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정 총무국장 (국제관계/산업공학·17)

세상은 온통 ‘한 사람’ 얘기뿐이다. 한 사람의 행적들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포탈에 그 이름 한 단어를 검색하면 직계 가족의 이름부터 학력, SNS 게시물, 언행 등 모든 내용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껍질이 다 벗겨지고 알맹이가 드러난 셈이다. 그의 행적들은 다수를 분노케 했다.

한 의학전문대학원 학생의 학력 문제가 시발점이 됐다. 얼마 있지 않아 해당 학생의 부모 이름이 거론됐다. 거론된 부모의 이름은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불안정한 시국에 갑자기 등장해 민심(民心)을 사로잡았던 인물이다. 그 인물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오늘날 20대이자 치열한 입시를 치루고 수많은 알바 인생을 보내온 그리고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6일 열린 청문회 생방송을 보며 적어도 한 번의 한숨을 쉬지 않았을까 싶다. 한숨을 내쉰 20대에 나도 속해있다. 사실 나의 한숨에는 분노가 담겨있지는 않다. 단지 한없이 추락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실망과 허망함만을 느낄 뿐이다.

그런데 그의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2017년 그날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지난 2017년 정유라 입학 비리 사태를 기점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박근혜 탄핵 등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당시에는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의 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고된 과정을 거쳐 ‘신입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교복 태를 막 벗으려던 차였다. 하루에 하나씩 폭탄같이 터지던 일들은 사라지기 직전의 나의 힘든 고교 시절을 되살아나게 했다. 뿐만 아니라 돈이 없어 편의점에서 요기를 때우던, 학원을 등록하기 전 발생할 비용을 먼저 생각했던 그때의 감정도 환기됐다. 나는 항상 보이지 않는 조임과 압박 속에서 살아왔다. 그 조임과 압박의 근원지를 TV 속 화면에서 마주친 셈이었다. 처음에는 막연한 분노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라함, 좌절감 등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어느 순간 복잡했던 내 감정은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동시에 우리나라 정사에 대한 믿음도 사라졌다. 그렇게 TV 속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약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번에도 상황은 똑같다. 자식의 학력 문제를 시작으로 돈, 정당 문제가 제기되고 이곳저곳에서 촛불을 들고 일어난다.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익숙함을 느낀다. 나는 우리나라 정사를 맡은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음은 같다. 언론에서 그들이 하는 말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전, 이전과 동일하게 상황이 반복될 것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드라마에서 30대 후반의 여자 주인공은 ‘어른의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넌 나를 보고 꿈을 꾸잖아. 그래서 너에게 기대지 못해. 네가 꾸는 꿈에 방해될까 봐.’ 본인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익히 알고 행동하는 멋진 어른의 표본이었다.

사회는 스스로 해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를 보고 그 행동을 따라 하거나 참고하며 인생을 배운다. 혼자 생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의 ‘어른’을 보고 꿈을 꾼다. 하지만 현재 사회를 보면 어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이라고 칭해지는 이들은 서로 헐뜯고 비난하고 탐욕에 눈이 멀어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한 나라를 대표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이들이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있다. 우리는 그들만의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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