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경 (정외·18)

 

꽃은 아름답다. 사람들은 소중한 존재에게 꽃을 선물한다. 꽃의 아름다움을 빌려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나 역시 가족과 친구를 위해 꽃말을 생각하며 꽃을 고른 기억이 있다. 꽃의 아름다움은 주고받는 행위에 달보드레함을 더해준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은 꽃에게 있어서 중요한 꼬리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한 번, 꽃이 아름다울 수 없는 순간을 발견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선생님께 조화를 선물하려다 엄마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 죽은 꽃을 선물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누구나 알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조망한 조화 역시 아름답다는 걸. 생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조화를 당연하게 아름답지 않다고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의 중간중간 꽃을 선물한다. 어떤 이의 ‘인생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사이에 무수한 꽃이 존재함을 확인할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꽃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뭇 페이지에서 꽃은 행복을 전해준다. 하지만, 마지막 시간에서 꽃은 그 어떤 아름다움으로도 행복을 주지 못한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그 꽃향기가 퍼지는 공간에 슬픔을 더해줄 뿐이다.

처음 치러 본 가족의 죽음에서 이 역설적인 꽃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삶의 마지막에 그려지는 꽃은 남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 사람들이 대신 꽃을 전해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더 슬픈 것일지도 모른다. 내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꽃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난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동안 보아온 꽃의 아름다움을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꽃의 외형적인 못남도 나의 능력 부족도 아닐 것이다. 슬픔이 뒤덮인 공간 속에 들어오기에는 그 아름다움은 철저히 이기적이었다.

그 꽃은 분명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에게만큼이나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그럼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사라졌으면 했다. 떠나간 자리에 꽃이 남았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기 싫은 시간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가며 꽃의 이야기를 들어주기에는 여력이 없었다. 그 안에서 야속함을 느끼기도 했다. 아름다움을 빌미로 사자(死者)를 떠나보내려 하는 것 같았다. 꽃의 아름다움으로도 무마될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존재가 누군가에게 꽃 하나의 등가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게 힘들었다. 그 시간 속의 꽃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고, 아름다워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타인의 마지막 꽃을 훔쳐 받은 이후로 나는 한동안 지인들이 전하는 부고를 연락받고도 멈춰서 있었다. 오는 연락에 갈 수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둘러댔다. 그날의 그 시간의 공기가 나를 옥죄어 오는 듯해서 그곳으로 당연하게 향하지 못했다.
 

순간의 마지막에 받는 꽃은, 영원히 아름다울 수 없다.
 

아직 이 꽃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누구나의 꽃장은 시나브로 이 꽃을 향해 채워져 가고, 언젠가는 타인의 꽃장에 꽂혀있는 이 꽃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슬픔에 목 놓아 잠식되기보다는 이 꽃을 도움 삼아 아스라이 지나갔던 꽃들을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름답지 않은 눈앞의 꽃과 싸우기에는 지난날의 아름다운 꽃다발이 서운해할 것이다. 잠시 멈춰 서서 시들어 가버린 꽃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때 그곳에서 그러지 못한 내가, 뒤늦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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