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몇 잔 마셨을까. 오늘은 원두 몇 봉이 갈렸을까. 커피는 물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음료다. 우리는 잠을 쫓기 위해, 여유를 즐기기 위해, 혹은 ‘그냥’ 커피를 마신다. “그냥 마시는 거지, 커피를 두고 뭔 사회학이야?”라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커피잔을 손에 쥐는 순간 당신은 70억 인구의 이야기와 삶을 마신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더하면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두고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왜 200원짜리를 6천 원 주고 마시면서도 군말이 없어?

 

사실 커피 한 잔의 원가는 150원에서 최대 450원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를 비롯한 프랜차이즈 카페들의 커피 가격은 6~7천 원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2000년 이래로 커피 소비는 꾸준히 증가했고, 2016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소비량은 약 400잔(2012년 대비 31% 증가)이다. 가격 거품이 심하다는 걸 알면서도 브랜드 커피를 소비하는 심리는 가히 흥미롭다.

이유는 단순하다. 현대인은 ‘200원짜리 원두’를 맛보기 위해 커피를 사는 것이 아니다. 커피는 이미 브랜드화되고 정치화된 존재다. 한국 마케팅연구원 신윤천 이사는 논문 『커피브랜드에 숨겨진 감성적 이성』에서 커피를 ‘감성 소비재’라고 칭한다. 커피는 소비자에게 맛·가격 등의 이성적 경험이 아닌, 감성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나아가 각 브랜드는 일관된 경험을 소비자에게 부여하며 충성도를 확보한다. 그는 “라면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커피는 꼭 스타벅스에서 사 먹는 여성을 ‘된장녀’로 칭하는 것은 브랜드 충성도의 과장된 측면만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커피가 ‘사회적 트렌드’로서 고객심리를 자극하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런 현상은 지극히 개연적이다. 와이셔츠와 고급스러운 슬랙스를 입고, 또각거리는 하이힐을 신은 사람이 캔커피를 홀짝이는 모습은 조금 어색하다. ‘고급스러운’ 의복은 브랜드 커피에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커피가 감성 소비재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커피를 소비함으로써 ‘경험의 집합’을 구매한다. 그 경험이 특정 브랜드의 커피를 소비해 남에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경험이든, 카페인을 달고 사는 도시인들에게 소속감을 느끼는 경험이든 말이다. 어쩌면 커피를 사는 것은 그 음료보다, 커피잔에 박힌 그 브랜드의 마크를 사는 것에 가깝다.

 

#커피, 가장 가난한 나라와 가장 부유한 나라를 잇는 존재

 

커피 열매가 머그잔에 담기기까지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커피는 2천500만 명이 생산하고 5억 명이 소비하는 재화다. 대개 제3세계 소농이 커피를 재배하면 전 세계 도시인이 이를 소비하는 구조다. 그러나 소비인구가 5억 명에 달함에도 5개 미만 업체가 커피 로스팅과 거래를 독점하고 있다. 소수의 대기업은 커피 농장에 점점 더 낮은 커피콩 가격을 요구한다. 농민들은 시장을 꽉 쥐고 있는 그들의 요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소수의 대기업은 이렇게 자본을 축적하며 공급 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한다.

책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은 한 잔의 에스프레소가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가 부유한 나라의 카페로 이어지는 수많은 노동 사슬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커피를 소비하는 순간 전 세계적 경제 관계망에 얽힌다. 커피 한 잔을 통해 사회·경제적 경험의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카페는 사회적인 공간

 

‘커피 한 잔 어때요?’라는 말을 ‘커피라는 음료를 맛보겠냐’라는 질문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눈치가 없다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커피를 소비하며 사회적 관계나 경험을 얻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카페에서 마실 커피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에 집중한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과 동시에 일상적인 교류의 장으로서 기능해 온 것이다.

공론장으로서의 카페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19, 20세기 파리에서 카페는 다양한 학문과 예술을 발흥시킨 거점이었다. 카페는 한국에서도 유사한 역할을 수행했다. 카페의 전신인 ‘다방’은 일제강점기 영화인들의 사무실로 사용됐다. 가난한 예술인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음료 한 잔 값을 내고 계속 앉아있을 수 있는 다방은 좋은 작업 공간이었다. 1927년,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이경손은 종로2가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열었다. 카카듀엔 예술인이 모였고, 다방은 객담을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작업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를 기점으로 종로와 충무로 일대에는 예술의 허브로 기능하는 카페가 하나둘 생겨났다. 이렇게 카페는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서 꾸준하게 변용돼왔다. 현대의 카페는 업무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하고, 약속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SNS에 업로드할 사진을 제공하는 ‘사진 스튜디오’의 역할도 수행한다. 이렇게 카페란 공간은 당시의 사회를 투영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공간’ 그 이상의 사회적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커피에는 이렇게 새로운 만남, 농부의 땀과 현대인의 고된 일상, 경쟁 심리가 서려 있다. 내일도, 모레도 우리는 커피를 마주한다. 그렇게 커피잔을 잡는 순간에 한 번쯤은 커피가 담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떠올리길 바란다.

 

글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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