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속 럼(Rum)과 바다를 둘러싼 이야기

“Why is the rum always gone?”

취한 듯한 걸음걸이, 한껏 혀가 꼬인 발음과 익살스러운 표정.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속 ‘잭 스패로우’를 대표하는 것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흥행한 블록버스터 시리즈인 만큼 대부분은 지금쯤 비틀거리는 그 모습이 상상될 법하다. 그가 허구한 날 어디 갔냐며 투덜대는 그 대상은 바로 ‘럼’이다. 지난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영화가 다섯 편의 시리즈로 이어지는 동안 그의 술 취향만큼은 한결같다. 이 남자에게 럼은 손에 쥐어있지 않으면 불안한 생명수와도 같다. 술 없이는 하루라도 선상에서 살지 못하는 이 술주정뱅이가 어떻게 전 세계를 매료시킨 걸까.

 

생명수라는 단어가 과장이 아닌 게 실제로 해적선에서 선원들에게 내려지는 가장 큰 형벌은 금주였다. 해적질이 성행하던 17세기 해적들은 물이 썩을 것을 대비해 술을 갖고 다녔다. 그렇게 ‘럼’이란 술을 물 대신 마셨다. 즉 럼을 마시지 않으면 항해 중에 갈증으로 죽을 수도 있던 것. 그래서 ‘뱃사람들의 술’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물처럼 마시기엔 도수가 아주 높고 강렬하다. 그 높은 도수 덕에 오랜 기간 썩지 않고 뱃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럼(rum)이라는 이름도 이 독한 술을 마시고는 흥분(rumbulion)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그 많고 많은 독주 중에서 왜 하필 럼이었을까. 그 비밀은 17세기 카리브 해에 있다. 당시 식민 개척자들은 노예들의 노동으로 움직이는 사탕수수 농장을 열었다. 그 농장에서 사탕수수의 찌꺼기로 만들어진 술이 바로 럼이었다. 교역이 이뤄지던 바다는 곧 럼을 실은 배들로 가득 찼고, 그 무렵 해적들은 럼을 쟁탈해 운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대항해시대 럼의 중개자 역할을 하며 럼에 빠지고 만 것이다.

 

“럼은 이제 없어.”
“왜 럼을 불태웠어?”
“첫째, 럼은 존경할 만한 남자도 한순간에 구제 불능으로 만드는 사악한 술이니까. 둘째, 불길이 300m 높이까지 치솟고 있잖아. 지금 영국 해군 전체가 날 찾고 있어. 그들이 저 불길을 발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길 정말 원하는 거야?”
“그래도 왜 하필 럼이어야 했냐고!”

 

잭 스패로우는 그런 럼을 사랑했다. 아니, 마시지 않고선 못 사는 중독에 가까웠다. 무인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엘리자베스’가 럼을 모두 태우자 그는 어느 때보다 깊은 절망에 빠졌다. 광기에 사로잡혀 총까지 꺼내는 그를 보고 ‘이 술이 없었더라면 과연 영화가 5편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하는 공연한 생각까지 들었다. 럼이 없는 그는 위험천만한 파도 위에서도 여유로웠던 잭이 아니었다. 그가 두려워했던 건 럼이 완성해주는 ‘무법자 잭 스패로우’의 상실이었을 것이다.
잭 스패로우는 자유로운 무법자기에 오랜 시간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영화의 배경인 17세기에 국가, 즉 육지는 법이 휘두르는 폭력의 온상이었다.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이들은 납작 엎드려 버티듯 하루를 살아가는 곳. 그런 가운데 육지를 떠나 원초적인 문법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해적’이었다.

 

괴테는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안전하지만 그게 존재 이유는 아니다”란 말을 남겼다. 파도 위에서 흔들릴 때 한 치 앞도 모르는 그 상황이, 비로소 배가 가장 ‘배다울’ 때다. 배 위의 해적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술을 마시면서도 내일 출근을 걱정하고 계획을 정리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그래서 내일이 없는 것 마냥 70도가 넘는 술을 들이붓는 건 자유로운 해적의 특권과도 같아 보인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규칙을 어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자들. 그 방탕함이 우리가 규범에 짓눌려 꽁꽁 숨겨왔던 자유에 대한 갈망을 건드린다. 그 갈망이 스크린에서 실현될 때 관객들은 쾌감을 느낀다.

 

무법자로 세상을 살아갈 배짱을 완성해주는 럼. 그 대단한 술의 맛이 궁금해 뜨거운 초여름, 수업이 다 끝난 오후 신촌의 ‘녹스’에 방문했다. 술에 대한 칼럼을 쓴단 말에 특별히 사장님께서 원액 그대로의 럼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만나게 된 75도짜리 럼. 얼음을 녹여 희석해 마셨는데도 마치 아세톤을 마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식도에 불을 끼얹는 것 같은 뜨거운 기운이 곧바로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어찌나 독하던지 스스로 잔에 다가가는 손을 붙잡았다. 술 마실 때조차 내일의 나를 걱정하는 건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인가 싶다. 사실 럼은 이렇게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경우가 드물다. 대신에 다른 음료와 섞어 칵테일로 만들어 마신다. 대표적으로는 콜라와 섞은 ‘럼 콕’, 라임 주스와 섞은 ‘바카디’, 파인애플 주스 등과 섞은 ‘블루하와이안’ 등이다.
호기심이 부른 뜨거운 경험 후 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잭 스패로우가 아니었다. 선상에서 살지 않는 우리는 내일이 있다.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규범이 많은 우리는 75도짜리 럼을 절대 물처럼 마실 수 없다. 왜 사람들이 럼을 더이상 스트레이트로 마시지 않는지 짐작할 수 있다.
럼과 함께한 밤을 통해 잭 스패로우의 인기 비결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유를 향한 낭만과 갈증을 잭 스패로우를 통해 풀었던 게 아닐까.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인기는 현대인의 어떤 목마름을 반영한다. 나를 통제하지 않아도 되고, 법과 규범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한 본능적인 갈증. 잭 스패로우가 가로지르던 카리브해를 향한 갈증을.

 

글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사진 하광민 기자
pangm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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