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와 일본 불매운동

조건희 (문화인류/사회·17)

어쩌면 이제는 3차례의 퓰리처상 수상보다 트럼프에 대한 맹렬한 비판으로 더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제목 속 두 단어를 가지고 냉전 이후의 세계를 살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계는 ‘렉서스’로 상징되는 현대 세계화 시스템 그리고 ‘올리브 나무’로 상징되는 민족 정체성, 지역공동체에 대한 의식 간의 긴장과 충돌 속에 있다. 전자는 세계화의 중심에 있는 인터넷이나 다국적 기업을, 후자는 한국의 얼과 혼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저자는 올리브 나무는 사람을 정착시키고 사람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주며 세계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설정해준다고 말한다. 올리브 나무에 대한 과한 집착은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같은 사례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올리브 나무가 인간의 사회적 삶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저자는 올리브 나무를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필요한 요소로 바라본다. 저자는 “튼튼한 올리브 나무가 없는 나라에 사는 사람은 결코 뿌리를 박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지금 한국 사회에도 프리드먼이 말하는 올리브 나무가 자라나고 있다. 한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 국내 일본 불매운동이 뚜렷한 증표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 브랜드 제품 불매를 독려하고 일본으로의 여행을 취소했다는 SNS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이는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노역 피해자 배상 판결에서 시작된 한일 분쟁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일제강점기가 남긴 역사적 잔해는 불씨가 돼 약 100년이 지난 지금 반일의식의 대중적 실천을 불러일으켰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극히 소수다. 그러나 지금만큼 반일 감정이 수면 위로 여실히 드러난 적은 없다. 일본이 국권을 강탈한 1910년부터 쌓인 반일의식은 이후 지금에 와서 국민적 동조와 실천으로 이뤄지고 있다. ‘렉서스’를 밀쳐내고 ‘올리브 나무’가 급격히 성장한 격이다. 그리고 이런 성장의 뒷배경에는 아베 정권이 오랜 기간 고수해온 역사 수정주의와 전례 없던 강력한 수출 규제 그리고 대한민국을 무시하는 일본 기업들의 태도가 있다.

한국은 일본의 박해와 수탈에서 벗어난 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태 그에 항의하는 국민적 행동이 제대로 이뤄진 적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겨레의 가슴에 새겨졌던 독립 정신이 산산이 부서져 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렇지만 SNS를 포함한 각종 미디어를 통해 활발히 이뤄진 반일운동은 한국이 일본에 수탈당한 과거를 잊지 않고 있으며 한국인의 저력도 작지 않다는 것을 일본 사회에 보여줬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시민 통합의 구심점을 다질 수 있게 됐다. 또한 프리드먼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이번 불매운동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자존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의 성패는 이 큰 올리브 나무를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수 있냐에 달려있다. 얼마 전, 불매운동과 관련해 일부 사람들의 미성숙한 태도가 논란이 됐다. 이들은 SNS에서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을 팔로우하고 캡처한 사진을 올리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가 하면, 일본 불매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불매를 강요하기까지도 한다. 이처럼 타인을 배제하거나 조롱하며 강압을 가하는 모습은 현 일본 정권의 독재적인 향방에 반하는 일본 불매운동의 본질을 흐리게 할 뿐이다. 우리가 다른 방식 또한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로 불매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올리브 나무는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크면서도 건강한, 그것이 바로 프리드먼이 강조한 ‘튼튼한 올리브 나무’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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