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 속 양자역학과 다중우주론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아래 엔드게임)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순식간에 전 세계 역대 흥행 수익 1위를 달성했고, 특히 한국에서는 1천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영화의 핵심 줄거리는 히어로들의 ‘시간 강탈’이다. 여타 시간여행 영화와 달리 시간 강탈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과학적 배경 때문이다. 그 기본 개념을 아는 것만으로 영화 이해가 수월해진다. 더불어 철학적 해석으로 감상의 깊이가 더해진다. 엔드게임 속 양자역학과 다중우주론에 대해 살펴보자.

 

 

에너지의 최소단위, 양자

 

엔드게임 속 시간 강탈과 다중우주론은 양자역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양자는 더는 쪼갤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단위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미시적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물리학의 한 영역으로,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제시한 ‘불확정성의 원리’를 기본으로 한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결정될 수 없으며, 따라서 입자에 대한 확률적이고 통계적인 처리만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매우 작은 입자 하나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특정 공간에 입자를 가둬야 하는데, 입자가 좁은 공간에 갇히면 이리저리 부딪히며 떠돌게 된다. 입자의 운동량이 위치 측정 과정에서 바뀌는 셈이다. 반대의 경우도 같다. 이처럼 위치와 운동량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양자 세계에서 물리량은 확정된 값이 아닌 확률적인 값을 갖는다.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의 특성을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양자의 성질은 측정과 동시에 정해진다. 양자는 A와 B라는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질 수도, 둘 중 하나의 성질만 갖거나 혹은 어느 성질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에 양자의 성질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측정이 이뤄진 이후 양자는 그 결과에 따라 하나의 성질로 정의된다. 따라서 양자는 측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그 성질이 정해지지 않는다. 둘째, 서로 얽혀 있는 관계의 양자가 있다. 몇 광년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두 양자가 ‘얽힘 관계(Quantum Entanglement)’에 있다면 하나의 양자를 측정함과 동시에 다른 양자의 성질이 결정된다. 두 양자 간 정보교환이 빛보다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얽혀 있는 두 양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한다. 한 양자의 특정 방향으로의 회전을 측정하면 그 양자와 얽혀 있는 양자의 회전 방향을 동시에 알 수 있다.

 

시간, 새로운 우주가 되다

 

엔드게임은 양자역학을 활용해 시간과 공간을 연결한다. 아주 작은 세계인 양자 세계에서 시간의 개념은 현실에서의 개념과 다르다. 가령 개미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을 생각해 봤을 때, ‘일생’이나 ‘평생’을 의미하는 시간이 다르게 정의되는 셈이다. 이처럼 양자 세계에서 시간은 물질처럼 아주 작게 쪼개질 수 있다. 그러므로 공간적 현실이 무수히 많은 차원으로 이뤄진 다중우주라면, 결국 이 거대한 다중우주 또한 시간과 같이 양자로 구성된 것이므로 양자세계에서의 공간적 이동과 시간적 이동은 연결될 수 있다. 양자역학을 통한 다른 우주로의 이동이 다른 시간대에 도달한다면 이는 마치 시간 이동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양자역학과 다중우주의 연결고리는 전자의 불확정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자의 공전 궤도는 전자구름*으로 나타난다.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에 전자가 정확히 어느 궤도로 공전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엔드게임 속 히어로들은 ‘핌 입자’와 ‘양자 GPS’를 통해 ‘시간 강탈’ 작전을 수행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앤트맨’은 핌 입자로 물질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어벤져스는 원자핵과 전자의 거리를 필요에 맞게 조정한다. 양자 GPS는 양자 세계에서까지 작동하는 GPS 장치로, 전자구름 속 전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설정할 수 있다. 이렇게 전자구름의 범위 안에서 전자의 특정한 위치를 설정하면 그에 상응하는 평행우주가 열린다. 전자구름 안에 분포해 있는 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실현하면 그 확률이 현실이 되는 새로운 우주가 생기기 때문이다. 작중 인물 ‘토니 스타크’는 이러한 평행우주 형성 원리를 ‘도이치 명제’로 설명한다.
 

