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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불매운동과 민주 시민
  • 우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권수현 교수
  • 승인 2019.09.08 22:19
  • 호수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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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현 교수
(우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일본 아베 정부는 지난 7월 1일, 디스플레이·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하고 8월 2일, 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내 제외 국가로 규정한다는 내용의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표면적인 이유는 한국의 수출 전략 물자에 대한 한국의 부실한 관리 때문이다. 그러나 더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2018년 10월 말에 이뤄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 배상 책임을 확정한 판결이다. 근본적인 원인에는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이로 인해 발생한 위안부와 강제징용자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태도도 존재한다.

일본 아베 정부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가 기정사실이 되자 한국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을 진행했다. 한국 시민들의 불매운동이 어떤 효과와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이며, 이 불매운동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불매운동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시민들의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과 태도다.


한국 시민들은 정부나 정치인들이 불매운동 과정에 무임승차하려는 행위를 거부한다. 또 일본 아베 정부에 대한 대응에 있어 시민과 정부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중구청의 ‘보이콧 재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현수막에 대해 시민들은 지방정부가 불매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시민들의 자발성을 왜곡할 수 있으며, 일본제품을 파는 한국 시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수도 있다며, 현수막 철거를 요청했다. 그리고 정봉주 전 의원이 ‘노 코피나’(‘일본 가면 코피나’)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불매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시민들은 이 행위에 대해 시민들의 운동을 희화화한다며 정치인의 불매운동 참여에 거리를 뒀다. 한편, ‘일본인 출입금지’라고 쓰인 식당 간판이 ‘인종차별’이라는 한 외국 기자의 지적에 대해 시민들은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한 시민은 강릉의 한 박물관에 쓰인 ‘일본인 관광금지’와 ‘No Japs Allowed’라고 적은 팻말에서 ‘Japs’가 일본인 비하 의도를 포함한 인종차별적 영어표현이라고 지적하며, 팻말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자발적인 불매운동 속에서 한국 시민들은 현재 한국이 비판해야 할 대상이 아베 정권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며, 특정 집단, 국가에 대한 차별 및 혐오를 양산할 수 있는 폐쇄적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거부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의 모습을 보인다.

한국 민주주의는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져왔고 성장해왔다. 즉 한국 민주주의를 유린한 것은 오히려 권력자들이며, 이를 지킨 것은 시민들이 셈이다. 지난 1960년 4·19혁명을 통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1987년 6·10민주항쟁을 통한 전두환 대통령의 장기집권 봉쇄, 2017년 촛불집회를 통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이 가능했던 이유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라는 자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교실보다는 현장에서 직접적인 실천을 통해 학습해온 민주시민의 자세와 태도를 국민들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국가 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시민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 있다. 더욱이 현재 한일 간 문제는 경제에 더해 양국의 정치·외교·안보·역사 문제 등이 뒤엉켜 발생한 문제일 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들 또한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다. 때문에 한국 시민의 역할은 더욱더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민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현 문제의 해결에 더해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민주주의 가치에 기초한 한국 시민들의 저항은 일본 시민들로부터도 정당성과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로 하여금 현 문제를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강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년 전 세계 국가들의 민주주의 지수를 측정해 발표하는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해왔다. 이러한 상황 속 한국의 촛불집회와 이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교체는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진행되는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에 희망이 됐다. 한일 간 존재하는 문제와 갈등이 민주적으로 해결되고 민주주의 가치가 확장될 수 있도록 한국 민주시민들의 지혜가 계속 발휘되길 바란다.

우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권수현 교수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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