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 이주 아동

제도 밖에 놓여 법적으로 인지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미등록 이주 아동이다. 이들은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상태로 사각지대에서 표류한다.

 

몇 명인지도 모를
유령 같은 존재

 


이주 아동이 미등록 상태인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불법으로 입국했거나 국내에서 체류하다 기간이 만료되는 경우다. 법무부는 이런 아동을 약 3천 명으로 추산한다. 다른 경우는 외국인 불법체류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경우다. 이들은 국내에서 태어났음에도 출생신고 없이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미등록 이주 아동은 약 2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그중 국내에서 나고 자란 미등록 이주 아동은 별도의 출입 기록이 남지 않아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다.

국내 출생 미등록 이주 아동은 부모의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생긴다. 부모가 불법으로 입국했거나 법정 체류 기간을 넘겨 불법체류자가 된 것이다. 불법체류자는 아이가 태어나도 출생신고를 꺼린다. 출생신고를 하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 강제 추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가 출생신고를 포기한 아이는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은 무국적 상태에 놓인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합법적 체류자격을 취득할 방법이 없다. IOM이민정책연구원 이창원 연구위원은 “현행법에는 국내 출생 미등록 이주 아동의 체류를 인정하는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의 체류에 관한 조항을 두고 있는 다른 선진국들과 대조된다. 일례로 영국은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생애 첫 10년을 영국에서 거주하고 그동안 90일 이상 영국을 벗어난 적이 없는 외국인이라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병원도, 학교도 갈 수 없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기본적인 건강권과 교육권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은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이다. 국적조차 없는 미등록 이주 아동은 자연히 건강보험에서 배제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9년 동네병원을 찾은 외래환자 초진을 기준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진료비는 적용된 진료비의 2.5배에 달한다. 이에 미등록 이주 아동은 비싼 진료비나 약제비가 부담돼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지난 2012년 국민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취학 자녀를 양육하는 이주노동자의 43.9%가 자녀 미등록으로 인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병원 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이들은 미등록 상태라 외국인도 지원받을 수 있는 「의료급여법」이나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수급 대상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의료서비스지원사업*’을 통해 미등록 이주 아동 가정을 지원하고 있으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최영미 연구위원은 “해당 제도는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 제한이 있어 접근성이 낮다”며 “예산확보도 불안정하고 근거 법령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 얼마든지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 김동명 사무관은 “해당 사업은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며 “지자체의 예산으로 의료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기본적인 교육에서도 소외된다. 이들은 학교에 다닐 기회 자체를 얻기 어렵다. 한국행정학회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 아동의 56.1%가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었다.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이주 아동 중에는 그 비율이 7.3%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에 지난 2010년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 할지라도 기본교육을 받을 수 있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국내 거주 사실만 증명되면 등록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입학을 허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행령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이주 아동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행정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현실에서 미등록 이주 아동의 22.2%가 입학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 학교장이 미등록 이주 아동의 전·입학을 거부해도 제재를 가할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 교육기회보장과 김태희 사무관은 “전·입학 허가는 학교장의 재량이라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다”며 “다만 학교장들과 협의해 현실적으로 미등록 이주 아동이 교육권을 보장받을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민 2세가 전체 인구의 11%를 차지하는 프랑스에서는 이주 아동의 전·입학 거부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고 입학을 거부하는 학교에 법적 제재를 가한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신분이 노출될 불안에 시달린다. 개인정보를 제공하면 미등록 신분을 알게 된 학교장이 이를 국가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분이 노출된다고 당장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현행 제도상 미등록 이주 아동은 의무교육인 중학교 졸업 시점까지는 특별 체류가 인정돼 강제 퇴거가 유예된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도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가능하다. 문제는 학교 졸업 이후다. 학교장의 보고로 불법체류자를 인지한 국가는 졸업과 동시에 미등록 이주 아동을 강제로 추방한다. 이 연구원은 지난 2018년 발표한 「미등록 이주 아동 체류 안정화 방안」이라는 자료를 통해 ‘학교장은 불법체류 아동을 알아도 국가에 알릴 의무를 면제받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학교장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미등록 이주 아동의 교육권을 온전히 보호하는 조치는 아니다. 


 
미등록 이주 아동,
어디까지 품어야 하나

 

태어난 순간부터 한국에서 살아온 미등록 이주 아동은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한다. 하지만 특별 체류 기간이 끝나는 순간 강제로 추방된다. 이에 이주노동자 인권보장 시민단체 ‘아시아의 친구들’ 관계자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이 형성된 미등록 이주 아동에게 강제 추방은 어느 날 갑자기 외국에서 살라는 말과 같다”며 “언어도, 문화도 낯선 외국에서 강제로 살라고 하는 것은 폭력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최소한 미등록 이주 아동에게 합법적 ‘체류 자격’이라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국인이라면 보장받을 수 있는 신분 보호라도 제공하자는 주장이다. 공식적인 체류자격이 부여되면 이들은 기본적인 건강권과 교육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한편 미등록 이주 아동의 기본권 보장도 중요하지만,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 연구원은 이주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기존의 법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최대 4년 10개월만 머물 수 있다. 반면 미등록 이주 아동 가정은 아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최대 12년의 체류를 허용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원은 “아동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아동을 이유로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불법체류자들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분명 한국 사회 안에 실존한다. 하지만 신분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기본적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한다. 국내로 이주하는 외국인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주 아동의 권리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들의 자리를 제도 안에 마련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와 그 자녀, 국적 취득 전 결혼이민자와 자녀, 난민과 그 자녀 등 각종 의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계층에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 

 

 

글 강리나 기자
lovelina@yonsei.ac.kr

그림 민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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