“양자의 흐름이 플랑크 상수를 교란해 도이치 명제가 나타나지”
 

양자의 흐름이 플랑크 상수**를 교란한다는 것은 양자의 불확정성이 수많은 실현 가능한 현실을 생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전자의 공전 궤도가 하나로 확정되지 않고 구름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도이치 명제는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가 연구한 ‘할아버지 가설’에 대한 반박이다. ‘할아버지 가설’은 시간을 역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설이다. 한 사람이 과거로 가서 그의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그 사람은 태어날 수 없기에 존재 자체가 모순된다. 도이치 명제는 다중우주론의 개념을 빌려 이를 반박한다. 할아버지가 죽지 않은 세계의 자신과는 별개로,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가능성이 현실이 된 새로운 우주가 형성된다는 설명이다. 한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죽이면 새로운 평행우주가 생기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에 의해 죽는 또 다른 우주가 생긴다면 기존 우주 속 그의 존재는 모순이 아니다. 이는 전자구름 안에서 전자의 위치를 설정할 때마다 새로운 우주가 형성된다는 영화의 설정을 뒷받침한다. 양자 세계에서 시간은 물질이 되며,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은 과거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 낸다.
 

“과거는 새로운 미래가 되는 거야”
 

‘헐크’의 대사 또한 마블의 평행우주 세계관을 드러낸다. 영화 설정에 따라 히어로들이 돌아간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들이 돌아간 과거는 새로운 우주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네뷸라가 과거의 자신을 죽여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유다. 네뷸라는 그가 속한 우주에 사는 과거의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는 다른 우주에서 온 자신을 죽였기 때문에 존재의 모순이 발생하지 않았다. 영화가 시간여행이 아니라 시간 강탈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 있다. 시간 강탈은 다른 차원의 우주로 가서 영화 속 핵심 소재인 ‘인피니티 스톤’을 빼앗는다는 의미를 담은 단어다.

 

확정보다 강한 불확정

 

엔드게임 속 ‘타노스’와 어벤져스의 싸움은 양자적 인간의 힘을 보여준다.


“나는 필연적 존재다(I am inevitable)”
 

타노스는 확정성을 상징한다. 그는 학살을 통한 우주 질서의 정리를 과업으로 삼았다. 그는 이 과업에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 어벤져스는 타노스에 맞서 싸우지만, 그들 자신이 이길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이길 가능성은 1/1천400만에 불과하지만,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도 그들은 서로를 위해 계속해서 싸운다. 예측할 수 없는 불확정성, 그리고 서로를 생각하며 싸우는 그들의 ‘얽힘’은 양자의 특성과 같다.
 

“나는 아이언맨이다(I am Ironman)”
 

인간 아이언맨이 자신의 이름으로 ‘필연적 존재’에 대항한 까닭은 바로 얽힘 관계 때문이다. 양자의 얽힘과 불확정성을 현대 과학이 밝혀내지 못했듯 인간의 얽힘과 불확정성 또한 하나의 단어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불확정성이 갖는 힘 또한 예측할 수 없다. 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었던 타노스는 인간의 양자적 특징을 간과했고, 결국 패배했다.
 

히어로 영화에 갖는 선입견이 있다. ‘유치하다, 말도 안 된다, 교훈이 없다.’ 엔드게임은 양자역학으로 영화에 깊이를 더해 선입견을 허물었다.

 

*전자구름: 원자 내부의 전자가 각각의 위치에 존재할 확률을 나타낸다. 전자가 임의의 어느 곳에 존재할 확률을 점으로 나타내면 원자핵과 가까울수록 밀도가 높고, 멀수록 밀도가 낮다. 이렇게 찍은 점들은 구름처럼 원자핵 주위에 형성돼 있다.
**플랑크 상수: 6.62607015×10-34를 나타내는 상수. 이론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도입한 양자역학에서의 기본 상수다.

 

글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그림 민예원
<자료사진  『어벤져스: 엔드게임』, 제작 마블스튜디오, 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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