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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잠뎐] 11월
  • 조재호 박민진 기자
  • 승인 2019.11.03 22:57
  • 호수 53
  • 댓글 0

신촌 연세로 중앙에는 빨간데 목이 굽어 그 모양이 마치 빨간 샤워기 같기도 하고, 빨간 지팡이 같기도 한 물건이 있다. 그 쓰임이 뭔고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그 앞에 모여 서로를 기다리고 함께 안부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때 신촌을 지나던 한 나그네가 와서 이르기를, ‘이것은 빨간 잠수경이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이를 빨간 잠망경으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잠수경이었다. 마침 빨간 잠수경 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난스럽게 재미나기로, 『The Y』 취재단이 이를 새겨듣고 기록하였다.

#뜻하지 않은 가족 나들이를 왔어요, 이정윤(32)씨

Q. 신촌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오늘 연세로에서 행사가 열리는데, 거기서 제 남편이 강연을 해서 겸사겸사 방문했어요. 신촌에 올 일이 별로 없는데, 남편 덕분에 모처럼 방문했네요. 남편이 같이 가자고 조르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랑 같이 왔더니 본의 아니게 가족 나들이가 됐어요. (웃음)

Q. 남편이 참여한 행사는 무엇이고, 어떤 주제로 강연을 하러 왔나요?
A. 남편이 참여한 행사는 ‘스타트업 거리 축제 IF 2019’라는 행사예요. 신생 벤처기업이 모여 대중에게 제품을 선보이고,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을 두게 만들자는 취지의 행사예요. 저희 남편은 스타트업 성장요건과 인력 채용 방식에 대해서 강연을 하러 왔습니다.

Q. 오랜만에 방문한 신촌은 어떤 느낌인가요?
A. 의도한 가족 나들이는 아니었지만, 나들이로 오기에도 괜찮은 곳인 것 같아요. 우선 ‘차 없는 거리’ 덕분에 편하게 유모차를 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만 제가 대학을 신촌에서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신촌이 대학가나 젊음의 거리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아요. 그보다 다양한 연령대가 모이는 활기찬 도시라는 느낌이 더 강하네요. 올 때마다 항상 새로운 곳이랄까? 아이가 크고 육아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남편이랑 데이트 오고 싶은 곳이에요.

#친구 아들 결혼식을 왔어요, 최영길(71)씨

Q. 신촌을 방문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오늘 친한 친구 아들이 결혼한다고 해서 신촌에 왔습니다. 연세대 알렌관에서 식을 올렸거든요. 결혼식장을 잘 만들어놨더라고요. 저도 그런 곳에서 식을 올렸어야 집사람한테 구박이라도 덜 받았을 텐데. 제가 결혼할 때는 나라가 너무 힘들어서 이런 좋은 결혼식장은커녕 결혼식 자체가 사치였죠. 옛 생각도 나고, 오늘은 친구 아들놈이 부러웠네요.

Q. 친구랑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가요?
A. 그 친구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하고 지낼지는 몰랐는데 살다 보니 가까운 친구가 돼 있네요. 그 친구랑 저랑 비슷한 구석이 없는데 오랜 친구가 된 게 아직도 신기해요. 인생은 알 수 없는 곳에서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Q. 신촌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A. 젊었을 때 자주 왔었어요. 세브란스에서 HIV 환자들을 위한 봉사를 했었거든요. 지금은 집에서 손주를 돌보지만, 그땐 신촌에서 나름대로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일을 했죠. 젊었을 땐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은 손주랑 노는 보육 할아버지예요. 그래서 여기 오면 젊었을 때 생각이 많이 나요.
제게 신촌은 항상 젊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에요. 가끔 세브란스나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신촌을 내려다보면 ‘젊음’이란 게 느껴져요. 이 나이 먹고 신촌을 와도 될까 하면서도 막상 오면 젊은 생기를 받아가는 것 같아서 올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내 청춘이 곧 신촌이었다!, 홍춘식(76)씨

Q. 신촌을 방문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오늘 연세로에서 창업 관련 행사가 있다고 해서 방문했어요. 젊은이들이 평소에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이번 행사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가서 뿌듯해요. 또 젊은이들의 창업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느껴져서 흐뭇한 하루였어요. 앞으로 청년들의 꿈을 보여주는 행사가 많았으면 좋겠네요.

Q. 신촌이랑은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A.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어요. 청춘의 대부분을 신촌에서 보냈죠. 지금 젊은 사람들은 홍대에 많이 놀러 가는 것 같던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신촌이 으뜸이었어요. 이화여대랑 가까워서 여학생들이랑 연애도 하고, 좋은 추억이 많죠. 대학 다닐 때 이대 캠퍼스를 놀러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여전히 그 꿈을 못 이룬 게 신촌을 올 때마다 생각나더라고요.

Q. 지금의 신촌은 어떤 느낌을 주나요?
A. 뭐 어릴 적에는 마냥 노는 게 즐거워서 놀기만 했었죠. 남학생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당구장에 술집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어쩌다 여학생과 같이 술이라도 먹을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만든 친구가 영웅 대접받았죠. 그 기억 때문에 올 때마다 젊었던 그 날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다들 신촌이 ‘젊음의 거리’라고들 하지요? 제게는 신촌이 제 청춘 그 자체였어요. 그래서 그 별명이 제게 가장 와닿아요.

조재호 기자
jaehocho@yonsei.ac.kr

사진 박민진 기자
katarina@yonsei.ac.kr

조재호 박민진 기자  jeahoch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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