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을 둘러싼 갈등과 문제를 짚어보다

빌딩 숲속 뒤, 연희 1구역을 본 적 있나요?

지난 3월 20일 아침, 서대문구청 앞은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집회로 시끌벅적했다. 이는 2월 15일부터 계속되고 있다. 연희1구역 재개발은 올해로 16년째 지연되고 있다. 현재 연희1구역엔 재개발을 시작하는 관리처분*도, 재개발을 포기하는 직권해제**도 내려지지 않고 있다. 『The Y』에선 연희1구역의 재개발이 왜 중단됐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봤다. 

 

재개발, 주민의 주거권은 뒷전인
‘남 좋은 일’

 

연희1구역은 지난 2004년 재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총 860가구가 재개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재개발을 둘러싸고 연희1구역 주민들의 입장은 나뉘었다. 주민들은 재개발을 추진하는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아래 조합)과 재개발을 반대하는 연희1구역재개발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으로 갈렸다.

비대위는 재개발의 대가로 주어지는 토지 및 건물감정평가액이 지나치게 낮다며 재개발에 반대한다. 연희1구역의 평당 감정평가액은 650~900만 원이다. 반면 재개발 후 건립될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2천만 원에 육박한다. 비대위에서 활동하는 공정승(59)씨는 “재개발로 신축될 아파트의 분양가와 주민들이 건설사로부터 받는 평당 감정평가액이 너무 많이 차이난다”며 “재개발 후 다시 입주하려고 해도 주민 대부분이 대출을 받을 수 없는 무직 상태의 노인분들이기 때문에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 도시재정비과 이윤주 주무관은 “감정평가는 토지 및 건물 주변 상황에 대한 고려를 포함한 전문 감정평가사의 감정에 의거했다”며 “연희1구역의 좁은 도로 폭 등이 감정평가액이 비교적 낮게 선정된 이유인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주민투표, 
갈등을 심화하다

 

연희1구역 재개발 사업의 진통은 지난 2016년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시발점은 주민투표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정비사업구역으로 선정된 후 4년간 관리처분을 인가받지 못한 구역에 한해 주민의견조사(아래 주민투표)로 재개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조례 일부를 개정했다. 주민투표는 토지등소유자*** 1/3 이상이 신청할 시 진행할 수 있다. 주민투표에서 찬성률이 50% 미만이면 직권해제를, 50% 이상이면 관리처분을 시행한다. 이에 따라 2016년 11월 24일, 서대문구청은 ‘연희1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조합 구역해제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토지등소유자 526명 중 263명이 사업 찬성, 36명이 무효, 36명이 기권에 투표했다. 찬성률이 정확히 50%가 된 것이다. 찬성률 50% ‘이상’이라는 조건이 충족됐으므로 재개발 사업은 추진돼야 했다. 하지만 비대위가 투표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재개발이 유보됐다. 조합장이 조합원 299명 모두에게 ‘찬성 쪽에 투표하지 않으면 추후 분양 및 현금청산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씨는 “조합장의 문자로 의사를 번복한 주민이 있었다”며 “공정성을 잃은 주민투표였음을 구청에서도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 또한 조합장의 부적절한 행위를 인정했다. 이 주무관은 “당시 조합장의 찬성투표 독려 행위를 알고 있었다”며 “행정지도 형식으로 경고했으나 조합장은 주민들에게 부적절한 연락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 조합장은 구청 주도로 고발됐다. 그는 검·경찰 조사 뒤 벌금 300만 원의 약식 기소를 받았다. 하지만 조합장 측은 정식 재판을 요구했고,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찬성 결과 번복 힘들어…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

 

조합장이 법적 조치를 받았지만, 재개발은 반려되지 않았다. 50%의 찬성률은 법적으로 유효하다는 법리적 해석 때문이다. 민법 제110조****에 따르면 상대방의 강박 및 사기로 이뤄진 의사표현은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투표와 같은 단체적 공법 행위는 예외다.

이에 비대위는 협박과 회유로 조성된 찬성표를 제외하면 찬성률은 50% 미만으로 떨어지며, 조례에 따라 직권해제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씨는 “2016년 주민투표 당시 구청장은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며 “구청장이 지난 3년간 서울시에 한 번도 직권해제 검토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권해제를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서울시장의 권한이다. 현재 비대위는 서대문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서대문구청은 법률에 의거해 관리처분을 인가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그러나 주민투표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직권해제를 요구하는 반대 여론에 부딪혀 관리처분 인가를 보류하고 있다. 이 주무관은 “구청 차원에서 서울시에 직권해제 처분이 가능한지 문의했으나 법적으로 관리처분을 시행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법리적 해석을 등에 업고 빠른 시일 내에 재개발을 시행하자는 조합 측의 목소리는 커졌다. 조합 측은 서대문구청이 관리처분 인가를 보류하고 있다며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서대문구청은 지난 2018년 12월 24일 해당 소송에서 재개발 관리처분 인가 보류가 부적합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즉각적으로 재개발을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구청은 현행법상 불법인 기한 이후 추가 분양을 주민들에게 종용하고 있다. 공씨는 “구청은 분양권 전매*****도 가능하다며 주민들을 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벌어지는 주민 간 반목,
버려지는 집과 거리

 

갈등의 골이 깊어짐에 따라 마을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원칙적으로 수리, 보수 등의 행정적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을 기다리던 사람들부터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하나둘 마을을 떠나면서 공실이 급격히 늘어났다. 연희동에 20년 넘게 거주한 A씨는 “연희동이 워낙 주민 간 빈부격차도 크고 낙후도 심한 곳이다”라며 “그런 곳에서 문제해결이 이렇게 늦어지니 낙후가 심해지고,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비대위 측은 “주민들이 떠나간 빈집에는 투기꾼들이 몰려들어 사용하지도 않는 주택들을 독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독점하는 주택에는 사람이 오가지  않아 낙후문제가 더 심해진다. 오래된 아스팔트 도로와 정비되지 않은 거리는 주민들의 불편함을 가중시켰다. 재개발이 확정된 지역에서는 보수공사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대문구 주민 김진정(53)씨는 “동네가 낡긴 했어도 뚜렷한 문제는 없었는데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동네가 많이 더러워지고 사람들도 사라진 거 같다”며 “일찍 집을 옮기기를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주무관은 이에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뒤에는 구청 차원에서의 개·보수가 어렵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철거될 곳에 새로운 자재를 들이는 공사를 하는 것은 재정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6년째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연희1구역 재개발. 앞으로의 재개발 과정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주민들을 위한 조치가 포함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관리처분: 종전의 토지 또는 건축물에 대한 권리를 새로 건설하는 대지와 건축물에 대한 권리로 전환시키는 계획으로서 주택 등의 분양과 주민의 비용 부담을 확정하는 사업절차
**직권해제: 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곳들 중 토지 소유자들의 과도한 손해 부담이 예상되거나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시장 직권으로 재개발구역지정을 취소하는 절차
***토지등소유자: 정비구역에 위치한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자 또는 그 지상권자
****민법 제110조 (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①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분양권 전매: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이 그 지위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 입주자를 변경하는 것

 

글 김현지 기자
hjkorea0508@yonsei.ac.kr
박지현 기자
pjh8763@yonsei.ac.kr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사진  하광민 기자
pangman@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