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에이즈 혐오에 숨을 곳 없는 감염인들

에이즈(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아래 HIV)는 ‘죽음의 병’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한 번 걸리면 치료할 수 없고, 곧 죽음에 이른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로 인해 꾸준한 치료를 받으면 HIV 감염인도 비감염인과 비슷한 수명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지난 2017년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이 약 8만 8천500명의 HIV 감염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2010년부터 치료를 시작한 20대 환자의 평균 수명은 78세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이 이들을 음지로 내몰고 있다.

 

▶▶ HIV 관련 기사 댓글 화면 갈무리. HIV에 관한 무지가 감염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에 따르면 감염인들은 언론보도와 댓글에서 감염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화된 차별
숨어야 하는 에이즈 환자들

 

HIV/AIDS는 의학적으로 더는 ‘죽을 병’이 아니지만, HIV 확진은 일종의 ‘사회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한 ‘제6차 세계가치조사’ 결과 ‘에이즈 환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88.1%로 한국이 가장 높았다.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모든 영역에서 이뤄진다. 특히 직장에서의 차별은 노동권 침해로 직결된다. 대한보건협회에서 발표한 2015년 ‘국내성인의 에이즈 지식과 태도의 유형과 관련 요인’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내 성인 1천 명 중 49.5%가 ‘같은 직장에 감염인이 다닌다면 사표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HIV 감염인들은 자신의 병력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16년 발표한 ‘의료차별 경험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인 중 ‘감염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고 응답한 비율이 92.1%에 달했다.

그러나 직장에서 HIV 감염인의 병력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채용 시 남성은 입사지원서에 병역 사항과 더불어 면제 사유를 적어야 한다. HIV 감염은 병역 면제와 의병 제대* 사유가 되기 때문에, 감염인들은 자신의 병력이 노출될까 부담스러워한다. 이 밖에도 건강검진 등을 통해 직장에서 병력이 노출돼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아래 KNP+) 관계자는 “취업 건강검진에 HIV 항목이 포함돼 있으면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취업 후에도 정기검진은 공포”라고 말했다. 치료를 위해 병가를 내거나 휴직을 할 때도 회사에 사유를 설명할 수 없어 곤란을 겪는다. 결국 감염인은 스스로 퇴사를 선택한다.

이 같은 현실은 감염인의 고용현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6년에서 2017년에 걸쳐 시행된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에 따르면 감염인 104명 중 과반에 가까운 51명이 실업 혹은 미고용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 소득이 100만 원 이하라고 답변한 이들도 44명에 달했다.
감염인은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차별을 당한다. 앞서 인용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인 중 79%가 ‘의료기관 차별’이 ‘많거나 있는 편’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의료기관이 HIV의 병원 감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인규 사업부장은 “치료를 장기간 받아 전염의 위험이 거의 없는 감염인도 있다”며 “에이즈와 HIV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아직 낮아 환자의 상태를 확인도 하지 않고,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진료거부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요양병원에서 감염인의 입원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에이즈 환자가 면역력의 저하로 인한 각종 감염에 노출돼있어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치료와 간호를 필요로 한다. 또한, HIV/AIDS 감염인들이 노령화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 2017년 기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에이즈 병간호비를 지원받은 요양병원 입원 환자는 39명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도움을 받는 에이즈 환자가 매우 적은 셈이다.

 

차별의 이유가 되는 에이즈

 

한국에서 HIV는 성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기독교한국침례회에서 발행하는 「침례신문」은 “에이즈 확산의 주범은 남성 동성애자들”이라며 “우리나라에서 HIV 감염이 급증하는 원인은 대부분 동성 간의 성관계에 있다”고 썼다. HIV와 동성애를 연관 짓는 사고방식은 특정 종교집단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KNP+ 관계자는 “지금도 공공연히 ‘동성애하면 에이즈 걸린다’는 말을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남성 동성애자는 HIV 감염의 ‘취약 집단’일 뿐 HIV 확산의 ‘원인’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HIV 확산의 주된 원인은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다. 콘돔 착용 등의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하게 되면 HIV 감염 확률이 높아진다. 남성 동성애자만이 HIV에 감염되는 건 아닌 셈이다. 이성 간 HIV 전염이 동성 간보다 더 많이 일어나는 국가도 있다. EU에서 지난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의 국가에서는 남성 간 성 접촉으로 인한 HIV 감염 비율이 20% 미만이다. 같은 국가에서 이성 간 성 접촉으로 인한 감염은 60% 이상이다. KNP+ 관계자는 “상담을 받기 위해 사무실에 방문하는 이들은 부부, 여성, 이성애자 등 다양하다”며 “정보 왜곡으로 인해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차별과 혐오는 여성 감염인에게도 행해진다. KNP+는 “여성 감염인이 성매매 종사자거나 성폭력 피해자면 가해자가 아니라 이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현실”이라며 “낙인은 남녀를 가리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특히 결혼과 임신 등 여성의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한다”고 말했다.

한 번의 성관계로 HIV에 감염될 확률은 0.01~0.1% 정도라는 게 의학계의 견해다. 콘돔 등의 예방조치만 철저히 하면 감염확률은 더욱 낮아진다. HIV 감염을 이유로 결혼, 성생활을 포기해야 할 의학적 근거는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많은 감염인이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이를 포기한다.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에 따르면 감염인 104명 중 21명이 ‘성관계를 갖지 않기로 했다’고 했고, 46명이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고 답변했다.
 

 

개선되지 않는 감염인 인권
적극적인 보호 필요해

 

이러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감염인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갖춰져 있지 않다. 심지어 감염에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한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19조에 따르면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해서는 안 된다. 이 조항을 근거로 HIV를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켰을 경우 감염인을 처벌할 수 있다. ‘한국 HIV 낙인 지표 조사’에 따르면, 감염 사실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나를 탓한다’고 답변한 비율이 75%, ‘벌을 받아야 한다고 느낀다’고 답변한 비율은 26.3%에 달했다. 심지어 36.5%의 응답자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했다. 감염인이 법적 책임과 더불어 도덕적 가책까지 떠안고 있는 셈이다.

또한, HIV 감염인들은 부당한 대우를 당한 후에도 법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법적으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자신의 병력이 알려질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 사실로 인한 의료차별을 경험하고 나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도 19.5% 수준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병력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감염인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감염인과 법률자문가는 장애인차별법을 HIV 환자에 적용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또한 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 2017년 논평에서 “HIV/AIDS에 대한 도를 넘은 혐오와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며 “모든 차별을 철폐하자는 약속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장애인차별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감염인에게 장애인차별법이 적용되면 이들은 고용·교육·개인정보보호·건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된다. KNP+는 “요양병원 입원거부 등 사회적 차별로 인한 건강권 박탈이 심각하다”며 “장애인차별법 적용에 HIV도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HIV/AIDS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 무지는 환자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동등한 대우를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차별당하는 이들을 위한 적극적인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 이들이 충분히 보호받고, 더 나아가 병력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의병 제대: 현역 군인이 업무를 계속하기 어려운 병에 걸렸을 때, 남은 복무기간과 상관없이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 제대하는 일.


글 민소정 기자 
socio_jeo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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