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실업급여 제도의 허점

 실직자의 구직활동과 최소한의 삶 영위를 돕는다. 실직자는 고용보험이 명시한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수급 조건의 허점과 정부의 허술한 관리로 실직자는 현실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초단시간 근로자,
돈은 내지만 보험 처리는 안 된다?

 

실업급여 수급 조건 중 하나인 피보험단위기간**은 초단시간 근로자***의 실업급여를 박탈한다. 3개월 이상 근무한 초단시간 근로자는 의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한다. 하지만 이직 전 18개월 동안 피보험단위기간이 180일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초단시간 근로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학생같이 1주일에 1~2일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18개월간 180일이라는 근무일을 채우기 어렵다. 일례로, 2019년 1월부터 2020년 6월까지 18개월 동안 주 2일 근무한 아르바이트생의 피보험단위기간은 157일이다. 해당 근로자는 3개월 이상 근무해 의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해도, 실업급여는 받지 못한다. 고용노동부 고용지원실업급여과 김성은 주무관은 “다른 사업장에 재취업하면 지난 기간까지 포함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업급여’를 수급하기 위해 재취업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모순 때문에 몇몇 초단시간 근로자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고용보험료만큼의 금액을 임금으로 받기도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초단시간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2.3%에 불과하다. 초단시간아르바이트를 했던 A씨는 “고용보험에 가입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말에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보험료만큼을 임금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3개월 이상 근무한 초단시간 근로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은 불법이다. 이들은 또한 고용보험에서 소외돼 실직 중 취업 훈련 등 구제책을 누릴 수 없다. 

초단시간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제도의 맹점에 따른 여파도 커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초단시간 근로자는 75만 6천 명으로, 전년 대비 11.3% 증가한 수치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초단시간 근로자가 연평균 9.2%씩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발표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현실과 법안 사이 괴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2018년 4월, 정부는 실업급여 수급 조건 중 ‘이직일 이전 기간’을 18개월에서 24개월로 늘린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계류 중이다. 김성은 주무관은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해당 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후 초단시간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다른 정책들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발적 퇴사인 듯 자발적 퇴사 아닌
 


비자발적 이직이라는 수급 조건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실직자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 비자발적 퇴사를 인정받아야 한다. 즉, 자발적으로 퇴사한 근로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물론 자발적 퇴사자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예외 조항도 있다. 질병, 임금 체불, 직장 내 차별 대우가 인정되면 자발적 퇴사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적용되기 어렵다. 보험 자격 상실 신고 과정에서 피보험자의 퇴사 사유를 고용주가 제출하기 때문이다. 즉, 고용주가 ‘비자발적 퇴사’로 분류하지 않은 퇴사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직장갑질 119’에 도움을 청한 간호사 B씨는 상사의 괴롭힘과 퇴사 강요를 견디지 못해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병원이 이를 자발적 퇴사로 처리하며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몇몇 기업은 정부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퇴사 근로자를 자발적 퇴사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비자발적 퇴사자의 존재는 정부 지원 심사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령, 정부로부터 일자리안정자금을 받는 기업이 근로자를 비자발적 사유로 퇴사시키면 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 김성은 주무관은 “근로자에게 보험 자격 상실 사유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청구권이 있다”며 “조사를 통해 상황의 불합리성이 증명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구권 신청 과정 역시 기형적이다. 직장 내 차별로 퇴사하는 경우, 피해자는 본인의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직장갑질 119’에 접수된 1만 2천 건의 제보 중 350여 건이 실업급여에 관한 문의였다.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자발적 퇴사였으나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직장갑질 119’ 오진호 스텝은 “성희롱으로 퇴직하는 근로자는 사업주에게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는 확인서를 받아 고용보험센터에 제출해야 한다”며 “사업주가 스스로 성희롱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박관성 연구원은 “현재의 실업급여 제도는 자발적 퇴사자들을 포함하지 못한다”며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청년의 취업 후 첫 이직은 전체의 81.9%에 달하나, 이들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증가하는 부정수급
감소하는 환수율

 

한편 정부의 허술한 관리를 틈타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도 있다. 재취업 사실이나 실업 기간 중 발생한 소득을 신고하지 않고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다시 취업하거나 실업 기간에 실업급여수령액 이상의 소득이 발생한 이는 실업급여 지급 대상이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8년 8월 사이에 발생한 실업급여 부정수급액은 904억 원에 달했다. 부정수급액 규모는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4년 130여억 원이었던 부정수급액은 2017년 318여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최선을 다해 부정수급을 막고 있다고 말한다. 고용노동부 고용지원실업급여과 김병성 주무관은 “부정수급 단속을 위해 다양한 제도를 운영 중”이라며 “자영업자와 근로자의 정보가 등록된 시스템을 활용하거나 자진신고, 고발, 고용노동부 직원 조사 등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병성 주무관은 “실업급여 수급 희망자를 대상으로 부정수급 관련 교육을 진행한다”며 “부정수급이 적발되면 형사처벌 혹은 부정수급액 환수 등의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조치의 효과는 미미하다. 부정수급액 환수율은 지난 2014년 85.2%에서 2017년 80.4%로 꾸준히 감소했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으로 인한 형사처벌은 전체 부정수급 사건의 5.1%에 불과했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부정수급 규모가 커지고 조직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다”며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환수율을 높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업급여는 근로자들에게 필수적인 사회적 안전망이다. 하지만 거르지 말아야 할 사람은 거르고, 걸러야 하는 사람은 거르지 못하며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실업자를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을 개선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구조조정 같은 비자발적 사유로 실직해야 하며, 재취업 의사가 있어야 하고 이직일 이전 18개월 동안 피보험단위기간이 180일 이상이어야 한다.
**근로자가 고용된 기간 중 보수지급의 기초가 된 날. 고용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에 한한다.
***1주일에 15시간 미만 근로하는 근로자, 혹은 한 달에 60시간 이하 일하는 근로자

 

 


글 강리나 기자
lovelina@yonsei.ac.kr

<자료사진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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