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3의 TMI, 여기까진 몰랐지?

 

 

 

2019 정기 연고전을 맞이해 우리대학교 농구부 선수 13명을 대상으로 ‘연세대 출신 선수 우상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 역대 농구 우상 TOP3가 선발됐다. 대학농구 리그를 빛낸 그들의 이야기다.
 

태권도 선수 될 뻔한 이야기


양희종 선수가 처음부터 농구선수를 꿈꿔온 것은 아니었다. 양 선수는 초등학생 시절 소규모 태권도 대회를 우승해 ‘태권도왕’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양 선수가 태권도가 아닌 농구를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체육 선생님의 설득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은 양 선수의 체형이 허재 선수와 닮았다며 적극적으로 농구를 권했다.

양 선수는 선생님의 제의를 받아들여 농구 리그에 발을 디뎠다. 후일담으로 양 선수가 농구를 하겠다며 태권도장을 그만두려 하자, 관장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의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양희종은 ‘태권도 금메달리스트’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90년대 별들의 뒷이야기


1990년대 우리대학교 농구부의 이상민, 서장훈 선수는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경기 후 그들이 숙소에 돌아오면 편지가 몇 자루씩 쌓여있을 정도였다. 이 선수의 부모님은 집 앞 벽이 팬들의 낙서로 가득해 ‘낙서 전용공간’까지 마련했다. 이런 이 선수의 인기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재현되기도 했다. 그 시절 이 선수의 팬들은 현재 부모 세대가 됐다. 팬들은 자녀와 함께 이 선수가 감독하는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한편, 서 선수는 대중의 많은 관심으로 인해 고충을 겪기도 했다. 서 선수는 ‘승부가 곧 최고의 팬 서비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는 서 선수가 더욱 완벽함에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서 선수는 경기가 끝난 후에도 실패한 골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은퇴 후 예능에서 서 선수가 보여주는 모습은 ‘완벽주의자’다. 그에게 붙은 ‘까탈’과 ‘깔끔’이라는 수식어는 선수 시절의 버릇이 아닐까.

 

제2의 허재, 허웅 선수의 대반전

 

허웅 선수는 전설의 농구선수, 허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아들이다. 그러나 허 선수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타고난 재능으로 쉽게 정상에 올랐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중학생 시절부터 농구를 접했다. 처음에 그의 실력은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농구로 유명한 용산고를 진학한 후 그의 실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용산고의 강도 높은 훈련이 아버지의 위상을 이어갈 정도로 허 선수를 성장하게 했다. 사람들은 허 선수가 중앙대에 진학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허 감독이 중앙대 출신이고, 중앙대가 느슨한 팀 분위기에서 개인의 기량을 발휘하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 선수의 선택은 우리대학교였다. 우리대학교만의 조직적인 경기 운영과 농구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때문이었다. 입학 후 그는 슈팅가드로 큰 활약을 했다.

 

글 윤세나 기자 
naem_sena@yonsei.ac.kr
김재현 기자
bodo_boy@yonsei.ac.kr

그림 나눔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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