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 (정외·13)

‘모집 광고도 있었고, 장교를 웃도는 고소득을 벌었으며, 건강검진까지 받았다. ‘오쿠보’나 ‘우구이스다니’(일본의 유명한 성매매 업소 거리)의 현대 위안부보다 대우가 좋았다.’

최근 류석춘 사태를 다룬 일본의 포탈기사에 달린 한 댓글이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 포탈 댓글의 말들과 류 교수의 행동이 일맥 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류석춘 교수가 수업에서 한 발언에 대해 여러 입장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명확히 하고자 하는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교수의 여성에 대한 혐오적인 인식과 발언이다.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발언은 ‘한번 해볼래요?’다. 그가 입장문에서 밝힌 ‘(조사) 한번 해볼래요?’라는 해명에 과연 누가 끄덕일까. 그의 발언은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그의 발언은 일본군 ‘위안부’와 현대의 ‘매춘 여성’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을 의미하며 강의실 내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인식 하에 나온 발언같다.

류석춘은 ‘위안부’와 ‘매춘’을 동일 선상에 두고 비교했다. 이러한 인식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닌 식민지근대화론 위에 기반됐음이 예상된다. 그의 인식 속에서 성매매 산업, 위안부 동원 모두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위안부’가 여성의 몸을 경유하는 거대한 성폭력과 성착취의 구조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성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성매매 시장이 30~37조로 ‘추정’될 수밖에 없는 것과, ‘위안부’ 피해자의 총수를 알 수 있는 총괄적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해자마저도 자신들의 행위가 폭력이자 착취임을 인지하고 그 사실을 은폐할 때, 그리고 피해자 자신에게 ‘자발성’이라는 프레임으로 이를 내면화시킬 때 당연하게도 그 사실은 오롯이 말해질 수 없다. 이들을 자발성과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환원하는 것은 ‘사용자’ 혹은 ‘구매자’ 남성의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어쩌면 류석춘을 쫓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포탈 검색순위 상위에 오르내리고, 여당 국회의원들이 입을 모아 그를 비판하는 가운데 말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그의 잘못을 제대로 문제화하지 못한다면 그와 같은 사람은 계속 출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를 파면하는 작업은 단순히 류석춘 개인이 아니라, 연세대학교를 넘어 한국사회에 박혀 있는 어떤 인식을 도려내는 것이어야 한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서대문독립공원에 자리하지 못하고 지금의 성산동 일대에 자리 잡게 된 것은 그것이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 훼손이자 우리 민족의 수치’라는 일각의 주장 때문이었다. 류 교수의 문제는 여전히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 사고는 작금의 강단에서 보여져서는 안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의 문제는 과거 자유한국당의 혁신위원장을 역임한 것에도, 일본의 지원을 받는 연구기금에서 돈을 받으며 일본 극우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한 것에서만 찾으면 안 된다. 그는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 뒤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를 했으며, 강의 현장의 학생들에게 혐오 발언과 성희롱을 한 셈이다.

제국 일본이 조선을 식민화하고, 빈곤에 취약해진 여성을 다시금 전쟁 수행을 위한 성노예로 사용했음에도 그것이 자발적이라고 보는 시선. 성매매가 여성의 빈곤을 재생산해내는 산업임에도 그것에 참여한 것도 자발적이라고, 심지어는 ‘쉬운 돈’이라고 여기는 시선. 모두들 알겠지만 이런 시선은 맞지 않다. 그들의 시선이 잘못됐음을 우리는 명백히 꼬집어야 한다. 우리는 류석춘을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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