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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칼럼] 방학 ‘잘’ 보내셨나요?
  • 민수빈 기자
  • 승인 2019.09.02 00:01
  • 호수 51
  • 댓글 0

어느새 9월이다. 숨을 턱 막히게 했던 더위는 선선히 불어오기 시작하는 바람에 자리를 내준다. 캠퍼스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이들로 다시 북적이고 “방학 잘 보냈냐”는 인사가 오간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곱씹어 보자. 방학을 ‘잘’ 보낸다는 건 무엇일까.

방학(放學). 배움을 놓는다는, 여유 가득한 한자어다. 단어의 의미를 보면 방학은 우리가 긴장을 벗어나 쉼표를 찍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하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 쉼표에 따라 숨을 돌리는 이들을 찾기란 어렵다. 당장 포털 사이트에 방학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휴식과 여가 이야기보다는 ‘인턴 참가자 모집 공고’, ‘청년취업 아카데미’ 등의 단어가 즐비하다. 지난 6월 취업지원서비스기업 ‘잡코리아’가 대학생 3천200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는 청년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들 중 절반 남짓이 여름방학의 로망으로 여행을 꼽았지만, 실제 계획을 묻는 말엔 십중팔구 아르바이트와 자격증 취득이라 답했다.

대학생으로 서두를 열었지만, 숨 가쁜 삶은 곧 모두의 이야기다. 어른이 되기 전부터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외줄 타기를 시작하고, 한순간에 설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안절부절못한다. 성실, 신속, 효율이 선(善)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태와 느림에 혀를 차는 세상이다. 요컨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 사회 그 자체다. 요즘 청년들의 방학은 사회상을 드러내는 단면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무한경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정말로 경쟁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만’하는, 이 사회의 필수요소인 것일까. 경쟁의 기원이 인간의 본성이라 주장하기엔 우린 분명 서로를 도우며 살아간 적이 있다. 인류는 협동으로 논밭을 일구며 사회를 이뤘다. 경쟁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기엔 너무 많은 이들이 마음의 병을 얻고 있다. 13년째 1위를 놓치지 않는 자살률, 늘 꼴찌 언저리에 머무는 국민 행복 지수가 이를 증명한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알피 콘(Alfie Kohn)은 “어려서부터 우리는 하찮고 경멸스러운 보상들-A가 잔뜩 쓰여 있는 시험지, 벽에 붙은 우등생 명단-을 받아들며 ‘쟤보단 내가 좀 더 낫지’란 저열한 만족감을 느끼기를 강요받는다”고 말했다. 실상 뭔가를 얻지도 않았지만 이런 보상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경쟁이란 얻는 데 비해 잃는 것이 많은 장사다. 순위만을 매기기 위해 열리는 대회의 한가운데서 인간은 자존감, 인간성, 긍정을 서서히 잃어간다. ‘너는 무엇을 했는가’가 아닌 ‘너는 누구보다 무엇을 더 많이 했는가’란 질문 아래 우린 끊임없이 저울질당하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실상은 저 높이 있는 누군가에게 착취당하다 버려지는 것인데도, 그 간택을 ‘성공’이라 믿어버리는 것이다.

뚜렷한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자신의 삶을 착실히 꾸려가는 이들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성공을 향한 노력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앞서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성공을 위해 불의를 눈감고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함께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낸 입장에서 이 무한경쟁에 반기를 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사실 이런 의문을 던지는 나 또한 어느 순간 누구보다 더 잘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데만 몰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삶을 ‘잘’ 혹은 ‘잘못’이라 평가할 수는 없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모두의 삶은 그 자체로 귀히 여김을 받을 가치가 있다. 사회가 갖다 대는 경쟁의 잣대에 일희일비하며 자신을 미워하지는 말자. 이상하게도 남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사랑하는 게 더 어렵다. 하지만 별것 없다. 일상 속에서 ‘나’란 존재를 무언가의 뒤에 두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를 위주로 생각해 보자. ‘나는 지금 뭘 하고 싶지?’, ‘나는 지금 뭘 원하고 있지?’와 같이 말이다. 그런 사소한 마음 씀씀이가 분명, 우리가 우리 자신일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란, 그 의식만은 잊지 말자.

우리를 괴롭게 했던 여름만큼 속 뜨겁고 탈도 많을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은 곧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새 계절, 새 시간만큼 만인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기회도 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버티는 모두의 행복한 새 출발을 바라본다.

글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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