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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아지트] 마음의 빛을 찾는 한밤의 서재, 밤의서점
  • 김병관 양하림 기자
  • 승인 2019.09.02 02:26
  • 호수 51
  • 댓글 0

세상이 붉게 물들며 사물들이 흐릿해지는 시간. 프랑스에선 해 질 녘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멀리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모든 게 불분명해지는 시간이라며.

개와 늑대의 시간에 연희동 뒷골목을 밝히는 서점이 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문을 여는 서점은 작은 입간판으로 골목길을 밝힌 채 사람들을 맞는다. 빛을 따라 문을 열면 잔잔한 음악 소리가 책장 사이로 울려 퍼지는 곳, 서가를 거닐다 보면 숨겨진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게 되는 곳. 연희104고지 정류장에서 내려 주택가로 향하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밤의서점’이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서점 소개 부탁한다.
A. 나는 폭풍의점장이다. 고교 동창인 밤의점장과 함께 밤의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점을 운영하기 전엔 광고기획자로 일했다. 광고회사에서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광고주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업계의 특성상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없었다. 브랜딩에 대한 갈증이 커질 때쯤, 밤의점장이 서점을 함께 차리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서점 주인이 되고 싶은 친구의 꿈도 이루고, 서점을 브랜딩해 마케터로서 야망도 실현할 겸 3년 전 밤의서점을 차렸다.

Q. 점장님들이 쓰는 별명이 독특하다. 별명을 지은 이유가 무엇인가?
A. 점장이 두 명이다 보니 캐릭터를 나눌 필요가 있어 별명을 지었다. 조용한 성격인 친구는 ‘밤의점장’으로, 급한 성격인 나는 ‘폭풍의점장’으로 지었다. 별명만큼 책 취향도 다르다. 덕분에 서가가 풍성해지는 것 같지만, 가끔 의견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내가 호불호가 갈리는 책을 좋아하는데, 안 팔릴 것 같은 책을 입고하자고 하면 ‘네가 책임지고 팔 거야?’라며 압박이 들어온다. (웃음) 어느 점장이 추천하는 책인지 띠지에 적어놓았으니, 이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Q. 서점이 어둡고 고요해 밤과 어울린다. 문도 밤에만 열지 않는가?
A. 밤의서점이 원래 밤에만 열진 않았다. 원래 낮 2시에 오픈했는데, 어느 날 인근 공터에서 공사를 하느라 주위가 시끄러웠다. 밤의서점은 조용한 분위기를 중시하기 때문에 공사를 하는 낮 동안엔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래서 공사가 끝나는 낮 5시에 맞춰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영업시간을 줄여도 매출에 변화가 없어 그때부터 밤에만 열기로 했다. 서점이 이름을 따라가는 것 같다. (웃음)

서점 내부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이 숨어 놀던 동굴을 생각하며 설계했다. 통로 양옆으로 높은 책장들을 겹쳐 세워 카운터에서 서점이 한눈에 보이지 않도록 했다. 서가 사이에 숨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장 사이로 책을 좋아하는 남녀가 눈을 마주치며 사랑에 빠지는 로망을 꿈꾸기도 했다. 공간은 구상대로 나왔지만, 남자분들이 안 오셔서 로망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웃음)

Q. 어떤 기준으로 서점에 들일 책을 선정하나?
A. 처음엔 심리서 전문서점으로 운영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밤의서점이 잃어버린 ‘마음의 빛’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나와 출판사에서 심리서를 만든 밤의점장의 이력도 한몫했다. 그런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심리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심리서만 가져다 놓으면 오시는 분들이 한정적일 것 같아 지금은 철학‧문학‧예술 등 여러 분야의 책을 입고하고 있다. 그래도 마음의 빛을 찾을 수 있는 책을 입고한다는 방향성은 지키고 있다.

Q. 색다른 이벤트성 상품이 많다. 몇 가지 소개한다면?
A. ‘생일문고’와 ‘고백서가’를 소개하고 싶다. 생일문고는 날짜를 고르면 그날에 태어난 작가의 책을 골라주는 서비스다. 생각보다 책 선물하기가 까다롭지 않나. 생일문고는 포장을 풀기 전까진 선물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떤 책인지 알 수 없기에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선물할 때 “너와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이야”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3년간 서점을 운영한 노하우로 365일 모든 날의 책을 준비해놓았다.

고백서가는 밤의서점을 통해 책 선물을 주고받는 서비스다. 어느 날 단골손님의 남자친구가 편지와 함께 밤의서점 상품권을 맡기고 간 적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다며, 언젠가 서점에 오면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너무 낭만적인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서비스 상품으로 만들었다. 수령인의 연락처와 선물할 책,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알려주면 예쁘게 포장해서 대신 전해준다. 수령인에게 연락하면 대부분 서점에 와서 기쁜 모습으로 찾아간다. 아이디어를 준 단골손님 커플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웃음)

Q. 독특한 상품들을 구상한 이유가 뭔가.
A. 우리는 외따로이 책을 읽지만, 책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책은 혼자 읽는 자폐적인 매체지만, 독서는 소통하는 행위이지 않은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대화방식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방식이 생일문고나 고백서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각자의 공간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밤의서점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 존재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Q. 밤의서점이 연희동에서 어떤 공간이 됐으면 하는가.
A. 연희동은 지하철이 닿지 않는 조용한 동네다. ‘숨어있기 좋은 서재’가 되고 싶은 밤의서점과 어울리는 곳이다. 우리는 혼자서 틀어박힐 수 있는 동굴 같은 서점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 막막하고 마음 둘 곳 없을 때 떠오르는 공간이면 좋겠다. 잔잔한 노래 속에서 책도 거들떠보고 필사도 하며 마음의 빛을 찾는 공간으로 사람들 곁에 있고 싶다.

인터뷰하는 내내 사람들이 찾아와 각자의 책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상과 멀리 떨어진 신비로운 공간 속에 와있는 것 같았다. 책꽂이가 둥지처럼 늘어선 이곳을 사람들이 새의 모습을 하고 찾아오는 상상을 했다. 오늘도 밤의서점은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며 마음의 빛을 찾는 사람들을 맞고 있다. 일상에 치여 한동안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면, 마음의 빛을 잃은 것 같다면 한 번쯤 찾아보는 게 어떨까. 우리에겐 세상과 멀리 떨어져야 하는 시간도 가끔은 필요하다.

글 김병관 기자
byeongmag@yonsei.ac.kr

사진 양하림 기자
dakharim0129@yonsei.ac.kr

김병관 양하림 기자  byeongma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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