성의 전화’,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의 여성부’, ‘또 하나의 문화’, ‘교회여성운동단체’가 차례로 조직돼 여성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여성평우회’는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기제를 가부장제로 설정하고, 여성운동이 타파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했다. 이들은 ‘기층여성’***에 초점을 맞춰 여성운동의 주체와 대상을 정했다. 그리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저항운동과 불매운동 등을 전개했고, 기층여성 운동 지원을 위한 ‘여성생존권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6월 민주항쟁 이후 우후죽순 전국에 생겨난 여성단체들은, 양적 성장과 함께 여성운동의 내용적 분화를 이뤘다. 노동 분야의 ‘한국여성노동자회’, 주부들이 중심이 된 ‘한국여성민우회’의 설립이 그러한 양상을 보여준다. 다양한 단체들이 곳곳에 자리 잡았고, 여성운동은 지역화와 대중화의 기틀을 세웠다.

#1990년대 - 새로운 여성운동 세대의 등장
1990년대에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운동영역이 급진적으로 확장됐고, 이성애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인권운동이 전개됐다. 이 시기부터 성폭력을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조화된 사회적 폭력’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여성의 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방지 운동을 전개했으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제기했다. 또한, 출판과 교육 활동으로 여성운동이 활성화됐다. 여성주의 소설이 등장했고,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설립돼 여성주의 문화예술가들이 다양한 단체와 연대하며 활동했다.
이 시기에는 '영(young) 페미니스트'가 등장했다. 이들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장한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나 자신이 행복한 운동’으로 사이버 활동, 소모임, 여성적 글쓰기*****, 대학 내 ‘성 정치 문화제’, ‘월경 페스티벌’ 등을 주도했다. 더불어 기존의 한국 여성운동을 '올드(old) 페미니즘'이라 규정하고 비판했다. 기존의 비대하고 관료주의적인 여성운동은 급진적인 쟁점을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올드 페미니즘이 집중했던 참정권·투표권등의 제도적 성 평등보다는 섹슈얼리티, 가족, 군사, 언론, 스포츠 등 일상에서의 평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관점은 여성운동의 쟁점과 범위를 확장했다.

#2000년 이후 - 여성운동의 다양화
2000년 이후에는 여성운동의 주체와 영역이 확대되며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던 여성 장애인, 소수자 여성, 이주여성이 운동의 주체로 등장했다. 여성 장애인들은 그들의 권익 증진을 위해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을 설립했다. 이주여성 인권을 위한 모임을 비롯해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 WAW’ 등이 조직됐다.
특히 여성주의가 영화제, 미술제, 음악제 등 문화 운동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의 주도 아래 개최되고 있는 ‘서울여성영화제’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변화는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버 페미니즘’의 등장이다. 서지현 검사의 고발 이후, 국제적 흐름에 발맞춘 ‘미투 운동’이 확산했고, 이는 SNS ‘해시태그 운동’의 시작이 됐다. ‘#문단_내_성폭력’,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등 다양한 움직임이 여성운동을 대중화했다.


*축첩 반대 연좌시위: 첩을 거느리는 제도에 반대하는 시위를 말한다. 여우회는 고종황제에게 축첩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한 지아비가 두 아내를 거느린 것은 인륜을 거스르는 길이며, 덕과 의를 잃는 행위”라고 쓰인 깃발을 덕수궁에 내걸었다.
**공창제: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실시됐던 성매매 관리제도. 당시 포주와 남성의 성매매를 합법화했다.
***기층여성: 서민 대중을 이르는 말인 ‘기층’과 ‘여성’의 합성어로, 서민 여성 집단을 의미한다.
****섹슈얼리티: 성, 성적 총체, 성 의식.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성욕, 성애의 대상 성교 등 넓은 의미의 성, 성적인 것 전체를 말한다.
*****여성적 글쓰기: 여성주의 문학에서 논의되는 새로운 글쓰기의 개념이다. 기존의 글쓰기가 억압해온 여성성을 확인하고, 기존의 문화에서 폄하됐던 육체, 성적 욕망, 향수, 모성 등을 남성과는 구분되는 여성적 특성으로 간주했다.

글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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