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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다시시작] 거리 위의 문화유산, ‘오래가게’30년이 넘도록 신촌을 지킨 우리 동네 오래가게 3선
  • 이희연 박민진 기자
  • 승인 2019.09.02 02:27
  • 호수 51
  • 댓글 0

옆 나라 일본은 오래된 가게가 많다. 일본은 이를 ‘시니세(老舗)’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신용을 얻어 가업을 이어가는 점포’라는 뜻인 시니세의 어원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이런 가게들은 지역의 개성을 살리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된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2017년, 오래된 가게를 부르는 서울시만의 이름으로 ‘오래가게’를 채택했다. 오래된 가게에 일본식 한자어인 노포(老鋪) 대신 순우리말 명칭을 붙여, 한국 고유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관련 이야기책과 지도, 동영상 커뮤니케이션 앱 ‘스노우(SNOW)’의 필터를 개발·제공하는 등 상표 가치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내의 오래된 가게가 오래가기를 바라는 뜻이 담긴 오래가게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발굴되는 중이다. 2018년 9월에는 서대문구의 가게 10곳이 선정됐다. 그중에서도 신촌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며 묵묵히 신촌을 지키고 있는 오래가게 세 곳을 다녀왔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학생들의 아지트, 훼드라 (연세로5길 32)


간판에 걸린 가게 이름 ‘훼드라’의 뜻, ‘죽어도 좋다.’ 민주화를 위한 학생들의 처절하고도 숭고한 정신이 단번에 느껴진다. 지난 1972년에 개업한 음식점 훼드라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아지트였다. 대표 메뉴는 최루탄만큼 맵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최루탄 해장 라면’. 최루탄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면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던 당시의 학생들을 기리는 메뉴다.

훼드라는 1970년대의 그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예스러운 글씨의 ‘훼드라’가 적힌 간판은 처음 간판이 걸렸을 때의 모양 그대로다. 외국의 기자가 직접 남기고 간 이한열의 사진은 30년이 넘도록 가게를 지키고 있다. 가게 안의 테이블, 의자, 전등, 벽 위의 낙서조차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돌아가신 1대 사장님의 청년에 대한 애정은 훼드라를 ‘학생운동의 성지’로 만들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고통 받는 젊은이들에게 맛있는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주고 싶다”는 2대 사장님. 곳곳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이곳 훼드라에는 청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50년 역사의 자부심, 춘추사 (이화여대8길 10)


3대째 이어져 온 학위복 제작사 춘추사는 1950년대에 문을 열었다. 6·25전쟁 이후, 춘추사 가(家)는 미군이 버린 포대 자루로 의사 가운을 만들어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병원에 팔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선교사의 권유로 졸업식 학사 가운을 만들게 되면서 춘추사의 역사가 시작됐다.

학위복이라는 블루오션을 제대로 공략한 1대 대표님, ‘돈이 되는 옷이 아니라 좋은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을 꿋꿋하게 지켜낸 현재 대표님, 가게의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개편한 실장님까지. 3대에 걸친 애정과 자부심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춘추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돈은 좀 못 벌어도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선한 기업이 되고 싶어요.” 실장님은 중·고등학교 졸업식 문화 개선을 위한 학위복 대여 사업을 진행하는 등 ‘선한 기업’을 위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기나긴 세월이 흘러도 춘추사가 흔들리지 않을 이유다.

#생활체육의 대들보, 복지탁구장 (연세로8 4층)


각종 음식점과 화려한 옷가게로 가득한 젊음의 거리, 연세로. 이 길 위에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탁구장 간판이 있다. 지난 1962년부터 신촌을 지켜 온 복지탁구장이다. “탁구가 뭐 어려워, 채로 공만 치면 되는데.”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을 탁구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 사장님은 2014년부터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 중이다.

복지탁구장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가볍게 탁구를 즐기는 선수들이 이곳을 찾기도 하고, 외국인들도 종종 들려 탁구를 한다. 탁구를 할 줄 알아야만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지탁구장에서는 초보자를 위한 탁구 레슨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레슨은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초보자를 환영하는 곳이라고 해서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현재 레슨을 진행하는 코치님은 평생을 탁구와 함께했으며, 탁구를 한국에 알린 이에리사 선수의 전 코치다.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지만, 충분히 반짝거리는 곳, 복지탁구장. 지금까지 그래왔듯, 복지탁구장은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주는 편안함은 그 어느 신설 체육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에.

서대문구의 오래된 가게가 오래가게로 지정된 지 1년이 지났다. 가게 앞에 현판이 붙었고, 관련 책자도 나왔지만, 신촌을 거니는 청년들은 오래가게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가게의 사장님들은 신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신촌을 지킨 세월에 대한 책임감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가게에 대한 애정으로. 거리 위의 문화유산, 오래가게는 내일도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글 이희연 기자
hyeun5939@yonsei.ac.kr

사진 박민진 기자
katarina@yonsei.ac.kr

이희연 박민진 기자  hyeun593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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