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잃은 채 수단이 된 체험형 인턴제도

지난 2018년 1월 기준 청년 실업률은 8.9%다. 체감 실업률은 34%로 전체 청년의 1/3에 육박한다. 청년들은 실업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에 정부와 기업은 ‘체험형 인턴제도’를 도입했다. 흔히 ‘단기 인턴’이라 불리는 체험형 인턴은 짧게는 4주, 길게는 4개월간 기업 실무에 참여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현재 체험형 인턴제도는 청년의 취업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본 의도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선택 아닌 필수 된 직무 경험
쏟아지는 체험형 인턴 프로그램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50% 이상이 ‘인턴십 등 직무 관련 경험’과 ‘직무/전공 자격증’을 가장 중요한 스펙으로 꼽았다.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취업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 컨설팅 업체에서 체험형 인턴으로 활동한 전모(27)씨는 “요즘은 인턴 스펙이 없으면 이상하게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는 기업이 직무 적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구인포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 78.5%가 ‘직무 관련 경험’을 최우선 고려 사항으로 꼽았다. 겨울방학에 단기 컨설팅 RA로 활동했던 서울대 이연우(아동가족·15)씨는 “실무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방중 활동을 정하는 첫 번째 기준이었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인턴십 프로그램 시행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공공기관 및 공기업들이 채용한 체험형 인턴 수는 1만 6천187명이다. 1년 전보다 약 6천 명 증가한 수치다. 2019년 역시 마찬가지로, 연초부터 7천500명에 달하는 체험형 인턴 채용 계획이 발표됐다. 최악의 실업난 가운데 일자리를 제공하며 실무 경험까지 지원한다는 명목이었다. 기획재정부 인재경영과 차한원 사무관은 “일차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관심 있는 공공기관을 파악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민간 기업 역시 자체 홈페이지나 구인 사이트, 대학과의 산학 협력 등으로 체험형 단기 인턴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방학이 시작할 무렵이면 방중 인턴을 구하는 현수막을 대학 캠퍼스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삼성과 SK 등 주요 대기업들은 계열사별로 대대적인 대학생 인턴 채용에 나섰다. ‘사람인’에 체험형 인턴 모집 공고를 올린 모 기업 관계자는 “업무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시기에 체험형 인턴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대학교에 게시된 단기 인턴 모집 현수막이다.


계획 없이 진행되는 ‘단기 인턴’
활동 기간도, 급여도 모두 미지수?

 

실무 경험을 위한 만족스러운 선택지로 보였던 체험형 인턴제도지만, 운영 실태는 딴판이다. 무엇보다 정부와 민간 기업을 막론하고 체계적 프로그램 관리 및 운영이 부재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씨는 “활동 기간이나 내용 등이 지나치게 유동적이었다”며 “한 동료는 활동 기간이 끝나는 날 연장이 가능하겠냐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경우, 체험형 인턴 활동의 핵심인 실무 체험 자체가 부실하다. 최근 한국전력은 이틀짜리 체험형 인턴 프로그램을 제공해 논란을 불렀다. 해당 활동은 한전 소개와 사무실 견학 등에 머물렀다. 일부 인턴 활동은 잡무나 고위직의 일을 대리하는 수준에 그친다. 한 공기업에서 체험형 인턴 활동을 했던 정모(25)씨는 “특정 업무를 맡기보단 그때그때 주어지는 일을 수행했다”며 “팀장의 잡무를 대신하는 일도 잦았다”고 밝혔다.

