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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판, 올드록, 그리고 우드스탁옛 악동들의 청춘을 관통하는 메시지, “Rock Will Never Die”
  • 김현지, 윤채원 기자
  • 승인 2019.04.01 02:53
  • 호수 48
  • 댓글 0

지난 1969년, 뉴욕의 한 농장에서 출발해 미국을 휩쓸었던 전설의 록 페스티벌. 새로움을 원하던 70년대의 악동들이 ‘히피 문화’를 만들기 시작한 그 축제의 이름은 ‘우드스탁’이다.

신촌에도 그때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붐비는 다모토리 골목 구석에 자리한, 언뜻 보면 목공소 같은 빈티지한 나무외관의 이곳. 30년간 우직하게 록 음악과 함께하는 신촌 음악의 자존심 ‘우드스탁’이다.

Q. 간단한 매장 소개와 자기소개 부탁한다.

우드스탁은 1992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오픈한 록카페다. 그로부터 27년 동안 같은 자리를 쭉 지켜왔다. LP판으로만 음악을 트는 올드록 스타일 록카페 감성을 유지해오고 있다. 나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본래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음악도 좋아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음악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로망이 어릴 때부터 줄곧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땐 신촌이 예술·음악인들의 공간이었기에 신촌에 자리를 잡고 카페를 열었다. 그게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의 이야기인데, 벌써 50대 중반이 넘었다(웃음).

Q. 좀 더 자세한 개업 비화를 듣고 싶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난 예술가다. 부모님과 형제들도 모두 예술을 했고, 나도 어릴 적부터 미술과 음악을 하고 밴드 활동을 했다. 그 시절엔 기타와 소주 하나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었다. 워낙 나라에서 금지하는 노래들도 많고 검열하는 것도 많았기 때문에 도망 다니면서 음악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게 삶의 낙이었다. 원래 사람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게 음악과 함께 살던 나는 나만의 록카페를 개업하겠다는 꿈을 품었고, 신촌에 우드스탁을 열게 됐다.

Q. 음악은 어떻게 선곡하나?

간단히 말하면 신청곡을 받아서 노래를 튼다. 우리는 CD 바가 아니라 LP 바다. 단 한 번도 음악을 다운받아서 튼 적도 없고, CD로 튼 적도 없다. 이런 곳이 몇 없기 때문에 LP판으로만 음악을 트는 것이 가게를 오랫동안 유지한 비결이라고도 생각한다.

사람마다 혈액형이 다르듯, 손님마다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 다르다. 그래서 그들의 신청곡 하나하나가 우드스탁을 만든다. 우드스탁에서 가요는 틀지 않는다. 올드록과 팝 음악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가요는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지 않은가. 올드록과 팝음악은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다.

Q. 가게가 오래되다 보니 레트로 감성이 짙다.

사실 92년도에 개업할 때부터 레트로 감성에 가까웠다. 우드스탁의 캐치프레이즈는 ‘seventies rock’이다. 70년대 베트남전 이후의 히피 문화. 불만 가득한 냉전 시대의 음악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게에 우드스탁 페스티벌 속 6~70년대 올드팝 문화를 구현하고자 했다. 당시 사람들의 평화를 향한 욕망, 그걸 음악으로 남겨두고자 했던 게 우드스탁의 시작이었다.

Q. 요즘 뉴트로(New-tro)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현상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면서 한 번쯤 ‘인간은 왜 사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나. 사람은 추억으로 사는 것 같다. 레트로가 하나의 장르가 된 것도, 예전 음악이나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모두 추억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일련의 회귀 본능 아닐까. 특히나 지금처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이런 상황 속 휴식에 대한 욕망이 어릴 적 추억에 대한 향수로 발현되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요즘 파란 하늘 보는 게 얼마나 힘들어졌는가.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은 옛날엔 너무나도 당연했던 파란 하늘에 대한 향수를 부른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다 레트로고, 향수고, 추억인 것 같다.

Q. 오래 운영했던 만큼 기억에 남는 손님이나 에피소드가 있나.

솔직히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나 단골들은 너무 많아서 책으로 써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우드스탁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고, 결혼까지 골인한 커플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2세가 커서 다시 우드스탁을 찾아온다. 전에 이곳에서 엄마, 아빠가 들었던 곡을 신청하고, 같이 들으러 오기도 하고.

이런 것들은 오래된 가게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닌가. 이런 순간에 가장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30년 동안 350쌍이 넘는 손님들의 결혼을 축하해줬다. 다들 듣고 놀라지만, 30년으로 나눠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은 수도 아니다.

Q. 가장 지키고 싶은 우드스탁만의 개성이 있는가.

가게를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우드스탁만의 개성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개성은 손님들이 만든다. 손님들 한 명 한 명이 우드스탁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 그들이 신청하는 곡들과 나누는 대화들이 그날의 분위기를 만든다. 그게 하루 이틀 모이고, 1년이 되고 30년이 되면서 우드스탁만의 개성이 만들어졌다. 그 시간 동안 우드스탁 자체가 이미 개성이 됐고, 이것만으로도 다른 가게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키고 싶은 걸 꼽으라면,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이곳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내 건강, 이거 하나뿐이다.

Q. 우드스탁은 신촌에서 어떤 존재가 됐으면 하는가.

별다른 욕심 없이, 앞으로도 신촌에 있을 수 있는 한 오래도록 있는 카페가 됐으면 한다. 사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지금까지 우드스탁을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매일 가게를 열기 위해서 샤워하고 준비하는 순간들이 행복하다. 그래서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우드스탁을 계속 운영할 것이고, 아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 우리 아들은 우드스탁을 받아서 운영할 생각 조금도 없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말이다(웃음).

사장님을 인터뷰하는 내내 사장님의 목소리에는 우드스탁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30년간 뚝심 있게 자리를 지켜온 덕인지, 우드스탁은 이미 그 자체로 신촌 사람들에겐 하나의 장르가 된 듯하다. 90년대 록키들의 추억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우리도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30년 후의 청년들이 지금의 이곳을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를.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김현지, 윤채원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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