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로 보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유명인이 자살한 뒤 유사한 방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이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했다. 이 소설은 18세기에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반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베르테르가 입은 것으로 묘사된 옷차림을 넘어서 권총 자살이 유행할 정도였다. 괴테의 저서는 19세기 후반 쥘 마스네에 의해 오페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2019년, 서울시오페라단은 김광보 연출가의 『베르테르』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였다. 

 

베르테르, 근대 독일에서 잉태되다

 

1774년, 괴테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했다.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그는 베츨러에서 판사 시보 생활을 하던 중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고향인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온 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자살한 청년의 이야기를 접했다. 이에 영감을 받은 괴테는 이야기의 주인공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베르테르를 만들어 냈다.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약혼자 알베르트와 결혼한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한 베르테르는 그가 살던 빌하임을 떠나지만 그 해 겨울 다시 돌아온다. 베르테르는 그녀의 곁을 떠돌며 사랑을 고백하지만 샤를로테는 결국 그를 거부한다. 이에 크게 상처 받은 베르테르는 결국 알베르트에게 권총을 빌려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18세기 독일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성의 자살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당시 연애의 주도권은 남성에게 있었기에, 사랑의 실패를 비관해 자살하는 내용의 소설은 가히 파격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시대의 걸작은 독일과 이탈리아 작곡가들에 의해 오페라로 재탄생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낭만주의 작곡가 쥘 마스네가 1892년에 각색한 『베르테르』는 단연 수작으로 꼽힌다. 『돈키호테』 등의 오페라를 작곡한 마스네는 음악으로 베르테르와 샤를로테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4막으로 구성된 오페라의 모든 막에서 아리아*가 흘러나온다. 마스네는 아리아를 통해 두 주인공의 감정을 보다 애처롭고 극적으로 표현했다. 
마스네는 원작의 엔딩 또한 각색했다. 소설에서는 베르테르가 자살한 뒤 샤를로테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마스네의 『베르테르』에서는 샤를로테가 숨이 붙어 있는 베르테르를 만나 그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마스네는 샤를로테의 진심을 듣지 못하고 죽은 베르테르가 안타까웠던 것일까. 소설과는 다른 여운이 남는다. 

 

샤를로테, 현대 서울에서 환생하다

 

서울시극단 김광보 연출가는 마스네의 『베르테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연출한 그는 같은 원작으로 오페라에 도전했다. 그는 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뮤지컬을 연출할 때는 샤를로테의 심리나 베르테르의 자살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연출가는 오페라를 준비하면서 마스네의 음악을 듣고 주인공들의 심리를 이해했다. 마스네의 오페라에서 샤를로테의 동생, 소피는 소프라노로 노래한다. 이는 샤를로테가 중저음의 메조소프라노로 노래하는 것과 대비된다. 순수하고 여린 존재로 그려지는 소설 속 샤를로테는 오히려 오페라 속 소피의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마스네는 샤를로테를 순수의 틀에 가두지 않았다. 김 연출가는 이에 착안해 샤를로테를 치명적이면서 이기적인 존재로 해석했다.

그렇기에 김 연출가의 『베르테르』에서는 샤를로테의 ‘밀당’이 두드러진다. 극 중에서는 샤를로테가 베르테르의 자살을 유도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둘의 관계에서 샤를로테의 역할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베르테르에게 키스를 ‘당하는’ 샤를로테가, 김 연출가의 『베르테르』에서는 먼저 격정적으로 키스한다. 수동적인 18세기 독일 여성 샤를로테는 김 연출가의 해석 속에서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여성’으로 변모한다. 오늘날 주목받는 ‘주체적인 여성상’이 그의 오페라에 투영돼 18세기에는 다소 어색했을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덕분에 샤를로테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의 현대적 해석은 인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해석은 주인공의 의상과 무대 연출에도 반영된다. 주인공들은 청바지와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다. 김 연출가는 그만의 개성을 살려 무대도 최대한 단순하게 구성됐다. 이는 김 연출가가 원작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샤를로테가 베르테르와 밀회할 때 그녀의 남편인 알베르트가 그들을 항상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 내부가 훤히 드러나는 샤를로트의 집은 알베르트의 관음증을 드러낸다. 배경에 상영되는 영상이 담백하게 무대를 채운다. 사랑이 시작되는 여름과 절망을 표현하는 가을, 고독으로 마무리되는 겨울이 차례대로 샤를로테의 집 위로 드리웠다. 

김 연출가의 『베르테르』의 클라이막스는 죽어가는 베르테르에게 샤를로트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순간이다. 이 장면에서 샤를로테와 베르테르는 「최후의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오」라는 이중창을 부르며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동시에 1막에서 등장한 「노엘」이 흘러나온다. 「노엘」은 구원을 염원하는 노래다. 이는 사랑해선 안 되는 여자를 사랑해, 살아서는 구원을 얻지 못한 베르테르를 죽음의 순간에 구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김 연출가의 각색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죽은 베르테르를 두고 아무것도 잃지 않은 채 떠나는 샤를로테의 뒷모습이다. 비극적 사랑이라는 점에서 베르테르와 샤를로테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줄리엣과 달리, 샤를로테는 베르테르의 죽음에도 등을 돌린 채 걸어나간다. 그녀는 결국 안정을 택한 것일까. 18세기에도 현실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듯이 현재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화신인 줄리엣보다 샤를로테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런 것일 테다.

 

오페라 『베르테르』에서는 원작 소설에서 볼 수 없던 샤를로테와 마주할 수 있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시민들에게 오페라의 체험을 제공하는 서울시 오페라단은 오는 7월에는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를, 연말에는 유명 오페라 『돈 조반니』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리아: 선율적인 독창 또는 이중창으로 가수의 역량을 드러내며 대사나 스토리 진행보다 음악에 중점을 둠

 

 

글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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