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사 곳곳에 도배된 성형외과 광고를 보면 성형수술이 외모지상주의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성형수술은 현재와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성형수술은 기원전 800년경 고대 인도에서 잘린 코를 재건하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렇듯 성형수술은 복원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본래의 의도는 많이 변했다.
증가하는 생계 및 취업 준비형 성형수술
오늘날 성형수술은 단순 ‘미용’에서 그 역할이 더욱 다양해졌다. 내 경험을 예로 들자면, 나는 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인턴십에 지원하려고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이력서에는 사진을 첨부하는 칸이 없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의 이력서 서식에는 증명사진을 넣는 칸이 존재한다. 늘 의아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2016년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는 인사담당자의 63%가 ‘채용 시 지원자의 외모를 평가한다’고 답했다. 2017년에는 이력서 사진 부착 금지 법안이 국회에 통과됐지만, 외모는 아직도 취업에 영향을 끼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서 2017 신입 채용 동향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 인사담당자의 59.4%는 지원자의 사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렇듯 외모는 하나의 ‘취업 조건’으로 자리잡았다. 사람들은 회사 내에서 차별당하지 않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기도 한다.
외모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라진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광고대행사가 조사한 결과 약 70%의 여성들이 외모를 꾸미면 친절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성형수술 비용을 빌려주는 대출회사들까지 등장했다.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 성형을 감행하게 된 것은 아닐까. 미용을 위해 선택적으로 했던 성형이 이제는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한 요소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또 직업에 따라서 성형 ‘유형’이 정해져 있다. 사람들은 희망 직군에 따라 맞춤형으로 수술을 요구한다. 성형수술의 목적이 미용에서 취업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에 발맞춰 몇몇 성형외과는 특정 직군을 겨냥한 성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성형? 그까짓 게 뭐,
자유로운 분위기와 낮아지는 연령
목적이야 어찌 됐건 성형인들에 가해지는 삿대질은 유의미하게 줄었다. 그만큼 미용성형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는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성형에 대한 담론이 터부(Taboo)시되는 사회가 아니다. 불과 5년 전쯤만 하더라도, ‘강남미인’, ‘성형괴물’, '의란성 쌍둥이’등의 단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곤 했다. 그러나 성형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예뻐지고자 하는 욕망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하는 인식이 자리 잡으며 이들에 대한 혐오는 점점 줄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는 미디어에도 나타난다. 예컨대 웹툰 『내 ID는 강남미인』의 흥행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본디 ‘강남미인’이란 단어는 성형수술을 한 여성을 일컫는 혐오 표현이었다. ‘어차피 강남 가면 다 똑같이 생겼다’는 말과 같이, ‘강남미인’이라는 단어에는 성형수술을 한 여성에 대한 멸시가 투영돼있다. 하지만 그 ‘강남미인’을 주인공 삼은 이 웹툰은 엄청나게 흥행했고, 지난 2018년에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이는 사람들이 ‘성형인’에 공감하고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덕에 성형수술을 시작하는 연령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KBS가 지난 2015년도에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19~29세 여성의 성형수술 경험률은 1994년, 2004년, 2015년에 각각 5%, 13%, 31%이었다. 20년 새 6배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고3은 수능 끝나자마자 신사동으로 간다’는 장난 섞인 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도 옛말인 듯하다. 점차 10대, 20대 성형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성형 또한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초등학생들이 쉽게 접하는 미디어의 영향도 있다. 2018년에 처음으로 크리에이터 및 유튜버가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상위 5위에 들었다. 매체 시장이 확대되며 ‘예쁜’ 외모의 SNS 인플루엔서, 아이돌, 유튜버들이 아이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단순히 그런 외모를 선망하는 것에서 나아가,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해당 직군을 꿈꾸는 초등학생들의 증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여지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해당 직업군에겐 외모와 나이가 모두 경쟁력이기에 초등학생들은 그들을 향한 동경심을 품은 채 일찍이 성형외과로 향한다. 이 역시 성형수술을 하나의 손쉬운 선택지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성형은 이렇게 점점 떳떳한 의술로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무리 외모지상주의의 산물이라 한들, 성형으로 외적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단 말에 사람들은 더 이상 반기를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성형이 자존감 낮은 사회에서 출발한 필요악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터. 사실 우리에게 성형은 새어 나오는 자기혐오에 대한 일시적인 미봉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테다. 그렇기에 궁극적으로는 성형을 권하는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소 먼 길이 될 것 같긴 하지만, 외모보다는 사람 자체를 볼 수 있는 사회와 조우하기를 바란다.
글 김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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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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