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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누스 푸디카와 여성 ‘몸’의 해방시집 『베누스 푸디카』와 『현대 여성주의 시의 ‘몸’의 미학』을 중심으로
  • 김연지 기자
  • 승인 2019.05.06 05:30
  • 호수 1830
  • 댓글 0
▶▶보티첼리 作 「비너스의 탄생」

베누스 푸디카(Venus Pudica)란 비너스 상의 자세를 가리키는 미술 용어다. 비너스 상은 한 손으로 가슴을, 다른 한 손으로는 성기를 가리고 있다. 이는 서양 미술이 여성을 재현하던 보편적인 방식이다. 베누스 푸디카의 정수로 평가받는 작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비너스는 가슴과 성기를 가린 채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림 속 비너스는 ‘문화적으로’ 태어난것이다. 갓 태어난 여성은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느끼는 수치심과 죄의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특히 ‘남성’이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특정 신체 부위(가슴과 성기와 같은)는 여성이 마땅히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부위로 규정된다. 작품 속 비너스는 ‘사회적으로’ 탄생한 것이다.

베누스 푸디카의 아름다움은 전시(展示)된 여성의 신체를 전제한다. 여성의 몸은 파편화된 성적 대상의 집합이다. 그렇기에 당사자의 감정과 무관하게 여성의 신체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대상’으로 취급된다. 이는 동시대 미술 작품 속 남성들이 성기를 드러내며 역동적인 자세를 취한 것과 대비된다. 비너스상의 수줍은 자세와 다비드상의 당당한 자세의 대비는 세계의 ‘남근 중심적’ 성 가치관을 폭로한다.

그리고 여기, 21세기의 베누스 푸디카가 있다. 지난 2017년 발행된 『베누스 푸디카』는 박연준 시인의 에로티시즘 시집이다. 시집은 베누스 푸디카 본연의 정숙함과 아름다움을 거부한다. 작품 속 여성의 신체는 여타 문학이 탐닉의 대상으로 그린 여성의 몸과 사뭇 다르다. 작중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의 본능적인 성욕을 야기하는 죄악도 아니고 그 자체로 경이로운 피사체도 아니다. 『베누스 푸디카』 속 여성의 몸은 그저 몸으로 존재한다.

시 「베누스 푸디카」는 1, 2, 3편으로 이뤄진다. 화자는 전편에 걸쳐 몸을 낯설게 경험하면서도 통찰을 거듭하며 자아를 확립해 나간다.

‘어둠을 반으로 가르면/ 그게 내 일곱 살 때 음부 모양/ 정확하고 아름다운 반달이 양쪽에 기대어 있고/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았지/ 아름다운 틈이었으니까…꿈, 사랑, 희망은 내가 외운 표음문자/ 습기, 죄의식, 겨우 되찾은 목소리, 가느다란 시는/ 내가 체득한 시간의 성격’*


화자는 몸을 통해 ‘꿈, 사랑, 희망’ 등의 가치를 이해하고 ‘습기, 죄의식’을 느낀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확립해 나간다. 그렇기에 화자는 대상화된 몸이 아닌, 사유 주체로서의 몸을 노래한다. 이어지는 시 「베누스 푸디카 2」 속 화자가 느끼는 부끄러움도 흥미롭다.


‘잘린 다리를 보여줄까,/ 비밀인데…잘리지 않았다면 펼쳐볼 수 없었을/ 몸에서 가장 먼 곳…몸을 밀치고 태어나는 다리들/ 수줍고 냄새나고 미끄러운/ 빠져나가는/ 분사되는/ 흡수되는’**


‘잘린 다리’는 사회적으로 거세당한 여성의 신체 일부를 뜻한다. 여성의 신체 일부는 남성의 성욕을 촉발한다는 이유로 ‘죄악’으로 규정됐다. 이는 드러내서는 안 되는 금기로 취급됐으며, 그것을 논하는 여성은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화자의 부끄러움은 사회의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읽어낼 수 있다. 화자는 ‘잘리지 않았다면 펼쳐볼 수 없었을’ 자신의 신체를 돌아본다. 그는 여성의 몸에 가해진 성적 억압을 깨닫고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던 시각을 성찰했다고 말한다. 화자는 수줍은 목소리로 ‘내 몸의 주체성’을 말한다. 그는 터부(taboo)시된 여성의 신체 기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회적 금기를 해체한다.

‘시집 『베누스 푸디카』에는 여성의 몸, 정숙함이라는 이데올로기, 독선과 편견에 과감히 구멍을 내고자 하는 사유’***가 있다. 오랜 시간 여성의 몸을 지배했던 ‘정숙’의 이데올로기를 돌파하고자 한 문학적 시도는 비단 『베누스 푸디카』만이 아니다. 현대 여성주의 시들에도 여성의 몸에 관한 기존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탈피와 해당 이데올로기에 대한 냉소적 비판이 고스란히 담겼다.

한국에서 현대 여성주의 시가 활발히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이는 동시대에 주목받기 시작한 에코페미니즘과 궤를 같이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인간중심주의 사회에서 식민화된 자연과 가부장제에서 수단화된 여성의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억압의 종식을 추구한다. 이는 현대 여성주의 시가 수단화된 여성 인권 회복과 남성 중심 논리 전복을 꾀한 것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여성주의 시인은 왜 ‘몸’을 통해 주체성을 회복하고 몸을 중심으로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을까. ‘여성주의 시에서 ‘몸’은 세계와 상호작용하고 시인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시적 육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몸은 자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정신보다 먼저 세계에 연결된 창’이다. 몸의 해방은 곧 자아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는 여성주의 시인들이 끊임없이 ‘몸의 해방’을 부르짖었던 이유다.

베누스 푸디카는 여성 ‘몸’의 신비로움과 우아함을 극대화한 미적 유산이다. 그러나 21세기 몸의 ‘미학’은 주체적 자세에 집중한다. 더 이상 강요된 아름다움이 설 자리는 없음을 말하고 있다. 주체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비너스의 자세, 새롭게 정의될 베누스 푸디카를 기대한다.

*『베누스 푸디카』 中 시 「베누스 푸디카
**『베누스 푸디카』 中 시 「베누스 푸디카2」
***박연준, 『베누스 푸디카』, 창비, 2017, p.135-136 참조
****김순아, 『현대 여성주의 시의 ‘몸’의 미학』, 국학자료원, 2016, P.5

글 김연지 기자
yonzigonzi@yonsei.ac.kr

자료사진 <아울북 and 을파소>

김연지 기자  yonzigonz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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