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상한제에 찬성한다

김대권 (언홍영·17)

요즘 들어 스크린상한제 이슈로 한국 영화계가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24일 개봉해 5월 4일까지 최단기간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되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독점에 가까운 80% 이상의 스크린 점유율을 보여 본 이슈에 불을 지폈다. 이번 『어벤져스』 스크린 독과점 논란 외에도 영화 『명량』, 『신과 함께』 등 심심치 않게 불거지는 스크린 독점 논란은 한국 영화계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반복되는 논란에서 짐작하건대 스크린상한제는 한국 영화계에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먼저, 영화는 상품에 앞서 하나의 고유한 문화다. 영화는 단순히 창작자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촬영한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영화의 전개 방식, 인물들의 대사, 인물 간의 상호작용, 삽입되는 음악, 사소하게는 유머 코드까지도 그 문화권의 영향을 받는다. 그 때문에 영화는 특정 문화권에 대한 ‘문화의 정수’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한국 영화에는 한국 영화만의 개성과 특색이 가득 담겨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영화를 어려움 없이 공개하도록 국가가 최소한의 디딤돌을 마련해야 한다. 게다가 영화는 보통 도서, 음악 등 여타 매체보다 ‘상영’이라는 비교적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공개된다. 그래서 소규모 영화는 자본의 힘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스크린상한제는 영화의 상영을 가능케 하는 여유를 제공함으로써 지금까지 제대로 개봉하지 못했던 영화에 상영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스크린상한제는 현재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영화계의 상황에서 벗어나 대중이 더욱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 롯데, CJ 등의 일부 영화 배급, 제작사가 한국 영화계를 꽉 쥐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일명 ‘대기업 영화’는 개봉 한 달 전부터 광고 공세, 이벤트 등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그에 비해 비교적 관객이 관심을 덜 가지고 광고나 홍보조차 진행할 형편이 어려운 실험적인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는 강력한 자본으로 밀고 들어오는 영화에 의해 설 자리를 잃고 있음이 영화 산업의 현주소다. 철저히 시장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대기업 산하의 영화관 입장에서, 독립영화보단 흥행이 보장된 거대자본 영화를 배급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내 경쟁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대중은 어떤 문화든 자유롭게 누릴 권리가 있다. 스크린상한제가 없는 현재엔 애초에 영화 간 공정한 출발조차 불가능한 상황이고, 관객은 다양한 영화를 즐길 기회를 잃고 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는 상영할 영화관조차 마땅치 않은 현 흐름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간신히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소규모 영화를 찾아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다양한 개성을 가진 영화는 사라지고 대중의 입맛에 맞게 찍어내는 대기업의 획일화된 영화만 쏟아지는 재앙이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편, 요즘 들어 한국 영화가 해외에 판매됐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해외 영화제에 자주 이름을 내거는 감독의 영화나 입소문에 따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게 된 영화들은 해외 영화관에 걸리는 일이 어렵지 않게 일어난다. 하지만 해외로 진출하지 못하는 영화는 전적으로 내수 시장에 의존하여 수익을 낼 수밖에 없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꽉 잡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세계 영화 시장 내에서, 한국 영화가 해외 영화 시장에 당장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바구니는 그다지 여유롭지 않다. 국내 신인 감독의 영화나 저자본 영화, 독립영화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개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의 한국 영화계에서 거대 자본 영화와 개봉 시기가 겹치는 것은 소규모 영화에겐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때문에 최대한 거대 자본 영화와 개봉 시기가 겹치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 방안의 고작이다. 이런 상황은 동등한 기회를 받지 못하는 불공평한 상황이다. 국가적으로 스크린 독과점을 어느 정도 제재할 필요가 있다. 내수 시장을 공략할 수밖에 없는 국내 영화를 위해서라도 스크린상한제는 한국 영화계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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