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바를수록 상처 났던 마음

다들 고등학교 때 선생님 몰래 화장하다 걸려 혼나본 적 있을 거야. 나도 그중 하나였어. 그런데 나는 멋만을 위해 화장하던 것은 아니었어.

어릴 때부터 울긋불긋 올라오던 여드름은 내게 큰 고통이었어. 오죽하면 거울을 미워했을까. 잡티와 화장기 하나 없이 맑은 피부로 돌아다니는 친구들을 볼 때면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웠어. 부모님은 하나뿐인 딸이 점점 움츠러드는 것을 걱정해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셨지만, 사춘기 호르몬으로 생기는 여드름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더라.

그래서 열심히 화장품을 덧발랐어. 미백크림, 비비크림, 여드름 패치로 흉터와 상처를 꽁꽁 싸맨 뒤에야 학교로 향할 수 있었어. 선생님들은 왜 이렇게 엇나가냐며, 혼나는 게 질리지도 않냐며 타박하셨지. 뒤에서 수군대는 친구들도 내 마음에 큰 생채기를 냈어. 지금 생각하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자신을 미워하고 자존감을 깎아내렸는지 모르겠어. 덧바르고 덧바를수록 내 마음의 흉터는 더 깊어져 갔다는 걸 그땐 알 수 없었지.

 

#불어가는 몸, 말라가는 마음

작년 2월부터였나. 나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았어. 호르몬이 어찌 어찌 작용해서 몸에 변화가 생기는 거라는데, 사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온종일 자도 피곤했고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 지쳤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2~3주라는 짧은 기간에 살이 엄청나게 찌더라.

믿기지 않겠지만 2주가 조금 지났을 때 나는 20kg가 불어있었어. 평소 33치수 옷을 입던 나는 엄마가 임신했을 때 입었던 옷을 물려 입어야 했어. 단순히 살이 쪘을 뿐인데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대하기 시작하더라고. 학기가 시작되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나를 못 알아보기 일쑤였고 종종 보던 친구들도 혀를 내둘렀어. 나를 향한 모든 관심이 부담스러웠어. 학교 홍보대사로 활동하던 나는 캠퍼스 투어를 준비하고 있었어. 그러던 중 아는 동생이 말을 걸었어. “누나 그 몸으로 단복이 들어가네? 쪽팔릴 거 같은데 대신 가줄까?”

이게 다가 아니야.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던 내게 아는 동생이 다가와서는, “어유 그렇게 먹으니 살이 찌지. 적당히 좀 먹고 빼요.”라고 말하더라. 그 이후 한동안은 집에서조차 숨어서 식사했어. 내가 무언가를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게 느껴졌거든. 내 체격을 향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상처였어.

결국 나는 굶으며 온종일 운동하고, 숨어다니며 다이어트에 전념했어. 배가 고파 눈물이 핑 돈 적도 있고 거식증을 앓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어봤어. 그때마다 마른 것보다 달콤한 건 없다는 어느 연예인의 말을 되뇔 수밖에 없었어.

예전만큼 마르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혹독한 다이어트 끝에 눈에 띌 만큼 통통하지는 않게 됐어. 하지만 짧은 새 확실하게 느꼈지. 몸무게가 변하면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그래서 한번 묻고 싶다. 살, 대체 그게 뭐라고.

 

#내가 승무원이야, 인형이야?

외모지상주의는 누가 뭐래도 취업전선에서 정말 실감이 나. 난 승무원을 준비했었거든.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 타는 게 좋았고, 다양한 나라의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꿈꾸게 됐지. 근데 웬걸, ‘승무원은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는 그 공식 하나가 나를 몇 년이나 괴롭혔는지 몰라. 일단 면접 때부터 면접관들이 예쁜 사람들한테만 대놓고 관심을 주는 게 보여. 일렬로 면접실에 들어가잖아? 면접이 시작하기도 전에 면접관들의 시선을 보고 탈락인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어. 씁쓸하지. 또 유튜브에서 승무원 관련 콘텐츠를 검색하면, 실질적으로 어떤 스펙이 필요한지에 대한 내용은 생각보다 많이 없어. 대신 피부관리나 몸매 얘기가 훨씬 많지. ‘어차피 난 안 될 텐데 삽질하고 있나’하는 심정까지 든다니까.

한 번은 진짜 기분 나쁜 적이 있었어. 학원 준비반에서 승무원 유니폼을 받았는데, 진짜 무대의상 마냥 작고 딱 붙더라고. 배에 살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예 입을 수도 없게. 거기다 안경은 절대 쓰면 안 돼. 승무원 준비 때문에 치아교정, 미백, 렌즈 등 외모 관리에 부은 돈이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안 가.

제일 힘든 건 준비생들 간 기 싸움이 진짜 심하다는 거야. 안 그래도 박 터지는 취업전선에서 준비생들끼리 고민이나 노하우도 나누면서 지내면 좋잖아, 우린 그러기가 힘들어. 얼굴을 물건처럼 평가하는 게 일상이야. 쟨 저기 고쳤고, 쟨 어차피 코 때문에 안되고…. 막 이런 식. 어이없지만 그게 현실이더라고. 취업전선에서 외모는 이미 하나의 스펙이 된 듯해.

 

 

글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박지현 기자
pjh8763@yonsei.ac.kr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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