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정 사회부장 (국제관계·17)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것은 언젠간 그 명을 다한다. 도어락에 꽂힌 배터리, 중학교 때 처음 산 스마트폰, 그리고 사람 모두 정해진 명이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가 살아가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것에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의 반복은 두려움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아직 나는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다. 나의 죽음은 물론이고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까지도. 과거 죽음에 대한 상상은 항상 나를 눈물 글썽이게 만들었다. 감정이 격해질 때는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한바탕 눈물을 흘린 뒤에는 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다반사였다. 장례식장도 안 가본 내가 죽음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이러는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죽음을 대하는 나의 감정이 변화했다. 언젠가부터 죽음을 당연히 겪어야 할 하나의 상황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늙어가고 옆에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말씀하신다. 처음에는 소스라치며 화를 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 나는 죽음에 익숙해졌다.

‘언젠가는 내 옆에 계시지 않을 때가 오겠지’.

생각만 해도 공허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모두가 생각하듯 다가올 일인 것을. 죽음에 대해 달라진 감정은 태도의 변화를 낳았다. 지난 1월 『나는 코코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라는 전시회에 다녀왔다. 화려한 작품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전시회는 동심(童心), 패션 등 여러 주제로 구성돼 있었다. 그중 하나가 죽음이라는 주제였다. 무채색의 어두운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거기에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큰 검은색 캔버스에 ‘i’m sorry’라는 글자가 빼곡히 박힌 작품이었다. 작품을 봤을 때 죽기 직전까지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의도가 보였다. 동시에 나는 ‘죽기 전까지 뭐가 저렇게 미안했던 걸까’라는 말을 삼켰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아차 싶었다.

많은 것들이 미안한 나다. 바쁜 학내 활동에 귀찮음과 피곤함은 쌓여갔다. 단지 내 상황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홀해져 갔다. 엄마와 주말에 같이 장보러 나가지 못해서 미안하고, 출근할 때 배웅해주지 못한 아빠에게 미안하고, 같이 커피 한 잔을 마셔주지 못한 친구에게 미안하다. 사소한 것부터 따지면 미안한 일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일련의 상황들에서 미안한 감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항상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수 만 번 다짐했다. 과연 지금까지 제대로 실천한 다짐은 얼마나 될까.

내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내 주변의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을 상상해봤다.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아쉬움과 후회되는 순간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 때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각인될 것이다. 지울 수 없는 후회와 슬픔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삶에 있어 후회와 슬픔이 남지 않게 노력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성급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을 예측할 수는 없다. 때문에 나는 항상 긴장하며 살아간다. 긴장을 놓치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후회와 슬픔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불행할 것이다. 나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 언제든 다가올 죽음에 준비한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면서 그들과의 추억과 함께 했던 시간에 조금이라도 웃음 지을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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