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 편집국장 (문화인류·17)

 

지난 2017년, 총학생회 보궐선거가 무산됐다. 대학에 막 입학한 내게 총학생회의 부재는 별다른 경각심을 주지 못했다. 총학생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중요한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학보사 수습기자가 아니었다면 총학생회가 없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그 후 2년간 우리대학교에선 3개의 선본이 생겨났다가 사라졌고 학생들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익숙해졌다. 총학생회는 점점 ‘역사 속의 존재’가 돼가는 듯했다.

그렇게 학생 사회가 동력을 잃어가던 차 보궐선거가 성사될 거라는 풍문이 돌았다. 때는 2019년 초였다.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선본이 출마했고, 54대 총학생회 보궐 선거가 다시 한번 시작됐다. 두 선본은 마지막까지 흥미로운 페넌트레이스를 펼쳤다. 한 달간의 여정 끝에 총학생회가 탄생했다. 3년 만에 총학생회실의 주인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FLOW>는 당선 직후 많은 사업을 진행했다. 대동제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장식했으며 많은 복지 정책을 운용했다. GBED 학생 공청회와 강사법 3자 논의 등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학교에 전달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하지만 몇 가지 주제에 관해선 총학생회가 더욱 선명한 문제의식을, 조금은 더 과감하게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겨울 총여학생회의 대체 기구로 고안된 성폭력담당위원회 구성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 제반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총여학생회가 수행하던 역할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우선적으로 다룰 주제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반년 남짓 남은 19대 총장 선출 방식을 둘러싸고도 학내에 반향이 일고 있다. 총학생회는 관련 성명문과 현수막을 게시하고 이사회를 방문하는 등 사후대처에 집중했다. 총장 선출은 향후 4년간 우리대학교를 위해 일할 총책임자를 뽑는 절차다. 앞으로의 4년을 결정하는 과정인 만큼 관련 정보 습득과 공론화도 조금 일찍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우리는 왜 그토록 총학생회를 갈망했나. 비상대책위원회가 아니라 총학생회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상대책위원회와 총학생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치성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행정 업무 처리에 집중하는 조직 체계다. 말 그대로 비상상황에만 조직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체 학생 대표 기구인 총학생회는 학내 구성원의 정치적 목소리를 주도적으로 대변한다. 그 과정에서 총학생회는 학내 여론을 수렴해 학교에 전달할 수도 있고, 문제를 바라볼 틀을 다양하게 제시할 수도 있다. 후자는 보통 ‘정치적’ 행위로 인식되는데, 최근 다양한 담론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각에선 정치적 행위를 삼가는 ‘탈정치화’를 주창한다.

탈정치화가 학생 사회의 트렌드로 자리한 지금, 2019년의 연세 총학생회는 ‘정치적’이어야 한다. 학내 여론과 배치되는 입장을 고집하라는 말은 아니다. 특정 정치 성향을 띠라는 제언도 아니다.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본질적으로 좌우하는 문제를 발 빠르게 포착하고 논의를 전개해달라는 부탁이다. 주도자가 없는 학내 공론장에서 학생들은 산발적으로 의견을 표출한다. 이런 방식은 상대적으로 많은 정치적 담론을 포용할 수 있다. 한편 제시되지 않은 문제는 다루지 못하고 논의 전개가 지지부진해진다는 맹점도 있다. 지난 3년간 지속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이러했다. 그러나 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의제에 관해선 특정 주체가 논의를 이끄는 방식이 제한된 시간 내에 응집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총학생회가 먼저 학내 구성원에게 ‘아젠다(agenda) 세팅’을 하는 것은 그 방법 중 하나다.  

나는 총학생회의 소멸과 함께 학보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총학생회 출범과 동시에 편집국장으로 취임했다. 이런 내게 54대 총학생회는 더욱 뜻깊다. 개인적  소회를 차치하더라도 오늘날 연세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총학생회의 역할은 필수 불가결하다. 한 명의 총학생회원으로서 보다 주체적인 정치적 공론장 마련을 총학생회에 요청하며 신문 편집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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