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르 브르통이 제안하는 도보여행자의 하루

당신은 오늘 왜 걸었는가. 아마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걷는 행위는 사물에 몸을 싣는 방식으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 때 찾는 최후의 보루가 됐다. 이동수단이 발전하면서 걷기가 불필요하고 귀찮은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질문을 바꿔보겠다. 당신은 ‘걷기’를 위해 걸었던 기억이 있나. 

 

걷기, 사유로 나아가기

 

지난 2016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 2명 중 1명은 하루에 30분도 걷지 않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그의 저서 「걷기예찬」에서 이러한 걷기의 소멸을 ‘위기’로 명명한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몸과 생각을 무뎌지게 한다고 말한다.

“걷는 동안 여행자는 자신에 대해, 자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혹은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게 된다.” 「걷기예찬」 서문의 한 문장이다. 브르통에게 걷기는 사유의 시작이다. 그에 따르면 걷기는 수많은 감각기관을 자극하며 보행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책 속에 등장하는 루소, 스티븐슨, 소로 등의 많은 사상가들도 걷기를 예찬했다. 브르통은 걷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걷기를 사랑했던 위인들의 생각을 교차시킨다. ‘사유의 대가’들이 걸어온 길 위에서 그들의 감상을 풍경과 엮어내는 것이다. 

브르통에게 보행은 끝없는 배움의 장이기도 하다. 그는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라며 보행이 가지는 기록적 특성을 조명했다. 책이나 강의에서는 얻을 수 없는 동적 체험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형상은 그 자체로 귀중한 자산임을 역설한 것이다. 

그렇다면 브르통이 제시하는 걷기의 방식은 무엇일까. 그는 ‘침묵’을 강조한다. 주변의 소리를 충만히 듣기 위해 조용히 걷기. 침묵을 횡단하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음미하고 즐기는 것, 이것이 브르통이 제안하는 진정한 걸음의 태도다. 그러나 이어폰을 꽂은 채로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브르통의 걷기 방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걸음의 태도는 걷는 이의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보도여행자는 자동차를 버리고 여러 시간 혹은 여러 날 동안 세상에 알몸으로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작정한 특이한 개인들”이라는 브르통의 말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다. 이는 세상에 뛰어드는 보도여행자를 향한 찬사다. 

 

내 숨과 내 보폭으로

 

배우 하정우 역시 「걷기예찬」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시상식에서 농담 던지듯 내건 국토대장정 공약을 실천하면서 「걷기예찬」을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브르통의 책을 읽고 동료들과 ‘제대로 걷기’를 실천하기 위해 독서와 걷기를 함께하는 모임을 꾸렸다. “발걸음에 다음 발걸음이 적절히 따르도록 조화를 기해야만 비로소 잘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들은 브르통의 걷기 철학에 따라 목적의식 없는 순수한 걸음과 호흡에 신경을 집중하고, 걷기에 방해되는 요소를 모두 지운 채 우리 땅 이곳저곳을 걸었다. 

걷기는 국토대장정 이후 그의 일상 속에도 스며들었다. 하씨는 일정이 빠듯한 날에도 만 보 걷기를 자신과의 약속으로 정했다. 해외 일정으로 출국하기 전 여유가 있을 때는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걷는 사람, 하정우」는 걷기로 다져진 그가 걸었던 시간이 지니는 가치를 생생하게 담은 기록이다. 

그는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걷기를 통해 얻은 감정을 이야기했다. “어느 날 걷고 돌아오는 데 어린 시절 운동회를 마치고 갈 때의 느낌이 떠올랐어요. 기분 좋게 피곤하고, 집에선 엄마가 맛있는 밥을 해놓았을 것 같고. 오랫동안 잊었던 여러 감각들이 살아돌아오는 느낌이었죠.” “일상을 계속 그렇게 보내고 싶어 걷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 책을 통해 걷기가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일상인지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걷는 사람, 하정우」의 책날개에서는 그가 보행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셀 수 없는 걸음을 통해 만들어진 그의 다짐은 삶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길 위의 보도여행자로서 불확실함을 마주하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며 나아가자는 브르통의 조언이 다시금 떠오른다.

 

두 작가가 제시하는 ‘혼자 걷기’는 ‘여유’의 다른 말이다. 학자와 배우인 그들의 ‘걷기 예찬’이 한가롭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들은 독자들에게 걷기가 일깨우는 생각과 삶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 변주해보겠다. 당신은 ‘여유’를 갖기 위해 걸었던 기억이 있나.

 

글 민수빈 기자
soobn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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