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저질러도 취소 안 되는 의사면허의 실상

서울의 한 병원에서 몰래카메라를 찍은 의사가 검거됐다. 최근 서울남부지법은 환자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의사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는 의료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징역을 선고받더라도 의사면허가 박탈되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 재개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공개된 보건복지부(아래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6월까지 집계된 최근 10년간 ‘의사면허 취소 현황’은 228건으로 나타났다. 

 

의사면허 보호, 환자를 위한 것이다?

 

지난 2007년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한 의사가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를 성폭행했다. 이 의사에겐 징역 7년이 선고됐지만, 의사면허는 박탈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한다고 규정하지만, 그 대상은 ‘마약중독자’, ‘의료법 위반자’ 등으로 한정된다. 의료법 위반에 해당하는 범죄는 낙태, 의료비 부당 청구, 면허증 대여, 허위 진단서 작성 등이다. 이 밖의 죄목은 의사면허 박탈 사유가 아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의사면허를 한번 취득하면 취소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 정지로 그칠 뿐”이라며 “건강세상네트워크 내에서도 계속 문제 제기가 있다”고 밝혔다. 

본래 의료법은 의사면허를 엄격하게 관리했다. 지난 1999년의 의료법에 따르면 살인, 강간, 강도 등 흉악범죄를 저지르면 의사면허가 박탈됐다. 하지만 2000년 의료법 개정안을 통해 의사면허 박탈이 어려워졌고, 면허 정지 기간도 줄었다. 보건부는 의료법 개정 이유를 ‘국민의 의료이용 편의와 의료 서비스의 효율화 도모를 위해’라고 설명했다. 당시 개정에 참여한 국회의원 중 9명이 의료업계 종사자 출신이었다. 이를 두고 동종업계 출신이 법을 개정해 의사들의 편의를 봐줬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변호사, 공인 회계사, 교수 등의 직업군은 범죄 유형과 관계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변호사의 징계내용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타 전문직과 달리 면허 취소 규정이 느슨한 이유는 의료계의 특수성 때문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침습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침습 행위란 생체에 상해를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수술, 외과적 침습 등이 침습 행위에 포함된다. 지난 2018년 의사의 형사 범죄와 면허 규제의 문제점 및 개선 방향에 관한 토론이 열렸다. 이 토론에서 보건부 보건의료정책과 오성일 서기관은 “의사면허 취소 요건을 강화하는 등 의료행위를 강하게 규제하면 부작용을 피하고자 애초에 과소진료를 하는 경향이 생긴다”고 전했다. 의료면허를 강하게 규제하면, 의료인의 본분인 환자 치료 행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 의료인 협회의 주된 논지다.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 98%가 승인?

 

범죄를 저지르거나 중대한 의료사고를 내 면허가 취소되거나 취소가 정지되더라도 의료인의 징계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간판만 바꿔 병원을 계속 운영하거나 다른 병원에 재취업할 수 있는 셈이다. 환자는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의 전과 기록을 알 길이 없다. 범법행위를 저지른 의사가 진료를 계속해도 막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의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현재도 여러 개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의사면허 취소 규정이 강화된다고 해도, 전과 기록이 있는 의료진이 의료행위를 지속할 방법이 남아있다. 면허가 취소되면 재발급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보건부 관계자는 “면허 박탈 이후 3년 이내에는 재교부가 금지된다”며 “해당 의사에게 개선점이 보일 때만 재교부가 승인된다”고 밝혔다. 재교부 금지 기간이 지난 의료인이 면허 재교부 신청을 하면, 보건부에서 서류 심사를 통해 재발급 여부를 결정한다.

보건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사면허 재발급률은 98%에 달한다. 지난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면허 재교부 신청은 총 55건이며 53건이 승인됐다. 우리나라의 높은 재발급률은 외국과 비교했을 때 더 두드러진다. 미국은 유죄 전력이 있으면 의사면허를 주지 않는다. 미국 텍사스 주에서는 일반인이 의료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의료법 변경사항은 물론 의료인의 범죄·징계 기록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법은 종신 의료면허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은 믿을 수 있는 의사에게 진료받을 권리가 있다. 권리를 실현하는 첫걸음은 의료인의 범죄 기록을 열람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강력 범죄와 흉악범죄에 대해서 면허 취소 이상의 제재 마련이 필요하다.

 

글 조서우 기자
mulkong@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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