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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마(狂馬)의 삶, ‘마광수가 그리고 쓰다’마광수의 세계에서 ‘동심’과 ‘야함’은 통한다
  • 박제후 이희연 기자
  • 승인 2019.09.08 22:45
  • 호수 1836
  • 댓글 2

고(故) 마광수 교수(퇴임‧국문학)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마 교수는 에로티시즘과 자유를 외치며 외로운 천재로 살았다. 독창적 연구가이자 성(性) 문학의 개척자, 훌륭한 스승이었던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술과 인생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2019, 마광수를 다시 만나다

▶▶문학가이자 화가였던 마 교수는 그림에 대한 애착 또한 남달랐다. 생전에 그가 가장 아꼈던 작품 3점의 사진이다.

지난 4일 낮 3시, 우리대학교 박물관에서 ‘마광수 교수 유작 기증 특별전, 마광수가 그리고 쓰다’(아래 특별전) 개막식이 진행됐다. 특별전은 마 교수의 2주기인 5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 열린다. 유족들은 2018년 9월 마 교수의 단행본과 연속간행물, 육필 원고를 학술정보원에, 2019년 7월에는 마 교수의 판화, 회화, 도자기 등 100여 점의 유품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기증된 미술품 중 일부를 이번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우리대학교 박물관 윤현진 학예사는 “마 교수는 작가뿐만 아니라 화가로서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며 “학생들이 마 교수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특별전에서는 마 교수의 대표작 「Kiss in the dark」, 「하얀 달빛」 등의 그림과 그의 방을 재현한 공간, 그리고 그의 육필 원고를 볼 수 있다. 울상 짓고 있는 책 아래 “어려운 책은 못 쓴 책”이라는 문구가 적힌 그림은 마 교수의 예술관을 잘 보여준다. 그의 글만큼이나 마 교수의 그림은 쉽고 솔직했다.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 같았다. 마 교수는 생전 개인전 안내서에서 “그림을 그릴 때 내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동심과 같은 즉흥성”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윤 학예사는 “마 교수의 시‧서‧화는 연결돼 있다”며 “직접 그린 책 표지나, 같은 주제로 남긴 글과 그림 작품을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난 문학가가 아니고 글쟁이야”

마 교수는 평생을 우리대학교와 함께 했다. 지난 1969년 국어국문학과 입학부터 2016년 정년 퇴임 때까지 그의 연구‧작품‧교육 활동은 우리대학교에서 이뤄졌다. 그의 수업은 특별했다. 마 교수의 제자였던 김성수 교수(학부대‧현대문학/글쓰기)는 마 교수의 수업을 ‘열린 수업, 개성 있는 수업’으로 기억했다. 김 교수는 “마 교수는 토론 수업을 좋아했다”며 “당신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한편,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유로운 수업이었다”고 말했다. 마 교수의 수업은 다른 대학 학생들이 들으러 올 정도로 인기가 많아 대강당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 1992년, 학생과 수업을 사랑하던 마 교수는 강의실에서 체포됐다. 『즐거운 사라』 때문이었다. 뾰족한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대학생 사라가 남자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맺는, 그러고도 비극적 결말을 맞지 않는 이 작품은 ‘음란물’로 규정됐다. 마 교수는 문단의 권위주의, 교훈주의, 엄숙주의에 저항했다. 생전 그는 “솔직한 사회를 원한다”며 “나답게 살기 위해 성 문학을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 교수는 쉽고 솔직한, 그리고 자유로운 문학을 원했다. 마 교수의 강의실 체포사건 후 2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즐거운 사라』는 판매금지 도서다. 김 교수는 “마 교수의 파격적 문학관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면서도 “당시의 사건은 문화예술의 자유를 사법의 기준으로 재단해버린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과거”라고 말했다.


야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행복해진다. ‘야한 마음’이란 도덕보다 본능에, 정신보다 육체에, 아가페적 사랑보다 에로스적 사랑에, 질서보다 자유에, 전체보다 개인에, 검약보다 사치에 가치를 매기는 마음이다.

-마광수, 『행복철학』 中

마 교수는 ‘천재’였다. 우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26세에 등단하고 28세에 교수가 됐다. ‘윤동주 연구’는 그의 대표 연구 업적이다. 그는 윤동주를 “사랑을 노래한 심약한 휴머니스트”라고 표현했다. 지난 1983년 발표된 그의 논문 「윤동주연구: 그의 시에 나타난 상징적 표현을 중심으로」는 윤동주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동주 작품 속 ‘부끄러움’의 정서를 정의해낸 이가 바로 마 교수다.

많은 사람이 마 교수를 억압에 저항한, 거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가 해석한 윤동주의 모습처럼 그 역시도 순수와 사랑을 노래하고 싶었다. 마 교수는 누구보다 자유를 염원했고 솔직해지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러 고초를 겪기도 했다. 지난 1990년대부터 마 교수는 체포와 해직, 교수 사회에서의 따돌림을 겪었다. 그리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던 그는 2016년 정년 퇴임했다. 그리고 1년 후 자살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칭송을 받든 욕을 얻어먹든 죽어 없어진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저 나는 윤회하지 않고 꺼져버리기를 바랄 뿐

-마광수, 『시선』 中

마 교수의 소장 도서 중 7천여 권은 중앙도서관 3층 ‘마광수 개인 문고’에 배치된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광마’는 우리대학교에 다시 잠들었다. 박물관장 조태섭 교수(문과대‧고고학)는 “시대를 앞서간 마 교수가 이제는 우리대학교의 품 안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며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 박제후 기자
bodo_hooya@yonsei.ac.kr

사진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박제후 이희연 기자  bodo_hooy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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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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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소림 2019-09-11 10:29:21

    엄혹한 대학시절 이슈였던 '사라'와 '마교수님'
    에 대해 새로운면을 알게되어서 좋았습니다^^   삭제

    • 김수정 2019-09-09 02:20:30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인물의 발자취가 안타깝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평가보다는 유연한 접근이 언제나 필요한거 같습니다.
      작품들이 소장되어 전시되고있다하니 연말전에 한번 접해보고 싶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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