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조명한 이주노동자의 빛바랜 ‘코리안 드림’

지난 4월 28일, 이주노동자들이 때 이른 노동절 행사를 열었다. 늘 그랬듯 달력 속 노동절보다 며칠 앞선 일요일이었다. 노동절에 유급휴가를 받는 것은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다. 하지만 많은 고용주는 이들에게 유급휴가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들은 평일이 아닌, 주말에 모여야 했다. 

김재영의 소설 『코끼리』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담아냈다. 고통으로 얼룩진 우리나라 이주노동자 역사를 되짚어보기 위해 소설의 배경인 고양시 식사동 가구공단에 방문했다.


동상이몽의 시작, 산업연수생제도
 

▶▶고가의 가구 가게들이 즐비한 식사동 가구공단의 입구


서울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가량을 달려 식사동에 위치한 가구공단을 찾았다. 입구에서부터 살뜰히 들어찬 수십 개의 가구 브랜드 표지판이 고객을 맞이했다. 매장에 들어서자 단장을 마친 가구들이 눈길을 끌었다. 질 좋은 가구를 만드는 데에는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과연 이들도 그들이 만든 가구처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을까.

우리나라 이주노동자 수는 지난 1993년 산업연수생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증가했다. 산업연수생제도는 저개발국 외국인에게 기업연수를 제공해 선진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당시 저개발국 노동자 사이에선 한국에서 큰돈을 벌어 귀국하려는 ‘코리안 드림’이 일고 있었다. 정부는 이를 기회 삼아 인력난을 해소하고자 했다. 연수를 마친 산업연수생에겐 국내 취업도 허가했다. 


그의 얼굴 표정에서 산업연수생 시절에 겪었던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하방에서 휴일도 없이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하다가 한밤중에 창문으로 도망쳤다는 그의 몸은 시퍼런 멍과 상처로 얼룩져 있었고 화덕처럼 뜨거웠다. …(중략)…
크게 쌍커풀진 눈에는 전날의 공포와 우울 대신, 숨어있던 촌스러움이 드러났다.
돈을 벌어 귀국하겠다는, 한 달에 오십만 원을 벌어 반쯤 저축하겠다는, 딱 삼 년만 참으면 된다는 순진한 믿음 같은. 

 

하지만 ‘드림’을 이룬 것은 정부뿐이었다. 산업연수생들을 기다리는 것은 지옥 같은 노동환경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연수생’ 이름표를 달았단 이유만으로 노동법과 산업재해보험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산업연수생 이탈 방지라는 명목으로 여권 압수와 외출 통제 등의 인권침해도 자행됐다.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던 산업연수생은 작업장을 이탈했다. 작업장 이탈은 위법이었기에 이들에겐 ‘불법체류자’ 딱지가 붙었다.

▶▶낡은 가구 공장에서 만든 가구들은 공장의 모습과 딴판이다.

 


빚더미에 앉은 채 찾은 한국
악순환에 빠진 이주노동자

 

▶▶마석 가구단지에 낡은 가구 공장들이 늘어서있다.


공장을 실제로 보기 위해 국내 최대의 가구단지인 마석 가구단지로 발길을 돌렸다. 마석 가구단지에는 이주노동자가 근무하는 공장들이 모여있다. 굴곡진 언덕 위에 촘촘히 공장이 들어찼다. 큰길에는 가구매장의 커다란 원색 간판이 자리했다. 

큰길 사이로 난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허름한 공장 안에는 두세 명 남짓한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기자재를 실은 트럭이 연신 옆을 지나쳤다. 이국적 외모의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수백, 수천의 이주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착취당했으리라. 가구단지는 공장이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했다. 
 

“머리를 굴려 이 지옥에 떨어졌어.
다른 청년들처럼 산에서 염소를 기르거나 들에서 농사일을 했더라면,
강물에 몸을 씻고 집으로 돌아와 구수한 달(콩 수프), 바트(밥) 냄새를 맡으며
신께 감사할 줄 알았다면…….”

