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he Y
[다락방 칼럼] 우리 사이는 난로 마냥“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 민수빈 기자
  • 승인 2019.05.13 01:03
  • 호수 49
  • 댓글 0

“너는 내 인생의 전부야.”

다소 로맨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소설에 나오는 애절한 사랑 고백도,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는 다짐도 아니다. 지난 20년간 엄마가 내게 가끔은 지나가듯, 가끔은 처절하게 건넸던 말이다. 고백건대 이 한 마디는 엄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엄마는 나를 품기 시작한 날부터 빛나는 삶을 누리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어릴 때는 이 말이 그저 좋았다. 엄마가 시키는 공부와 건네는 책이 싫지 않았다. 때로는 또래 친구들보다 좋은 물건과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일탈이 어색한 모범생이 돼갔다. 하지만 학년이 높아지고 부담감이 더해질수록 엄마의 기대는 나를 옥좼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 엄마가 할 말이 걱정됐고, 그걸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분명 내 인생인데 엄마는 무슨 권리로 참견하는 거지?’ 공부는 싫지 않았지만, 엄마가 계속 관여하는 것은 너무나 싫었다. “요즘 애들답지 않게 말을 잘 듣는다”며 칭찬하는 주변 분위기도 싫었다. 그들은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있는지 몰랐다.

혹자는 왜 진즉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에게 상처를 줄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나는 당신의 ‘자랑스러운 딸’이자 ‘삶의 낙’이었기에. 하지만 이제 한 인간으로 엄마와 마주하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이 말을 꺼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엄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엄마, 나는 엄마를 정말 많이 사랑해. 하지만 엄마가 나를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고 나에게 의지할수록 엄마를 온전한 진심으로 사랑하기 어려워져. 그러니까 난 엄마와 거리를 두고 싶어. 엄마한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싶어.”

글을 쓰고 다듬는 내내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는 이성과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감성이 부딪혔다. 하지만 나는 끝내 편지를 엄마에게 건넸다. 언제까지고 거짓으로 엄마를 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묵혀둔 말들에 엄마는 충격을 받았고, 할머니는 “애써 키운 자식이 더한다”며 혀를 찼다. 편지를 쓴 지는 반년 남짓 지났다. 엄마와 나는 아직 진실한 소통을 연습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가 항상 가까워야 한다는 맹목적인 관례에 대한 거부감은 변함이 없다. 내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불안은 집착으로 변모한다. 부모에게 반항하면 안 된다는 ‘학습된’ 예의는 마음속에 응어리를 심는다. 서로가 그 누구보다 가까워야만 한다는불안은 서로를 멀어지게 할 뿐이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주인공 완은 엄마를 떠올리며 속으로 말한다. “나는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어쩌면 ‘서로의 존재’에서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는 부모와 자식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을지 모른다. 따뜻하다고 지나치게 붙어 있으면 끝내 데이고 마는 난로처럼, 우리에게는 편안함을 위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도의 첫 발걸음을 뗀 나는,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자료사진 TVN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