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팬덤과 기획사를 통해 본 '돈, 돈, 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BTS.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다른 팬덤의 입장에서는 부러울 정도로 그 인기는 대단하다. 이 돌풍 속에서 주목해볼 만한 부분이 있다. 방탄소년단의 인기 덕에 2019년 3월 기준 그들의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기업 가치가 약 2조 8천억 원에 이르렀다는 점. ‘팬심(fan-心)’이라는 감정이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은 연예 산업의 원동력이다. 기획사는 소속 가수의 팬을 더 많이 모으려 노력하고, 팬들은 가수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며 선뜻 돈을 낸다. 이렇게 가수는 하나의 상품이 됐고, 아이돌 시장은 경제적 원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이다.

 

기획사: 팬심으로 최대한의 돈을 모으기

 

연예기획사라는 ‘기업’의 입장에서 팬심을 이용해 자본을 축적하려는 건 당연하다. 하나의 그룹이 데뷔하기까지 기획사가 들여야 하는 초기 비용은 억 단위에 달한다. 그렇기에 이를 돌려받아야 기획사의 존속이 가능할 터. 기획사가 부유할수록 가수가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는 만큼, 연예 산업에서 자본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팬심을 활용한 기획사의 전략은 다양하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 ▲굿즈 제작 및 판매 ▲공식 팬클럽 운영 ▲팬 사인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먼저 유명한 가수는 유튜브 시장에서 ‘흥행 보증 수표’나 다름없다. 이를 이용해 뮤직비디오 촬영기를 비롯한 안무 동영상,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브이로그(Vlog)’*, ‘직캠’** 등을 기획사에서 자체 제작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경우 현재 기준 약 2천6백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보유해 K-POP 그룹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기획사가 제작해 팬덤을 상대로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상품, ‘굿즈’ 또한 하나의 독점 시장을 형성한다. 대표적인 굿즈로 꼽히는 공식 응원봉을 비롯해 열쇠고리, 부채, 볼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스타의 얼굴이 새겨지는 순간 팬들에겐 ‘꼭 사야 하는’ 제품이 된다. 수요가 많다 보니 굿즈는 일반 상품보다 가격대도 높다. 그룹 ‘워너원’의 멤버 강다니엘의 팬이었던 김민혜(22)씨는 “공식 굿즈는 디자인이 예쁘고, 같은 멤버의 굿즈라도 콘셉트가 다른 게 있어 모두 구매해야 직성이 풀렸다”며 “내가 좋아하는 멤버의 굿즈가 더 많이 팔려야 한다는 생각도 구매에 한몫했다”고 말했다.
일정 금액을 내야 기획사가 모집하는 공식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공식 팬은 콘서트 티켓 선예매나 공개 음악방송 방청 기회 등을 누린다. 가수가 팬 한 명 한 명과 대화하며 사인을 해주는 이른바 ‘팬 사인회’는 음반을 많이 구매할수록 당첨 기회가 높아지는 구조다. 유명 아이돌의 경우에는 장당 2만 원에 달하는 음반을 수십 장 구매해도 당첨에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김씨는 “워너원이 한창 활동할 당시 음반을 100여 장 구매해도 당첨되지 못한다고 들었다”며 “열 장 정도 사들인 나는 꿈도 꿀 수 없었다”고 전했다.

 

팬덤: “이 정도야 뭐” vs “이건 너무 심하잖아!”

 

이런 기획사의 전략에 팬덤의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스타를 위해서 그 정도는 낼 수 있다는 입장과 팬심을 악용한 기획사의 횡포라는 입장이다. 먼저 일부 팬들은 자발적으로 기획사가 내놓는 상품을 소비한다. 경제력으로 자신의 팬심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덤의 세계에서는 종종 상품을 소비하지 않는 행위가 팬심 부족으로 간주되기까지 한다. 콘서트 티켓을 비공식적으로 거래할 때도 판매자는 ‘정가에 티켓을 넘기려면 팬이 맞는지 확인해야겠으니, 공식 굿즈와 음반을 보여달라’고 구매자에게 요구한다. 연예인을 위해 돈을 쓰지 않았으면 팬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게다가 신곡이 발매된 직후 몇몇 팬은 자발적으로 여러 음원 사이트의 아이디를 구매해 스트리밍***을 돌리기도 한다. 내 가수를 실시간 차트의 더 높은 순위권에 올리기 위함이다. 이렇게 팬들이 기꺼이 연예 산업의 소비자를 자처하는 현상은 공공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반대로 팬심을 악용한 기획사의 횡포에 팬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 또한 종종 목격된다. 지난 1월 그룹 ‘데이식스’의 팬덤 ‘마이데이’는 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에 팬덤 공동 성명서를 제출했다. 그간 쌓여온 팬들의 불만에 불을 지핀 사건은 바로 데뷔 후 첫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었다. 분명 좋아할 일이지만, 그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은 총 8회에 분량이 회당 20분 남짓, 전체 결제 금액은 팬클럽 가입비와 맞먹는 2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기획사의 타 가수 무료 콘텐츠와 비교할 때 분량도 적었기에 팬들의 화를 불렀다. 한편 지난 2018년 ‘SM엔터테인먼트’는 그룹 ‘NCT’의 공식 굿즈로 응원봉이 아직 출시되지 않았음에도 ‘응원봉 파우치’를 발매해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팬심, 순수성과 수익 사이 어딘가

 

팬이 연예 산업의 소비자가 되는 일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생산자가 돼 돈을 버는 일은 금기시된다. 팬심의 ‘순수성’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팬들의 자체적 생산물은 영리 목적이 아니며, 그러한 생산물을 주고받음으로써 팬덤의 결속력이 높이는 데 의의를 둔다. 팬이 소비자일 때 팬심이 자본으로 환원되는 현상은 당연하면서도, 생산자일 때는 얘기가 다르다. 실제로 팬들이 모인 트위터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대가 없이 ‘대리 구매’가 필요한 사람을 모집하기도 한다. 콘서트 당일 늦게 도착하는 다른 팬을 위해 비교적 빨리 문을 닫는 굿즈 판매소에서 먼저 굿즈를 구매하고, 같은 가격에 양도해주는 관례다. ‘대리 구매’를 해주는 팬들 중 일부는 자신의 시간을 들였지만 수고비는 받지 않는다. 앞서 말한 인증을 거친 팬이 정가로 티켓을 양도받는 일도 유사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팬 활동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는 추세 또한 존재한다. 최근 일부 팬은 자신의 생산물을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작된 상품은 경제적 수익으로 이어진다. 연예인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홈마’가 이에 해당한다. 홈마는 스타를 따라다니며 고가의 전문 카메라로 사진과 영상을 찍는다. 이를 유튜브 계정에 배포하거나 사진을 활용해 제작한 굿즈를 유료로 판매하는 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홈마는 찍은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그들은 일반 팬이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사진을 보유하고 있어 그들의 자체제작 상품은 더욱 인기가 있다.

 

이렇듯 돈을 둘러싼 팬덤과 기획사의 움직임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스타를 기획하고 활동을 지원하는 기획사가 없으면 팬덤도 존재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기획사의 전략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며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팬덤의 역할은 가히 흥미롭다. 앞으로 자본을 둘러싼 팬덤의 움직임이 어떻게 변화할지 다 함께 지켜보는 건 어떨까.

 

*브이로그(vlog):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말한다.
**직캠: ‘직접 캠코더로 찍은 영상’의 줄임말
***스트리밍: 인터넷에서 음성이나 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법

 

글 박지현 기자
pjh876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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