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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그녀’에는 시대가 담겨 있다100년의 한국영화, 그 속의 여성을 돌아보다
  • 조수빈 기자
  • 승인 2019.10.06 01:09
  • 호수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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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혜화역에서는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가 진행됐고, 미투 운동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세상의 변화와 함께 영화에도 변했다. 더는 여성 배우를 촬영장의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중심의 서사가 확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당장 극장에 가서 포스터만 봐도 여성보다는 남성 배우와 감독의 비율이 현저히 높은 것이 현실이다. 조혜영 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극장 개봉작 중 여성 감독 영화는 10%를 넘지 못했다. 또한, 여성 주연 영화는 20%에 머무는 등 아직도 영화계는 남성 중심적 산업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00년의 한국영화, 그 안의
‘남성적’ 헤게모니

“카메라는 근본적으로 남성의 시선으로 대상을 응시한다. 남성을 시선의 주체로 여성을 시선의 타자로 위치시키는 이분법은 여성을 남성의 시선, 즉 성적 욕망, 감시, 판단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 로라 멀비, 1975, 「시각적 쾌락과 서사 영화」-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지난 7월 12일부터 오는 10월 13일까지 전시회를 연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며 개최된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 여성 캐릭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展’이다. 본 전시에서는 그간 한국 영화계를 지배해온 남성성과 그것을 부수기 위해 노력해온 ‘나쁘고’, ‘이상하고’, ‘죽이는’ 여자 캐릭터들을 보여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는 서서히 주체적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여성 감독들이 출현하면서 그들이 점차 기존의 보조적 역할을 탈피한 여성 캐릭터를 창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여성은 주체성이 없는 인물, 폭력의 대상, 수동적인 인물로 남성의 서사를 돕는 역할에 머물렀다. 영화를 제작하고 기획하는 산업 자체가 남성에게 패권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여성은 소모품과 같은 존재로 취급됐다.

새로운 여성상의 등장을 위해서는 변곡점이 필요했다.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요소가 필요했다. 그러한 변곡점이 바로 모성애, 트라우마, 폭력 등의 요소였다. 모성애라는 탈을 쓰고 새로운 여성상을 등장시킨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가 단적인 예시다. 영화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성애를 가진 ‘엄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자식을 위해 그녀는 무기를 들고 자식을 보호하며 죄를 감춘다. ‘모성애’라는 요소가 있어야만 이런 주체적인 엄마의 캐릭터가 이해된다. 어떤 특수한 이유가 있어야만 그 여성의 주체성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는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로 낙인찍혀왔다.

퀴어, 도전이자 위반


새로운 젠더 가치관이 견인한 또 다른 장르는 ‘퀴어물’이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여성 퀴어 영화 중 가장 큰 흥행을 이끌었다. 이 영화는 신선하면서도 자극적으로 여성 간의 섹스와 사랑을 표현하며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0년대 이전의 퀴어 영화는 기존의 체제를 벗어나려는 몸부림 없이 영화 밖 현실을 그대로 답습했다. 송경식 감독의 『사방지』 등 1980년대 퀴어 영화는 주로 인물의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영화는 동성애를 트라우마나 범죄로 표현하지 않는다. 『아가씨』는 여성 간의 관계와 서사에 집중한다. ‘숙희’와 ‘히데코’의 사랑이 그렇듯, 그들은 본인들의 사랑에 금기 의식을 느끼지 않은 채 솔직하게 그 관계로써 ‘자기 해방’을 좇는다. 그 사랑 또한 억압적 남성성으로 표현되는 ‘백작’으로부터의 탈출로 그려진다.

『아가씨』 같은 영화의 등장은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레즈비언의 이미지가 스크린에 투영된 결과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당당히 표현되는 동성애는 기존의 질서를 위반하고, 새로운 이미지와 캐릭터를 보여준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액션’
여성이 보여주기 시작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스크린 속 젠더 표현방식도 변화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도 여전히 특정 장르는 남성들의 전유물로 소비돼왔다. 『신세계』, 『악인전』 등의 액션 영화가 그 예시다.


하지만 최근엔 여성이 액션 영화의 주연을 맡아 극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신체적으로 남녀를 비교하면 보통은 남성의 힘이 여성의 힘보다 월등하다. 하지만 조민호 감독의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선 여성 주인공이 신체적 열등에도 불구하고, 남성 군인에게 전혀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태도를 보여준다. 박훈정 감독의 『마녀』에서는 여성 주인공이 초능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힘과 남성을 상대로 한 격렬한 몸싸움을 보여준다. 이 모습을 본 관객은 신선함을 느낀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신체적 위계를 또 다른 방법으로 역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번 전시는 100년에 걸친 한국영화사에서 권리를 얻기 위해 노력한 여성 캐릭터들을 보여줬다. 일방적으로 ‘시달리고’, 남성을 ‘도와주고’, 시련을 ‘참아내는’ 모습에 갇혀 있던 그들은 울타리를 부수고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지와 욕망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규범을 어기고, 억압에 도전했다.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남성 중심적 영화계에서 ‘나쁜’, ‘이상한’, ‘죽이는’ 여자로 낙인이 찍혀야만 했던 그녀들. 새로운 여성 캐릭터는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여성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본 전시가 새로운 여성 캐릭터들,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인지하고 더 개성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염원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글 조수빈 기자
mulkong@yonsei.ac.kr

사진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조수빈 기자  mulko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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