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량 사회부장 (정치외교/경제·14)

새벽 5시, 엄마는 일어나 아침을 차렸다. 재수생이던 나는 5시 반에 일어나 차려진 아침을 먹고 학원으로 갔다. 엄마는 설거지까지 마치고 가게로 향했다. 저녁 8시까지 일하고 집에 온 엄마는 내가 집에 도착하는 11시까지 기다리다 잠들었다. 귀가한 나는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러 갔다.
 

삼수 생활을 거쳐 대학에 갔다. 2년을 엄마에게 매달려 살았으니 등록금과 생활비는 알아서 벌겠다고 했다. 매 학기 각종 장학금으로 등록금이 얼추 해결됐다. 몇 십만 원이 남았다. 나는 벌어둔 돈이 없어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즉시 폰뱅킹으로 돈을 넣어줬다. 내가 번 돈으로 해결한 등록금은 0원이었다.
 

최근 엄마에게 용돈을 받아 쓰겠다고 했다. 취직 준비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매달 얼마가 필요한지 말하라고 했다. 식대로는 월 40만 원이 들었다. 나는 여비까지 합쳐 5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엄마가 매달 쓰는 돈보다 많은 액수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50만 원이 생활비로 적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집은 빌라 3층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다.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엄마와 아부지는 관절이 닳아 계단을 오르는 게 힘겹다. 엄마는 이사를 가야겠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근교 아파트는 3억 원이 넘었다. 나는 돈이 어디서 나 이사가냐고 괜시리 핀잔을 얹었다. 엄마는 열심히 일해 벌면 된다고 답했다. 나는 돈 벌어서 다 자식들한테 쓰는 데 무슨 돈이 남냐고 덧붙였다. 선뜻 내가 빨리 일해 이사 갈 집을 구하겠다는 약속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엄마 가게는 24시 편의점이다. 내가 엄마를 대신해 가게를 지키지 않는 이상, 엄마는 하루도 가게를 비울 수가 없다. 친구들과 놀러 가기 위해선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엄마가 어렵게 일을 대신해 달라고 말을 꺼낸다.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는 것 외엔 엄마의 부담을 덜어줄 방법이 없었다.
 

하루는 엄마 발목이 내 발목보다 두껍다며 장난을 쳤다. 엄마는 웃으며 항상 일어서서 일하다 보니 발목이 부었다고 말했다. 나는 앉아서 일하지 왜 내내 서서 있냐고 물었다. 물건을 채워 넣고 손님을 받느라 앉을 틈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에게 다리를 쭉 펴고 쉬라고 말했다. 부은 발목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병원에 다녀오자는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엄마가 병원에 다녀오기 위해선 내가 엄마 가게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을 이유로 대신 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은 변명에 불과했다.


나는 항상 내가 먼저다. 다만 일종의 부채감을 느낄 뿐이다. 얼마나 이기적인 감정인지. 엄마와 아부지의 삶을 여지껏 전횡해왔다. 부족함 없는 지원을 받았으면서도 내가 돌려드릴 때가 되자 망설이고만 있다. 다만 내 마음 편하자고 사고 안 치는 착한 자식이 되는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억울했다. 솔직히 내 코가 석 자라고 생각했다. 대학 생활 대부분 알아서 생활비를 벌었지만, 매달 통장은 텅 비었다. 취업 문은 좁디좁다. 집값은 너무 비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졌다. 엄마와 아부지가 내게 쏟은 삶이 내 알량한 무력감 앞에 사라지는 듯했다. 나를 불효자식으로 만드는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마냥 사회 탓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삼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덜 놀고 아르바이트를 했더라면. 얼른 취직해 돈을 벌었더라면. 순간마다 나는 나만을 위한 선택을 했다. 살고 싶은 대로 살라는 엄마와 아부지의 말을 따랐을 뿐이라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말이다.
 

진로 결정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되길 원한다. 기자 봉급으로 엘리베이터 있는 집을 살 수나 있을까. 바쁜 취재 일정에 엄마와 아부지의 짐을 덜어드릴 여유도 없을 터다. 내 꿈에서도 내 한 몸 건사하기에 그친다. 나는 불효자식이다.
 

엘리베이터 있는 집. 일에 쫓기지 않는 엄마. 가족 걱정 없이 연구에 매진하는 아부지. 나는 그것들을 외면하고만 있다. ‘주택 가격 폭등’, ‘일자리 시장 악화’. 사회는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줬다. 불효하기는 너무 쉬웠고, 나는 기꺼이 불효자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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