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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관한 학우들의 의견만들어진 반일(反日)
  • 임재우(정외·19)
  • 승인 2019.09.02 00:14
  • 호수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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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우
(정외·19)

관제 반일 민족주의 선동이 또다시 나라를 휩쓸고 있다. 70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반일민족주의적 질서는 지지율 확보를 위한 검증된 정치적 전략으로, 모든 국민은 마땅히 이에 동조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를 위한 불매운동은 이 정점에 있는 것에 마땅하다.

지난 7월 8일,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이 정도 경제침략 상황이면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 간의 사안을 국민에게 책임전가 하는 이 얼마나 무책임한 사태인가. 관제 애국과 관제 감정. 근래 또다시 이 같은 선동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상황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크게 역행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생각이 과도한 친일 행각이 아닌지 지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반일 선동이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는 진실을 망각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여기서 책임의 소재가 일본에 있음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28~29일 개최된 G20 오사카에서 일본은 선언문을 발표하며 자유무역을 이끌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바로 다다음 날인 7월 1일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다. 실로 치졸하며 기만적이다. 이러한 상황이니만큼 일본의 기만적 경제제재에 맞서 경제적 대응인 불매운동을 시행하는 것이 충분한 명분이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작금의 불매운동이 감정만을 앞세운 채 과도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야 한다. 중·일의 혐한시위에 비교해 작금의 불매운동이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맹목적인 프레임에 빠져 있고, 감정을 앞세우며, 정부에서 방치를 가장한 사실상의 용인하에 일을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한편 현 사태를 일본 국내정치의 시각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알다시피 지난 2018년 10월에 선고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아주 논쟁적인 사안이었다. 혐한 여론은 계속 돼 왔다. 2019년 7월 에 예정된 참의원 선거를 위해 아베 정부가 관제 혐한 카드를 꺼내 든 것 또한 일본의 전략으로 정석적인 행위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선거 이후 국내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한 양국 정부의 합의 하에 다시 원만한 관계를 추구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으리라 보인다. 그럼에도 분쟁은 계속되며, 정부·여당은 여전히 불매운동을 비롯한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마치 국내외로 현 정부의 두 가지 큰 결함을 덮으려 이 사태를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안보의 결함이다. 임기 초반부터 정부는 ‘한민족’ 북한에 평화 기조를 설정한 반면, ‘민족의 한이 어린’ 일본에게는 일관적 적대 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북한은 잇따른 군사도발을 감행하며 시민의 대표자에게 공식 석상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망발을 내뱉었다. 지지율의 검증된 공식인 반일 민족주의로 문제해결의 책임을 국민에게 맡기며 이러한 외교 정책의 실패를 덮고자 하는 것이 정부의 최근 동향이다.

둘째는 정권 정당성의 결함이다. 전임 정부와 대비해 현 정부는 ‘소통’을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았다. 실제 임기 초반에는 국민청원 등으로 적극적 소통 의지를 보이며 많은 지지를 얻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 정부 역시 이전과 다름없는 불통 행보를 보이고 있다. 소통이라는 정권 존립의 정당성이 위태로워진 만큼 더 강력한 반일을 통해 여론을 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컨대 정부와 집권당이 자신들의 치부를 덮기 위해 관제 반일에 앞장선다고 할 수 있다. 유사시에 한국의 우방이 민주국가일지 독재국가일지는 명확한바, 양국 정부는 소모적인 민족적 선동을 중단하고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반일감정이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계략임을 인지하며, 맹목적 불매운동을 중단하고 다만 교류를 도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식민시대로부터 강산은 수없이 변했고 달라진 사람들은 새롭다. 그러나 유독 민족주의만이 과거의 망령이 돼 현시대를 떠돌고 있다. 세계화의 패러다임에 발맞춰 미래로의 진보를 택할 때만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안전을 득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수십 년 동안 비합리와 불의에 맞서 싸워 온 역사가 있다. 미래를 위한 성숙한 담론의 장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확신하며 이 글을 마친다.

임재우(정외·19)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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