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화국’이라는 수식어가 더는 낯설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들기 전까지, 우리의 일상 곳곳에는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대기업의 손길이 뻗어있다. 우리가 대기업 제품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The Y』 기자들이 대신 기록했다.

① 공정거래위원회가 2019년 선정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공시대상기업집단** 및 자산 5조 원 이상의 금융 기업과 해외 기업들을 대기업으로 설정했다.
② 대체 가능한 품목은 중소기업의 물건으로 대체하는 등 최대한 대기업 의존을 지양하며 일주일을 지냈다.

 

<인영 기자의 체험기>

1일 차: 11개 (애플, KT, 애경, LG, 카카오, 구글, 네이버, 대우, 롯데, 삼성, 농협)  
아침에 나를 깨운 건 핸드폰(애플). 잠결에 확인한 핸드폰의 통신사(KT) 또한 대기업이다. 첫째 날 아침부터 아무런 대책 없이 무방비하게 대기업에 노출됐다. 다행히 세면도구나 화장품은 중소기업의 제품들이 있어서 골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햇반(CJ), 냉장고(대우), 물(롯데) 등 생필품 대부분이 대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이었다. 대기업 소비를 지양해보고자 점심으로 학식을 선택했지만, 다 먹고 숟가락을 놓은 뒤에야 삼성 웰스토리에서 학식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식하지 못한 채 대기업과 함께한 하루였다.

2일 차: 10개 (농협, 아모레퍼시픽, 애플, KT, LG, 카카오, 구글, 대우, 롯데, 삼성)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가전제품 대부분을 삼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길에서 산 미니 선풍기를 이용했다. 빨래할 때도 LG에서 출시한 섬유유연제와 삼성의 세탁기를 사용했다. 한두 벌도 아니고 이 많은 옷을 손빨래할 수도 없고…. 세탁기를 돌리면서 생활 속의 많은 부분을 대기업에 기대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저녁에 사용한 노트북 역시 삼성 제품이다. 지금 와서 노트북을 바꿀 순 없으니 앞으로 가전제품을 살 때 대기업 제품의 대안이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3일 차: 11개 (CJ, GS, 신세계, 애플, KT, LG, 카카오, 대우, 롯데, 삼성, 농협) 
비타민을 사려고 근처 편의점에 갈까 하다가 조금 떨어진 동네 약국에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문을 다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올리브영(CJ)에서 비타민을 샀다. 그러고 보니 점심에도 같은 계열사인 투썸 플레이스에서 과외를 했다. 같은 계열사끼리 포인트 적립과 활용이 쉬워 자주 이용하게 된다. 개인 사업장도 비슷한 여건을 갖춘다면 자주 이용하게 될 텐데.

4일 차: 12개 (유튜브, 아모레퍼시픽, 애플, KT, LG, 카카오, 구글, 대우, 롯데, 삼성, CJ, 농협) 
집에 들어가기 전 버스 도착 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카카오맵을 사용했다. 그런데 카카오가 어느새 대기업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선 깜짝 놀랐다.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려고 찍은 교통카드는 롯데의 계열사 제품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대기업은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 있는 것 같다.

잠들기 전 습관처럼 틀어놓는 텔레비전이 삼성의 제품이고 게다가 이용하는 서비스 역시 올레 TV(KT)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으로 온라인 스트리밍 채널 티빙(CJ)을 켜 동영상을 보려다 그만뒀다. ASMR이라도 들으려 했지만, 이 역시 유튜브에 올라온 콘텐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드는 게 낯설어 한참을 뒤척이다 잠든 밤이었다.

5일 차: 12개 (LG, 아모레퍼시픽, 애플, KT, 카카오, 구글, 대우, 롯데, 삼성, 현대백화점, CJ, 농협) 
취재 가기 전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현대백화점에 들렀다. 백화점은 접근성도 뛰어나고 여러 매장이 한 군데 몰려 있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매달 발급해주는 쿠폰이 백화점을 방문하는 가장 큰 유인이다. 잠깐 짬이 나서 옷 구경을 하다가 양심상 SPA 브랜드는 지나쳤다. 옷은 중소기업 제품도 이용할 수 있으니.

