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he Y
다른 시대에 만났다면 우리 사랑은 칼바도스보단 달콤했을까영화 『개선문』과 칼바도스
  • 김현지, 윤채원 기자
  • 승인 2019.04.01 02:17
  • 호수 48
  • 댓글 0

“Welcome, War criminals.”

지난 2018년 11월, 프랑스 개선문 앞을 가득 메운 목소리는 잦아들 줄 몰랐다. 때는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각국 정상들은 100년 전의 잔혹한 역사를 잊어보자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시민들은 단호하게 그들을 맞았다. ‘fake peace’라는 문구를 온몸에 적은 채.

평화를 맞이하자는 그들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와 분노에 찬 시민들의 부조화는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용서를 구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들과 그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 아니겠는가. 온갖 잡음이 뒤섞인 개선문 앞을 보며, 지금의 각국 정상들과 80년 전 개선문 앞에 몰려들었던 망명자들이 미묘하게 겹쳐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적대국에서 건너와 개선문 앞을 떠돌아다니던 그 초라한 얼굴들. 시간이라는 게 참 무섭긴 하다. 개선문 앞은 싸구려 와인으로 시름을 달래는 망명자들로 가득했는데, 언제부터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각국 정상들의 모습으로 갈음됐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파리’하면 에펠탑이나 고급 와인, 바게트가 떠오른다지만 난 지금의 파리를 보면 뭔가 쓸쓸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개선문 앞 떠돌이들의 벗 ‘칼바도스’가 떠오른다. 영화 『개선문』을 본 사람이라면 잔잔한 음악에 칼바도스를 곁들인 라비크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계대전 속 어수선한 파리에서, 그에게 칼바도스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와 같은 존재였다. 한국 나그네들에게 막걸리가 있었다면 프랑스 망명자들에겐 칼바도스가 있었던 셈이다.

‘라비크’는 반나치 운동으로 독일에서 추방돼 숨어 사는 그의 세 번째 이름이다. 이름을 바꾼 후에도 생계가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는 그 이름이 맘에 든다. 아마 그 이름으로 센느 강에서 사랑스러운 여인 조앙을 만났기 때문일 테다. 그들의 사랑은 개선문 앞 술집에서 칼바도스를 타고 커져만 간다. 가격이 싸고 독한 칼바도스는 ‘싸구려 술’이라고 불린다. 가난한 망명자가 무슨 돈이 나서 비싼 술을 마셨겠거니와, 어수선한 파리 속 은둔의 삶을 생각해보면 높은 도수의 칼바도스가 그에겐 제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독하고 값싼 칼바도스는 라비크의 심정과 캐릭터를 투사해내기에 충분한 술이 아니었을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마신 술 이름이 뭐였죠?”

“왜지? 그렇게 맛이 좋았소?”

“그처럼 몸을 훈훈하게 해주는 술이 없기 때문이에요.

개선문 근처의 조그만 술집이었어요. 웨이터가 팔뚝에 여자 문신을 하고 있고요.”

“아, 이제야 알겠어. 칼바도스군. 노르망디에서 나는 사과로 만든 브랜디지.”

칼바도스는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나는 사과 증류주다. 포도주가 유명한 프랑스지만, 노르망디에선 유독 포도가 나지 않아 사과로 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과로 만든 탄산수를 증류시킨 브랜디가 바로 칼바도스다. 도수는 54도 정도로 노숙 브랜디*의 2배에 가깝다. 사과주를 두 차례 증류하는 과정에서 사과에 풍부한 에스테르* 성분의 역한 향이 배어 마시기가 어렵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몇 주정도 뚜껑을 열고 바람을 쐐줘야 본래의 향이 되살아난다. 포도 브랜디가 많은 프랑스에서 칼바도스 같은 사과 브랜디는 하등한 술로, 신사 숙녀가 마실 만한 술은 아닌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추억이 깊은 사람들에겐 얘기가 다를 테다. 예컨대 학창시절에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돌려본 내겐 쓸쓸한 개선문 앞을 그리며 칼바도스를 마시는 것이 꽤 오랜 로망이었다. 축축한 안개 속에서 칼바도스에 몸을 맡긴 라비크처럼. 나의 그 치기 어린 소망은 어느 늦은 밤 연희동의 ‘책바’에서 이뤄졌다. 자리에 앉아 칼바도스가 있냐고 묻자, 바텐더는 40도가 넘는데 괜찮겠냐고 되물었다.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드디어 작은 잔에 담긴 칼바도스를 만났다.

사과 주스 색을 띠는 그 모습은 상큼한 과즙 맛을 기대하게끔 했다. 하지만 이내 숨을 들이키기만 해도 알코올 향이 코를 압도하는 것이 ‘속지마, 난 독한 양주야’라고 말을 건네는 듯 보였다. 그렇게 홀짝거리며 마신 칼바도스는 뭐랄까, 발칙한 맛이었다. 사과 브랜디답게 처음엔 달콤한 과즙 향이 난다. 그러나 상큼하고 톡 튀는 청사과의 맛은 아니다. 농익다 못해 거무튀튀해진 사과의 맛에 가깝다. 달콤함도 잠시, 이내 목구멍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다. 화하게 식도를 지나간 칼바도스는 약간의 탄산감과 강한 아세톤 향만을 남긴다. 조앙이 말한 ‘몸을 훈훈하게 하는 술’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칼바도스의 독한 열감이 그들을 속였나 보다. 어떤 종류에서든지 따뜻함이 필요한 그들은 칼바도스를 ‘훈훈함을 선물해주는 존재’로 착각했다. 지금이든 그때든, 칼바도스는 발칙한 술이다.

그 독한 술과 한참이나 씨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취기에 젖어 상상에 잠겼다. 칼바도스는 인위적인 미소로 가득한 지금의 개선문 앞을 잊게 했다. 대신에 1940년대의 파리로 나를 데려다줬다. 조앙과 라비크가 잔을 부딪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쓰디쓴 칼바도스의 끝맛처럼 그들은 끝까지 행복할 수 없었다. 조앙은 같이 살던 남자에게 총을 맞아 죽고 라비크는 불법 입국자로 체포당해 트럭에 실려 간다. 프랑스를 떠나는 그는 사방이 어두워 늘 함께하던 개선문마저 볼 수 없다. 그렇게 어두컴컴한 그의 시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는 애써 비운 칼바도스 잔을 내려두며 생각했다. 만약 개선문 앞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1940년대가 아닌 아름다운 시대에 만났더라면, 그들의 사랑은 칼바도스가 아니라 달콤한 와인이었을까. 시대는 사람과 사랑을 파괴했다. 지금도 혹시 아픔의 시대를 겪고 있는 곳에서는 또 다른 라비크와 조앙이 사랑을 나누고 있진 않을까. 독한 싸구려 와인으로 마음이나마 가득 적신 채.

*브랜디: 발효시킨 과일즙이나 포도주를 증류해서 만든 술. 노숙 브랜디는 오랫동안 숙성시킨 브랜디를 말한다.
*에스테르: 산과 알코올에서 물을 제거할 때 생성하는 화합물 및 이론상 이에 해당하는 구조를 가진 화합물.

글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사진 윤채원 기자
yuncw@yonsei.ac.kr

김현지, 윤채원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