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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말랑말랑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 신은비 매거진부장
  • 승인 2019.04.01 01:43
  • 호수 1829
  • 댓글 2
신은비 매거진부장
(언홍영·17)

멋진 기자가 돼 멋진 글을 쓰고 싶었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어 세상을 바꿔나가는 그런 멋진 기자. 그래서 「연세춘추」에 들어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도나 사회부가 아닌 매거진부를 선택한 이유는 말랑말랑한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어차피 딱딱한 글은 나중에 많이 쓸 테니까,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글을 쓸 기회는 없을 테니까.

예상대로 예쁜 카페, 신촌의 맛집, 나만 알고 싶은 술집을 찾아다니는 건 그 자체로 매력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나만의 문체와 스타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건 더더욱.

벌써 2년이다. 향긋한 찻잎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던 ‘아뜰리에안’. 밥 굶고 다니는 자취생에게 따뜻한 집밥을 차려주시던 ‘감성매인’. 지금은 손님이 너무 많아져 자주 가지 못하는 ‘비멜로우’. 직접 구운 빵을 봉지 가득 챙겨주시던 ‘이원일 셰프님’, 진짜 아나운서는 이런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셨던 ‘최희 아나운서’. 참 많은 가게를 다녔고,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병아리 기자에서 부장이 된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쓰고 싶었던 말랑말랑한 글을 썼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참 많은 일이 있던 2년이었다. 부기자 시절을 회상해보자면, 이슈는 단연 미투 운동이었다. 서지현 검사의 작은 외침은 세상을 향해 큰 돌을 던졌다. 그 용기 덕에 많은 여성이 함께 외칠 수 있었다. 나와 내 주변인들의 오마주이자 재현이었던 그의 경험. 우리가 서지현이었고, 서지현이 우리였다. 그래서 기자가 된 후 가장 먼저 펜을 들고 ‘나도 98년생 서지현이다’라는 글을 썼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정기자가 됐을 땐 임신 중절 합법화를 위해 많은 여성이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 아님을 입을 모아 외쳤다. 나는 임신 기계가 아니라고, 내가 바로 생명이라고 외쳤다. 함께하지 못함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언제든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펜을 들었다. 그렇게 쓴 글이 ‘내가 생명이다’였다.

부장이 되고 다신 펜을 들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나를 그렇게 두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펜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더 이상 예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그들과 함께하지 못함이 부끄러워서. 다시는 뒤돌아 가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한 편의 짧은 글을 다시 실었다.

말랑말랑한 글을 쓰고 싶었다. 예쁜 카페, 맛있는 음식들 따위의. 쉬운 글을 쓰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글이 너무 쉽게 쓰인다. 별다른 생각 없이, 고뇌 없이. 지금은 별이 된 난세의 시인이 ‘쉽게 씌어진 글’은 부끄럽다더라. 세상은 이렇게 굴러가는데, 이렇게 글이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더라. 감히 나를 윤동주 시인과 동일 선상에 올리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나 또한 시대처럼 올 아침을 그저 기다리는 최후의 나의 모습이 창피할 뿐이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쉽게 쓰여지는 글’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엔 모 연예인의 이름이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이지만, 관련 동영상을 찾는 검색어가 그 뒤를 따르는 것 또한 충격이다. 참 이상한 세상이다. 여자들이 재화가 되고 여자의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세상. 끊임없이 피해자의 신상을 궁금해하는 세상. 이 순간에도 그 동영상으로 인해 누군가는 살해당하고 있는, 그런 이상한 세상. 아마 이건 정말 내 마지막 글이겠지. 말랑말랑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틀렸나 보다.

신은비 매거진부장  god_is_rain@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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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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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9-04-06 18:22:34

    신기자님의 글을 몇개 봐왔는데 그 중 가장 말랑하면서도 무겁고, 감성을 자극하는 글이네요. 같은 활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공감되네요. 힘내세요!!   삭제

    • 은비최고 2019-04-03 15:32:02

      은비 부장님 춘추 하면서 고생했어요:) 말랑말랑하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단단한 기자님의 글이 많은 위로이기도, 힘이기도 했습니다! 감사했고 수고했어요 은비 최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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