 

소설 주인공 ‘나’와 같은 건물에 사는 미얀마 아저씨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외’에 빠졌다고 말한다. ‘외’는 미얀마어로 소용돌이를 뜻한다.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올 수 없는 거대한 소용돌이였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외’에 빠뜨린 것일까.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높은 이주비용을 치르기 위해 빚을 낸다. 이들은 이 빚을 갚기 위해 노동환경이 열악해도 계속해서 한국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이주비용이 높은 이유는 취업 비자를 발급해주는 현지 브로커에 지불하는 수수료 때문이다. 그들이 불법적인 노선을 택하는 것은 이주자 공급에 비해 국내 일자리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500~1천200만 원의 이주비용 대부분은 브로커에게 돌아간다. 동남아 지역의 평균 월급이 한화로 30만 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큰 액수다.

브로커로부터 한국의 노동 현실과 동떨어진 정보를 접한 이주노동자들은 빚을 내서 수수료를 지불하고 한국으로 들어온다. 빚을 갚을 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이들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초과 체류를 택한다. 빚을 내 거대한 수수료를 지불한 만큼 ‘본전’을 되찾기 위한 선택이다. 


가시 돋친 한국 땅
짓밟힌 이주노동자 인권

 

▶▶높은 언덕에서 본 가구 공장들의 모습. 이렇다 할 공장의 형태가 갖춰져있지 않다.


이주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욕설·협박을 받는 일은 부지기수며, 이들은 내국인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명절 상여금과 성과급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구조조정에서는 우선 대상이지만 승진에선 후순위로 밀린다.

 

지난 여름, 장판 밑에서 시작된 곰팡이는 방바닥에 놓인 세간과 벽에 걸린 옷가지로 번져 나가더니 기어코 아버지의 폐와 내 종아리까지 점령했다. 아버지는 기침을 해댔고 나는 종일 종아리를 긁어댔다.…(중략)… 아버지와 나는 십여 년 전까지 돼지축사로 쓰였다는, 낡은 베니어판* 문 다섯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건물에서 살고 있다.


이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은 비단 노동·임금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공장에 딸린 방이나 컨테이너,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한다. 회사에서 ‘숙소’로 제공하는 이 방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월세를 자랑한다. ‘나’와 아버지, 그리고 다른 이주노동자들은 공장 옆 돼지 축사를 개조한 건물에서 살아간다. 냉·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공간이다. 

인종차별은 노동 조건과 더불어 동남아 출신 이주자를 괴롭힌다. 소설 속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세 살인 ‘나’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학교의 아이들은 ‘나’의 생김새부터 생활양식까지 어느 하나 그대로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얼굴만 조금 하야면 미국 사람처럼 보일 것’이란 이웃 형의 말에 ‘나’는 매일 탈색제를 탄 물에 얼굴을 씻는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늦은 밤 로션을 사와 ‘나’의 뺨에 발라준다.


고용허가제,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기까지


노동착취와 인권침해에 관한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지난 2004년 고용허가제를 시행했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됨에 따라 합법적으로 취업한 이주노동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됐다. 이주노동자 송출**도 해당 국가의 공공기관이 맡도록 제한됐다. 비싼 수수료를 요구하는 현지 브로커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송출 비리는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송출 비리 전력이 있는 국가의 인력 도입을 중단하는 등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아직도 많은 이주노동자가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내고 한국에 온다. 

사업장 이동 횟수 제한도 도마에 올랐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횟수를 3회 이하로 제한한다. 이마저도 고용주가 허가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주노동자는 연신 사업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사업장에서 부당대우를 받거나 초과근무를 요구받아도 선뜻 따질 수 없다. 

3년간 목돈을 벌어 귀국하겠다는 이들의 ‘코리안 드림’은 온데간데없고, 이주노동자를 ‘현대판 노예’로 취급하는 현실만 남았다.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이동 횟수를 초과한 노동자는 곧바로 불법체류자가 된다. 각종 제도가 도입돼도 이주노동자를 범법자로 만드는 현실은 그대로다. 

 

현행법상 사업주는 내국인 노동자 구인에 실패했을 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내국인 노동자가 기피하는 분야인 건설, 농축산업 등은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채워진다. 우리 사회는 이주노동자에 범법자 낙인을 찍기에 바빴다. 이들은 범법자라는 이유로 각종 권리에서 배제됐다. 이들을 ‘외’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누군지 돌아볼 때다.

 

 

*베니어판: 합판이라고 부르며, 얇게 켠 나무 널빤지를 나뭇결이 서로 엇갈리게 여러 겹 붙여 만든 널빤지
**송출: 이주노동자를 본국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일

 

 

글 박윤주 기자
padogachulseok@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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