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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가정’의 달 5월
  • 박건 사진영상부장
  • 승인 2019.05.20 01:53
  • 호수 1832
  • 댓글 1

박건 사진영상부장
(행정/문화인류·14)

경기도 시흥시 어느 농로 위 주차된 차 안에서 일가족의 시신이 수습됐다. 30대 중반의 부부와 어린 두 자녀였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이 부부가 7천만 원이라는 빚으로 고통스러워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부는 사망 전날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곧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겼다. 일가족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어버이날을 사흘 앞둔 날, 그러니까 어린이날이었다. ‘5월은 가정(家庭)의 달’이라는 말을 새삼스레 곱씹게 된다.

부부는 빚을 갚기 위해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었다. 남편이 공장으로 출퇴근하며 매달 80만 원씩 상환해나갔다. 그러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남편이 직업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실직은 부부를 극단으로 몰았다. 채무를 이행하던 중 실직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면책제도가 있지만, 요건이 까다롭고 복잡해 접근하기 어렵다. 파산을 신청하는 편이 덜 부담스러웠을 테지만, 이들처럼 나이가 어리고 채무 액수가 적은 경우에는 파산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제도의 문턱이 점점 높아졌기 때문이다. ‘성실하지만 불운하게도 과도한 채무를 져 생활의 의욕을 상실한 채무자에게 구제책을 제공한다’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할 따름이다.

가난은 고통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성경 구절로 ‘게으르고 무능한’ 빈민을 꾸짖는 사회에서 가난은 ‘말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이 악물고 살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빈민은 말길을 잃는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언어가 사라진 빈민에게 가난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된다. 이처럼 자기 언어를 상실한 사람을 어느 정치인은 ‘투명인간’이라 불렀다. 늘 그곳에 있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라는 뜻에서다. 이 맥락에서 시흥 일가족 역시 투명인간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주검이 돼서야 비로소 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같은 시기 국회는 야속하게도 파행을 거듭했다. 국민 대다수의 이목은 살벌한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여의도를 향했다. 어렵사리 세상에 울려 퍼진 투명인간의 목소리는 국회의원의 ‘막말’에 묻히고 말았다.

그럼에도 투명인간이 살아서 자기 언어를 가질 희망은 남아 있다. 지난 학기 ‘빈곤의 인류학’을 수강하며 반(反)빈곤 활동가를 찾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속한 조는 1990년대 행당동 일대에서 재개발 철거 투쟁을 벌인 유영우씨를 만났다. 그는 투쟁을 시작하기 전의 자신을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라 설명했다. 평범한 세입자였던 그는 재개발이 진행된다는 소식에 군말 없이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어디서 ‘주거권’이라는 말을 듣고 왔다. ‘집 빌려서 사는 사람한테 무슨 권리가 있나’ 싶었던 그는 그 말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권유로 나간 철거민 모임에서 그는 자신의 권리에 눈 떴다. 이후 주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때로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로는 몸으로 직접 부딪치기도 했다. 싸움의 결실은 값졌다. 철거민들은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머물 수 있는 가이주단지 입주권을 얻었다. 10평이 채 안되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생활해야 했지만, 그는 그 시절을 웃으며 회상했다.


한 명의 투명인간이었던 유영우씨가 권리라는 언어를 가진 순간, 그는 말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났다. 그를 일깨운 사람은 그의 아내 그리고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던 철거민이었다. 고통을 말하는 언어는 혼자 깨우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의 곁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 고통을 말할 길을 잃은 이에게 언어의 존재를 일깨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붕괴를 넘어 사회의 붕괴를 목도하고 있는 시기에 이 말이 공염불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다만 시흥 일가족이 죽음을 선택하기 전으로 시곗바늘을 돌려보자는 얘기다. 만약 그들에게 고통을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있었다면, ‘당신에게도 손에 쥘 언어가 있다’고 알려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다. 부부는 어린이날을 맞아 자녀들과 근교로 나들이를 떠났을 테고, ‘아이들과 함께 찾아뵙겠다’던 부모님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을까. 서글픈 가정(假定)을 하게 만드는 5월이다.

박건 사진영상부장  petit_gunn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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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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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예찬 2019-05-26 14:20:42

    제도의 높은 문턱과 이로 인한 가난의 굴레에 갇힌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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