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호 교수 (우리대학교 상경대학)

지난 19일 BBC 라디오 Forum에서 “삶의 부조리를 끌어안은 알베르 까뮈(Albert Camus)”라는 토론이 진행됐다. 1913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출생한 까뮈는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의 신화』, 『반항인』 등을 통해 노벨문학상도 수상한, 실존주의철학을 대표하는 지성 중 하나다. 그는 청년 시절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고, 나치에 저항해 레지스탕스 활동도 했다. 하지만 철학적 동반자였던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1947년에 발표한 『휴머니즘과 테러』를 통해 폭력을 제거할 좋은 의도의 ‘진보적 폭력’과 폭력을 영구적으로 고착하려는 나쁜 폭력을 구분해야 한다며 소련의 공포정치를 옹호했고 이에 까뮈는 반대했다. 또한 그는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테러를 비판하며 절친이었던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와도 결별한다. 그는 1951년 출간된 저서 『반항인』에서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을 지닌 대상에 대해 느끼는 ‘원한’과,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지키고 자기 존재의 완전무결성을 위해 투쟁하는 ‘반항’을 구분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파괴하려는 ‘원한’을 비판하고 나를 복원하려는 ‘반항’을 지지한다. 스스로를 ‘교의’로써 무장해 노예수용소, 대량학살을 정당화하는 그 시대의 현실을 비판하며 지고한 사랑의 힘과 인격에서 희망을 찾는다.

지난 2012년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 개봉됐다. 1802년에 출생한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1862년에 출간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2016년 11월 광화문 촛불시위에서도, 2019년 홍콩 공항 시위에서도 불린 바 있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비롯한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로 가득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대작이다.

그런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곤혹스러운 인물이 있으니 바로 제1부 6장의 책 제목으로 등장하는 ‘자베르’다. 그는 유능하고 평생 정의 구현을 위해 헌신해온 인물로 심지어 2절의 제목은 ‘자베르의 정직함’이다. 그러한 그가 장발장(Jean Valjean)과 팡틴(Fantine)에 극한의 고통을 줬을 뿐 아니라 결국 스스로 자신이 살아온 생애의 가치에 대해 절망해 센강에 투신자살하게 되는데, 그 불행의 단초는 정의에 대한 강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의는 균형 잡힌 시각을 요구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BC 427년경에 출생한 플라톤은 그의 『국가/정체론』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천착하였다. 그 안에서 이상국가론은 해당 질문에 대한 플라톤의 답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 자체로 좋은 어떤 특정의 정의로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정의란 최선과 최악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고대 마케도니아에서 BC 384년에 출생한 아리스토텔레스도 덕이 있는 사람은 양극단의 중간을 포섭한다며 중용의 미덕을 강조했다. 유교의 4서5경중 하나도 『중용』으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평상심으로 편벽되지 않은 마음가짐을 추구한다. 따라서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에서는 그 시대 상황이 규정하는 바에 따라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독서와 사유가 편향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정의에 대한 고정된 관점을 정립하기 쉽다는 것이다. 자신의 관점과 배치된 모든 이론을 올바르지 않은 생각으로 인식하고 배척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는 그로부터 귀결되는 자베르 과잉이고 부조리의 심화다.

우리가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다양하고 일견 모순돼 보이는 사상과 이론들을 포섭해 보다 균형 있는 시각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과학적으로 보고 이를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함이다. 이번 학기에도 오스트리아, 모로코, 미국, 온두라스 등 전 세계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사고체계와 전혀 다를 수 있는 경제학 수업에 밝고 해맑은 미소로 경청하는 젊은 세대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본다. 편향되지 않고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조용한 성품의 젊은 세대가 미래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목소리 큰 사람들에 밀리지 않고 자리를 잡아 간다면 사회는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1856년 출생한 미국의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Lyman Frank Baum)이 1900년에 출간하고 뮤지컬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Dorothy)는 이상적인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그녀는 모든 세상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질 때 하늘이 열어준 마법의 길에 뜬 무지개를 따라가면 모두의 꿈이 이뤄지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노래한다. “파랑새도 무지개 위를 날아가는데 왜 우리가 그럴 수 없을 것인가?” 자베르 강박에서 자유로운 젊은 세대가 무지개 위를 날아갈 미래를 함께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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