민간 기업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체험형 인턴이 실무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설계해두지 않는다. 인턴들에게 단편적 업무를 주고 ‘알아서 해보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한 회계법인에서 체험형 인턴으로 활동했던 A씨는 “전체 업무 중 90%는 단순 보조업무에 불과했다”며 “인턴끼리만 한 팀으로 묶여 실무자와 접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부 민간 기업에서 체험형 인턴 관련 급여를 부정한 방식으로 지급한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은 인턴들의 식대나 활동비 등을 급여로 충당한다. 최근 한 대기업이 단기 해외 업무 체험 인턴십 프로그램 급여로 숙박비와 항공비를 충당하도록 요구한 사례가 알려졌다. 활동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않거나 빼먹는 일도 발생한다. 이씨는 “2월 말 근무를 시작했기 때문에 급여가 얼마 안 된다며 2월 급여분을 3월에 통합하겠다고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의 숨겨진 속내
실업률 낮추고, 싼값에 청년 사용하고

 

정부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에도 체험형 인턴을 양산하는 이유로 ‘여론을 의식한 일시적 실업률 개선’이 꼽힌다. 지난 2018년 8월 통계청 추산 청년 실업률이 10%로 발표된 이후, 청년 고용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다. 정부는 2018년 10월부터 대대적인 공공 단기 일자리 공급에 나섰다. 이후 실업률은 급속히 개선돼 2018년 12월에는 8%대로 떨어졌다. 이에 체험형 인턴 등 공공 단기 일자리가 실업률을 ‘수치상으로’ 낮추려는 도구로 이용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속성 없는 단기 일자리를 공급해 일시적으로 실업을 극복한 것처럼 꾸몄다는 말이다. 차 사무관은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마저 구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해 공공기관에서라도 돈을 벌며 실무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해주고자 하는 것”이라 해명했다.

민간 기업의 체험형 인턴 역시 청년을 위한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체험형 인턴제도는 기업이 청년인력을 값싸게 부리고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챙길 수 있도록 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고용노동부 청년취업지원과 정책문건에는 ‘체험형 인턴제도 적극 장려를 위한 보조금 지급’이 명시돼있다. 이에 민간 기업은 지원금을 챙기면서 동시에 청년 노동력을 싸게 활용하고 있다. 다수 체험형 인턴 경험자는 월 170만 원 정도를 받으며 하루 10시간 넘게 일했다고 증언했다. 전씨는 “매일 자정이 돼야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며 “실제 근무시간을 고려하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셈”이라 말했다.

채용 전환형 인턴은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체험형 인턴은 얘기가 다르다. 말 그대로 실무를 ‘체험’하는 것이기에 정규직 혹은 계약직 직원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존 직원들은 체험형 인턴을 잠시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해 홀대하기도 한다. A씨는 “직원들이 어차피 곧 나갈 사람이니 알 필요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산학 협력에 참여했던 한 기업은 마케팅 프로세스를 체험형 인턴에게 맡겨 아이디어만 갈취하기도 했다. 해당 인턴들에게 주어진 것은 수료증 한 장뿐이었다.

정부와 기업의 부실한 체험형 인턴 운영에 대응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 인턴십 프로그램 관련 법령 자체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청년 인턴제도가 근거하는 「청년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인턴’이라는 명시적 표현은 없다. 고용노동부의 ‘청년인턴제 시행지침’(아래 시행지침)에서야 인턴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그러나 시행지침은 구속력 없는 권고문에 불과하다. 정부는 기관별 업무가 상이하기 때문에 기관들이 알아서 인턴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차 사무관은 “각 공공기관이 업무에 따라 인턴 정원과 활동 내용을 결정한다”며 “중앙 정부에서 별도로 관리·감독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업무 내용이 어떻든 체험형 인턴이 대응할 근거는 없는 셈이다. 전씨는 “주위 인턴들은 상당한 노동량에 고통받고 있다”며 “체험형 인턴은 분명 노동법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인턴십 프로그램의 열정페이와 노동 착취 문제는 꾸준히 고발돼왔다. 체험형 인턴제도는 현재 청년 고용 정책이 그 목적과 얼마나 괴리돼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취업을 향한 청년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실질적으로 실무를 경험하고 직무 관련 지식을 넓힐 수 있는 인턴 활동이 필요하다.

 

 


글 강우량 기자
dnfid0413@yonsei.ac.kr

사진 정구윤 기자
guyoon121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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