<재호 기자의 체험기>

1일 차: 7개 (삼성, 카카오, 네이버, KT, LG, LG화학, CJ)
이번 체험,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핸드폰(삼성)을 들어 간밤에 온 카카오톡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아침에 씻기 위해 사용한 치약, 샴푸 등도 모두 LG의 제품이었고, 아침을 먹기 위해 사용한 가전제품도 모두 삼성의 제품이었다. 심지어 반찬도 비비고(CJ)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는데도 대기업에 너무 많은 걸 의존한 하루였다.

2일 차: 9개 (삼성, 카카오, 네이버, KT, LG, 기아, 코카콜라, SK, 우리)
대기업 제품 소비를 자제해보려 시도했지만, 오늘은 첫 소비부터 실패했다. 무의식적으로 음료수(코카콜라)를 사 마셨다. 대기업이라고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세계적인 대기업 제품을 습관적으로 소비했다.

멀리 사는 친구와 만나기 위해 자연스럽게 차에 올라탔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보인 로고는 ‘KIA’(기아). 이동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운전을 시작했다. 중간에 주유를 위해 SK주유소에 갔다. 이 주유소에서는 특정 카드를 사용하면 주유비를 할인받을 수 있다. 대기업 간 제휴와 할인은 소비자의 의존도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4일 차: 8개 (삼성, 카카오, 네이버, KT, LG, 우리, 신한, 신협)
오늘은 금융 서비스에 가입하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 신한, 우리, 신협 등 모두 대기업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은행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프랜차이즈 카페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생각을 고치고 동네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막상 커피를 마셔보니 맛은 큰 차이가 없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했다.

5일 차: 6개 (삼성, 카카오, 네이버, KT, LG, 나이키)
오늘은 신세계백화점에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야 할 물건들이 꼭 백화점에서만 살 수 있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동안 백화점에서 구매한 물건들을 떠올려보면 옷부터 화장품까지 굳이 백화점을 이용하지 않아도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동안 편하다는 이유로 얼마나 대기업에 의존하며 생활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오늘은 소비를 자제했다.

<기자들의 체험 총평>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은 하루가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대기업 제품인지 모르고 무의식중에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문화·음식·쇼핑·교통·금융·생활 등에서 대기업이 소유한 계열사에 대부분을 빚지고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대기업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지, 대체품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본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됐다.

전문가 의견: 산업연구원의 이항구 선임연구위원 

Q. 대기업 의존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는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삼성 브랜드를 씁니다. 삼성 아파트에서 자고 삼성 자동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이렇게 대기업의 힘이 실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대기업이 모든 분야에서 수직 통합을 했기 때문입니다. 재벌이 수십 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고, 계열사 간에 내부 거래도 많이 일어나니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이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미친 영향이 커지면서 우리 산업구조가 점점 독과점 구조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 분야가 있으면 대기업은 자본을 앞세워 먼저 진출합니다. 그래서 신생기업이 성장하기는 힘들고,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거래가 끊기면 죽게 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면 좋은데, 이미 기울어진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혁신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먼저 임금 격차 때문에 인재 유치 경쟁에서 밀립니다. 인재들은 낮은 임금 때문에 중소기업을 피하고 대기업에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고 하면 대기업은 규제라고 방어하면서 해외에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현황입니다. 이전까지는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해서 수출했는데 기업의 몸집이 커지니 해외투자를 많이 하게 됐습니다. 이렇듯 대기업이 너무 커지다 보니 그 영향력을 제재하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사 자산 총액이 10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 독립된 법인끼리 자본을 교환 형식으로 출자하는 상호출자와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해 계열사 간 순환적으로 출자하는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등의 규제를 받는다. 
**공시대상기업집단: 계열사 자산 총액이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 기업집단 현황, 대규모 내부거래 등을 공시해야 한다.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다.

 

글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조재호 기자
jaehoch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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