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원 즈음은 우스운 뮤지컬 관람료. 그리고 모르는 새 엉금엉금 올라가 버린 영화 티켓값.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요즘.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과 돈에 점점 문화생활과 멀어져가는 청년들을 위해 『The Y』가 나섰다. 매달 정한 테마에 맞춰 기자들이 엄선한 3개의 작품으로 가득 차린 한 상. 「The Y의 리뷰식당」이다.

<공기처럼 익숙한, 그렇지만 소중한>
여름의 노크 소리와 함께 찾아온 가정의 달, 5월. 산뜻한 봄은 가고 파릇파릇한 초록빛이 거리를 채우지만, 타향살이하는 청춘은 여전히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헛헛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이번 리뷰식당엔 가족에 관한 작품이 상에 올랐다. 누군가에겐 그리운, 누군가에겐 익숙하기만 존재인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수빈>『내 어머니 이야기』 (만화책)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김은성 작가는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만화에 담았다. 김 작가는 어머니께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라고 물었고, 어머니의 과거를 마주했다. 어머니는 무
릎을 베고 누운 딸의 머리칼을 만지며 그가 청춘을 보낸 함경도에 관한 추억을 풀어낸다. 작가는 독자에게 “부모님이 꺼내는 옛이야기에 귀 기울이거나 이야기를 청한 적이 있냐”고 묻는
다. 작가의 질문에 독자들은 반성하기도, 늦은 후회에 빠지기도 한다. 이 책은 단지 어머니의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부모의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가 쓰는 반성문이자 진실한 소통을 향한 제언이다.
우리는 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젊었을 때 무슨 꿈을 품었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었나. 부끄럽지만 필자는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부모님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다들 너무 늦기 전에 부모님이 ‘부모’가 아니었던 나날을 물어보는 건 어떨까. 책 속의 이야기 못지않게 놀라운 이야기가 시작될지 모른다.

<현지>『고령화 가족』 (소설)


흔히들 말하는 ‘콩가루 집안’을 그린 소설이다. 막장 드라마 같기도, 첩보 액션물 같기도 해 읽으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엽기적인 캐릭터들이 모여 만드는 이야기는 의외로 ‘식구’에 관한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전직 조폭 한모, 가난한 삼류 영화감독 인모, 그리고 두 번의 결혼 생활 후 집에 돌아온 미연과 그의 ‘날라리’ 딸 민경. 사업도 사랑도 실패한 그들에게 삶의 2막을 열어준 것은 다름 아닌 “닭죽 먹으러 오라”는 어머니의 전화였다. 그렇게 그들은 평균 나이 49세의 ‘고령화 가족’으로 다시 만난다.
초반엔 성차별적인 캐릭터 설정과 말장난이 다소 거북하지만, 읽을수록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다. 작품은 ‘강한 어머니’를 내세우며 모계 중심의 가정모
델을 제시한다. 『고령화 가족』의 어머니는 굳센 가장이자,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 편에 서는 열정적인 전사다. 작가는 작품 전반에 성차별적인 사회와, 그 사회에서 낙오된 여성의 삶을 제시한다. 이는 자식들을 다시 사회로 진출시키려는 어머니와 대비를 이루며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강조한다. 인물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식구(食口)’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미워도 한 식탁에 않아 밥을 먹고, 갈 곳이 없을 때 거둬주고, 실패의 상흔을 말없이 덮어주는 것이 식구다. 역설적이게도 우린 식구를 통해서 가족 구성원 너머의 ‘나’를 발견한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나 대단한 걸까. 새삼스레 느끼게 해준다. 초반부의 과한 비속어와 성적인 장면들이 부담스러울 순 있지만, 유머러스하고 흡입력 있는 문체에 곧 빠져들 것이다.

<인영>『집으로 가는 길』(영화)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관객들에게 많은 울림을 준 이유 또한 그래서일까, 영화의 관람평엔 주인공 정연(전도연 역)과 함께 분노하고 눈물 흘리는 이들이 유독 많다.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정연은 프랑스에서 마약 밀수입이라는 누명을 쓰고 구속된다. 낯선 타국에서의 2년은 얼마나 길고 괴로웠을까. 남편 종배(고수 역)는 아내가 돌아올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고, 수화기 너머 들리는 딸 혜린(강지우)의 목소리는 정연에게 살아갈 희망을 준다. 갇혀 있던 756일 동안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숱하게 많았지만, 정연은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위해 버틴다. 홀로코스트*당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텼다고 한다. 정연이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도 돌아가고자 하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연과 종배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가족은 어떤 힘이 있길래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걸까. 나 역시 가족과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타지 생활이 지칠 때마다 위로와 격려를준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가족 곁으로 돌아와서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렇게 나는 가족에게 돌아가길 바라는 정연의 절박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극 중 정연이 집에 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장면에서 눈물 흘리지 않을 관객들이 얼마나 있을까. 영화가 끝난 후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고
싶지 않다면 손수건이나 휴지를 꼭 챙겨가길 바란다.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 대전 중 히틀러의 독일군이 유태인 등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

 

글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자료사진 브런치 - 리디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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