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원 즈음은 우스운 뮤지컬 관람료. 그리고 모르는 새 엉금엉금 올라가 버린 영화 티켓값.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요즘.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과 돈에 점점 문화생활과 멀어져가는 청년들을 위해 『The Y』가 나섰다. 매달 정한 테마에 맞춰 기자들이 엄선한 3개의 작품으로 가득 차린 한 상. 「The Y의 리뷰식당」이다.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

4월, 파릇한 봄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달. 이에 발맞춰 눈과 귀를 달콤히 녹여줄 음악으로 가득 찬 작품이 상에 올랐다. 사랑과 그리움, 고뇌를 담은 음악과 그 선율 속 다채로운 이야기의 향연을 만나보자.


극장판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동심의 세계로 당신을 데려가는 아름다운 선율

17년간 연재된 일본의 유명 만화 『피아노의 숲』. 만화가 인기를 끌자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연이어 등장했다. 세 가지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이번에 다뤄볼 작품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영화엔 2명의 소년이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도쿄 소년 아마미야. 그리고 창녀촌에서 태어나 피아노 레슨 한번 받아본 적 없는 천재 소년 카이. 극은 이 둘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다.

‘노력형 영재와 타고난 천재의 라이벌 구도’라는 클리셰를 포함하지만, 여타 이야기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바로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아마미야는 카이를 시기하기보다 본인의 부족함을 고민한다. 그의 이런 감정선은 잔잔하게 두 사람의 우정과 성장으로 이어진다. 선과 악의 자극적인 대립 없이 순수하게 이어지는 극은 따뜻한 매력이 있다. 영화는 우리에게 경쟁 심리를 부추기지도 않고, 둘 모두에게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도록 한다.

누군가에겐 현실감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긴박감 없는 연출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이야기가 판치는 요즘, 이 작품은 보기 드문 ‘순한’ 애니메이션이다. 편안한 음악과 착한 인물들만으로 따뜻함을 자아낸다. 그 따뜻함의 이유는 카이와 아마미야가 우리 맘 안에 굳게 잠긴 상상력의 방문을 노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숲에 버려진 고물 피아노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피아노 수재가 아무리 두들겨도 잠잠하던 그 피아노는 카이의 손이 닿자마자 예쁜 멜로디를 들려준다. 그 슬프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떠오를 때마다 가본 적도 없는 ‘피아노의 숲’이 그리워진다.

 

#우연은 운명을 가장하는 믿음

영화 『어거스트 러쉬』

 

‘당신의 가슴을 연주할 특별한 이름’, 『어거스트 러쉬』

포스터에 적힌 문구처럼, 영화는 길거리 음악인들의 연주로 가득하다. 하지만 포스터 문구가 담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영화에 가득한 우연이 만들어내는 만남이다.

촉망받던 첼리스트 라일라(케리 러셀)와 밴드의 리드싱어 루이스(조너선 리스 마이어)는 각자 공연을 마친 뒤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말 없는 눈 맞춤으로 그려지는 이들의 첫 만남은 우연적인 사랑의 시작 그 자체다.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한 사랑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적적인 사랑을 믿어보고 싶게 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 속 사랑 이야기가 으레 그렇듯, 라일라와 루이스는 너무나도 다른 삶의 궤적으로 인연을 이어나가는 데에 실패한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일장춘몽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둘이 함께했던 그 날 밤 사랑의 결실은 이미 생겨났다는 것을.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에반(프레디 하이모어)의 삶 속에도 음악은 자연스레 피어났다. 그는 때로는 길거리의 악사와 함께, 때로는 혼자 음악을 즐겼다. 모든 소리를 선율에 녹여낼 수 있는 재능은 어쩌면 그가 삶을 꿋꿋이 이어 나갈 수 있던 원동력이었을지 모른다.

부모님과의 만남을 향한 간절함이 담긴 에반의 노래는 우연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에반이 경찰의 단속을 피해 들어간 교회에서 우연히 듣게 된 아름다운 성가, 에반의 천재성을 발견해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와준 목사 등의 기적들이 에반 앞에 펼쳐진다.

어쩌면 우리의 삶을 새로운 국면으로 바꾸는 것은 수많은 계획과 걱정이 아닌 예기치 못한 찰나의 순간일지 모른다.“내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면 날 찾으실 거야. 그분들은 항상 나를 원하셨지만 길을 잃으신 것뿐이야.” 소년 에반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연주와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음악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그를 살아가게 한 의지이자 믿음이다. 척박하고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가끔은 믿고 싶은 기적을 찾아가는 에반의 노래와 선율을 엿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음악이 들리는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음악을 사랑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 「노르웨이의 숲」 노랫말을 녹여냈다. 『상실의 시대』로 번역돼 한국에 들어온 소설의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다. 이는 비틀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홀로 남겨진 노래 가사 속 소년처럼, 소설의 주인공인 와타나베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은 후 홀로 남겨진다.

와타나베가 사랑한 여자 나오코는 이 노랫말을 자신의 이야기와 동일시한다. 홀로 남겨진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낀 그녀는 목숨을 끊는다. 와타나베와 친구 레이코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연주한다. 나오코의 죽음을 겪은 와타나베는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나 역시 주인공만큼 많은 상실을 겪었기에, 이 소설은 ‘여기 상실을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고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상실을 마주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한 것 같다.

숲속을 거닐듯 여러 음악과 산책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을 함께 듣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단, 야한 장면이 다소 많으니 부모님이 옆에 계신다면 주의하길 바란다.

 

글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김인영 기자
hellodlsdud@gmail.com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자료사진 Daum 영화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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