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협의체, 학교-학생 간 실질적 소통 창구 기능하고 있나

지난 8월 6일 우리대학교는 오는 2020학년도 입학생부터 ‘연세정신과 인권’ 강의(아래 인권강의)를 필수이수 과목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학교는 기존 결정을 철회하고 9월 19일 해당 과목을 선택교양으로 재지정했다. 이에 1일, 학생회관 앞에서 ‘인권강의 필수 과목 지정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 및 다양한 학내 단체*들의 공동 주최로 ‘연세대학교 인권 수업 필수이수 지정을 촉구하는 학내 집회’(아래 집회)가 열렸다.

 

“인권은 선택이 될 수 없다”

 

▶▶‘연세정신 장례식 퍼포먼스’는 추모사 낭독, 헌화, 묵념의 순서로 진행됐다.

 

집회는 ▲공동 주최 발언 1부 ▲연세정신 장례식 퍼포먼스 ▲공동 주최 발언 2부 ▲메일 총공격 ▲자유발언 ▲선언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집회 사회를 맡은 공필규(국문·15)씨는 “인권은 선택이 될 수 없다”며 “공대위가 학교 측에 두 번이나 면담을 요청했으나 학교는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공씨는 “학생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고자 한다”며 집회 취지를 밝혔다.

공동 주최 발언에서 장애인권위원회 위원장 안희제(경제·15)씨는 “1년에 한 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30분 정도 진행되는 장애인지 교육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인권강의 필수지정은 부족한 장애인지 교육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연세대지부(아래 연대나비)는 인권강의를 다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할 것과 더불어 류석춘 교수(사과대·발전사회학)의 즉각 파면을 요구했다. 연대나비 대표 김동명(사학·18)씨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도 인권의 문제”라며 “최근 류 교수의 성희롱 발언이 보여주듯, 학내에서 인권은 충분히 보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 집행위원장 A씨는 “학교는 동성애를 죄악시하며 혐오 발언을 일삼는 세력과 손을 잡았다”며 “학내 성소수자들은 또다시 폭력에 노출됐다”고 말했다.

이어서 ‘연세정신 장례식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집회의 공동 사회를 맡은 김이희윤(JCL·18)씨는 “학교의 미숙한 행정 절차로 인해 ‘연세정신’이 죽었다”며 “연세정신을 기리는 장례식을 진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여성주의자 재학생 네트워크’의 허나연(교육·16)씨가 추모사를 낭독하며 시작된 장례식은 헌화와 묵념 등의 퍼포먼스로 마무리됐다.

이후 집회 참여자들이 동시에 같은 내용의 메일을 학교본부에 보냈다. ‘약속대로 인권교육 필수화하라!’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기존 약속대로 인권교육을 필수 지정할 것 ▲교수, 학생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졸속처리를 해명할 것 ▲학교 구성원들이 아닌 외부 목사에게 선택교양 재지정 결정이 먼저 전달됐다는 의혹을 해명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인 참가자들의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서주은(문화인류·17)씨는 “우리 학교의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이 학교 밖 사람들의 혐오에 상처받는 동안 학교는 무엇을 했느냐”며 “학교는 학생과 인권을 저버리는 선택을 했다”고 학교를 규탄했다. 김기성(정외·13)씨는 “학교는 필수와 선택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학내 인권 운동 단체들과 연대해 교육 내용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 추산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는 약 200명이 참여했다. 집회에는 우리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서울대·성균관대·중앙대·동덕여대 등 다른 대학교 학생들도 참석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집회는 구호와 노래 제창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학교-학생 간 실질적 소통 결여
교학협의체는 무용지물?

 

인권강의 사태의 실질적 문제는 일련의 과정에 학내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교육과정과 학사제도 개편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관철하고자 54대 총학생회(아래 총학) <Flow>는 교학협의체 설립 공약을 내세웠다. 교학협의체는 학교와 수업권을 논의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기구다. 지난 4월 29일 열린 10차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서 ‘교육과정-학사제도 교학협의체 제안의 안’이 통과되며 교학협의체 구성은 가시화됐다. 8월 교학협의체 신설 후 한 차례 총학과 학교 간 교학협의체가 열렸지만, 인권강의 관련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교학협의체가 실질적인 소통 창구가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총학이 준비한 안건에 학교 측이 답변만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총학의 설명이다. 총학생회장 박요한(신학/경영·16)씨는 “교학협의체에서도 학교는 인권강의 관련 안건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9월 30일에 열린 19차 중운위에서 ‘인권강의 필수지정 철회 관련의 안’ 논의 중 박씨는 “선택교양으로 재지정 될 때도 학생사회와 논의가 없었다”며 “인권강의 관련 모든 논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덧붙여 박씨는 “조만간 교무처와 면담을 통해 항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학생복지처 관계자 B씨는 “교학협의체는 잘 운영되고 있다”며 “다만 정식으로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상시 기구가 아닌 만큼 완전한 운영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집회 참가자들의 서명이 담긴 인권강의 필수지정 요구안을 교무처에 전달할 예정이다. 또한, 학교 측과 논의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교무처에 면담을 반복 요청할 계획이다. 학교와 학생 간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공동 주최 단체: 생활협동조합 학생위원회, 연세대학교 여성주의자 재학생 네트워크, 이과대 페미니즘 학회 ‘고양이발바닥’,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장애인권위원회, 연세편집위원회,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 평화나비네트워크 연세대지부,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

 

글 박채린 기자
bodo_booya@yonsei.ac.kr

사진 양하림 기자
dakharim012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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