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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나도 당신의 용기가 되고 싶다
  • 신은비 기자
  • 승인 2019.04.01 02:56
  • 호수 48
  • 댓글 0

“이게 왜 안 맞아?”

이전보다 살이 찐 것도 아니었다. 지퍼가 고장 났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상표는 이 옷이 FREE 사이즈라고 말하고 있는데, 지퍼는 중간에 멈춰 잠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끄럽고 당혹스러운 마음에 상의를 얼른 벗어 옷걸이에 다시 걸었다. 다시 보니 별로 예쁜 것 같지 않다는 자기 위로와 함께.

나는 더 큰 사이즈의 옷을 찾는 방법 대신, 내 몸을 옷에 맞추는 방법을 택했다. 비만 체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입을 수 있다는 뜻인 FREE 사이즈 옷이 맞지 않는 나의 몸은 죄악 같았다.

평범한 체형임에도 살을 빼기 위해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았다. 화장을 안 하면 밖에 나가지 못했고, 늦잠을 잔 날에는 죄를 지은 것처럼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화장이 들떴을까 틈만 나면 거울로 화장 상태를 체크했고, 화장이 망가질까 얼굴이 간지러워도 마음 놓고 긁지 못했다. 더 예뻐지기 위해, 더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꽃이 되고자 했다.

이런 노력으로 얻은 ‘예쁘다’는 말은 나를 너무나 약해지게 만들었다. 예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날에는 계속 얼굴이 신경 쓰였다. 예쁘다는 말을 듣지 못한 날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예뻐지기 위해 화장에, 옷차림에 신경 쓰던 날이 계속됐다.

화장은 어디서나 당당하고 기죽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도구였다. 매일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를 위한 것이라 믿었다. 화장이 나에게 주는 권력은 너무나 달콤했다. 그런데 그 권력은 너무나도 약하더라. 클렌징 오일 한 방울에 지워지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더라.

그러다 지방선거 당선자들의 사진을 보게 됐다. 짧은 머리, 안경, 화장하지 않은 얼굴. 그제서야 난 깨달았다. 꾸밈은 나의 권력이 아니었다. 꾸밀 필요가 없는 게 권력이었다.

그래서 코르셋을 벗었다.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지우고 치마를 벗었다. 칼로리를 계산하며 밥을 먹는 일도 그만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부장제를 향한 나의 짧았던 반란은 실패로 끝났다. 오늘은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여행 가면 사진이 많이 찍히니까 ‘어쩔 수 없다’고 되뇌었다.

그래서 난 구조 바깥에서 길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에게, 틴트 주머니가 달린 교복을 입게 될 어린 학생들에게 떳떳하지 못하다. 언젠가 당신들의 투쟁이 성공했을 때, 나는 과실만 취하는 사람이 돼 있을까봐. 내가 허락한 세상이 당신들의 교복에 틴트 주머니를 달아 놓은 것 같아서.

혹자는 탈코르셋을 강요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강요를 받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지하철에 걸린 수많은 성형 광고는, 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는, 브라운관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연예인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눈은 어때야 한다고, 코는 어떻게 생겨야 하며 얼굴형은 어때야 한다고. 조금 다르면 그건 고쳐야 하는 부분이라고.

코르셋을 벗는다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서, 또 코르셋 벗기를 실패한 사람으로서 나는 당신에게 코르셋을 벗으라 말할 수 없다. 대신, 이 글은 하나의 약속이다. 내가 다시 가부장제에 반기를 들게 된다면, 그때는 절대 뒤돌아가지 않겠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용기가 되었던 것처럼, 그때는 내가 당신의 용기가 되겠노라고. 우리는 꽃이 아니니까. 우리는 불꽃이니까.

글 신은비 기자
god_is_rain@yonsei.ac.kr

신은비 기자  god_is_rai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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