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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뽑아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했었는데
  • 윤채원 사진영상부장(문정/언홍영·18)
  • 승인 2019.11.03 22:41
  • 호수 1840
  • 댓글 5
윤채원 사진영상부장
(문정/언홍영·18)

#내 이름은 김춘추
같은 과 친구들은 나를 ‘김춘추’라고 부른다. 뭐하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매일 ‘나 춘추해’라고 답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내 이름 대신 춘추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새내기 시절부터였다. 나는 1학년 1학기 때 우리신문사에 수습기자로 들어왔다. 그리고 2학년 2학기를 다니는 지금, 나는 아직도 「춘추」 사람 중 한 명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 시절의 절반을 우리신문사와 함께 보냈다. 「춘추」를 빼놓고는 내 대학 생활을 얘기할 수 없다.

새내기 시절의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목표였다.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뭔가를 하나씩 해나가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빛나는 사람의 기본 덕목은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일단 뭐라도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다 우리신문사의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를 발견했다. 평소 미디어에 관심이 있었고, 언론사니까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렇게 난 큰 고민 없이 지원서를 썼다.

#보라색 달력
우리신문사에 들어오면서 열심히 살고 싶다던 꿈은 단박에 이뤄졌다. 학교 안팎을 가리지 않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취재하러 다녔다. 나는 사진영상부 기자였기 때문에 항상 현장을 다녀야했다. 1시간짜리 취재를 위해 송도와 신촌을 3시간 왕복하는 일도 있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신문사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라며 뿌듯해했다. 「춘추」는 날 열심히 살게 했다. 달력 앱은 일정으로 가득 채워졌다. 일정마다 색을 칠할 수 있었는데, 우리신문사와 관련된 일정은 항상 보라색이었다. 보라색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참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촌을 방문해 내가 이토록 편하게 사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광화문 광장에서 불법 촬영을 규탄하는 시위 현장을 촬영하며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카메라와 기자증을 든 날은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었다.

#부족한 내새끼
뭐든지 자신이 최선을 다한 일은 애정을 갖게 된다. 기자 활동도 마찬가지다. ‘내새끼’ 같은 기사는 항상 빛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게 됐다. 그러나 학생과 기자를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분명히 사전 조사를 하고 취재 장소에 갔지만 내가 생각한 그림이 나오지 않기도 했다. 과제와 기사 마감이 겹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엉엉 운 적도 있었다. 시험 3일 전까지 영상 편집을 하는 날도 있었다.

열심히 살겠다고 들어온 곳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똑같이 열심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최선을 다했던 일이 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처음에는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았겠냐고 자책했다. 내가 정한 기준을 만족하지 못해, 취재에 도움을 준 사람들과 같이 기사를 쓴 동료들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그러나 책망이 깊어질수록 우울만 밀려올 뿐,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이 아니었다.

#똑똑한 사람
왜 그토록 열심히 살고 싶었을까.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뛰어난 머리를 갖지도 못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고, 조금 늦게 자면서 노력해야 남들과 비슷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열심히 사는 게 틀리지 않았단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서 그리고 내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열심히 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제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특별한 능력을 갖추게 돼서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노력을 더 하는 일밖에 없다. 유일한 재능인 열정을 이제는 좀 현명하게 쓰고 싶다.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멋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열심히 달려도 봤다. 숨 가쁘게 달려보니 알겠더라. 달릴 때 달리고, 걸을 때 걸을 줄 아는 사람도 멋있다는 걸.

윤채원 사진영상부장(문정/언홍영·18)  yuncw@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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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지리아김치찌개 2019-11-09 17:51:59

    응원해용   삭제

    • 옥순 2019-11-06 00:00:48

      우와~~ 가을에 맞는 단풍같은 글이네요 ~*^^*
      아등바등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멋진 청춘같아 댓글 남깁니다~~
      고되다 느끼겠지만 힘든 만큼 많은 것들을 깨우치며 성장하길 기도할게요~^^ 채원기자 화이팅^^   삭제

      • 80학번 2019-11-05 14:21:08

        오랜만에,,, 심금을. 울리는,,,, 기사였읍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해요~~~~~
        채원. 최고! 파이팅^^~ 조흔 하루~   삭제

        • 채원님 최고 2019-11-05 14:19:48

          채원횐님~^^ 의미있는 1년을 보내셨군요~!
          앞으로도 즐건 삶 사세요^^   삭제

          • 우진 2019-11-04 23:08:53

            한 가지만은 기억해 줘요.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거요.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행동하고, 방황할 지언정,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길을 찾고, 느리게라도 나아가는 사람이니까요. 당신의 눈물을 덜어 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오히려 당신을 더 울게 해서 미안합니다. 부디, 오랜 시간이 흘러 당신이 마지막에 도착한 곳에서 의미있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말할 수 있기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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