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기본소득, 망국의 ‘포퓰리즘’이다

이건희 (국제관계·17)

기본소득의 유래는 16세기의 유토피아론으로 볼 수 있다. 이후에는 1848년 프랑스 혁명 과정과 20세기 전반에는 정치학자 러셀에 의해서도 1990년대에는 후기 자율주의자들과 인지자본주의 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언급됐다. 특히 1990년대에는 모두가 프롤레타리아임을 주장하며 분배정의와 인권의 문제를 넘어 부의 재생산 메커니즘에 대한 고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역사 속에서 기본소득은 자산조사와 근로에 대한 요구 없이 모두에게 개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으로 정의된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금민(56) 前 은평구 의원 후보와 2012년 대선에 출마한 김순자(63) 前 대통령 후보 등에 의해 제시됐으며, 최근 성남시에서 청년배당 등으로 정책화되면서 일반 시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에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언론 등에서 다루는 표층적인 담론을 먼저 살펴보고, 심층적인 측면에서 기본소득을 고찰하겠다

먼저, 기본소득은 비효율적이다. 왜 부자에게까지 지원하느냐는 피상적 논리를 벗어나더라도 기존의 선별적 복지보다 투자 대상 집중도가 떨어진다. 이는 목표효율성과 사회적 효용의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기본소득에만 의존하는 소수의 비윤리성을 넘어 사회 전반의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이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양상을 보면 포퓰리즘의 무책임성이 극대화된다. 질러놓고 보자는 식의 기본소득 공약은 특히 지난 대선 국면에서 팽배했다. 주목할 점은 포퓰리즘적 기본소득 정쟁이 무책임성을 확산시키고, 국민을 배제한 채 공약을 답보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심층적 측면에서도 기본소득 정책은 적절치 못하다. 첫째로, 복지의 목적은 인간의 자조(自助)에 있다. 즉, 본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책임지되 국가에서는 당사자의 자조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복지는 기초가 아닌 보충이며, 복지의 최종 목표는 모든 개인이 복지 정책의 대상에서 벗어남에 있다. 기본소득이 개인을 복지 정책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가? 둘째로, 현재 기본소득론의 기저에 있는 논리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현실 정책의 올바른 방향은 노동을 포기하게 하는 기본소득제공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에 필요한 노동 방식의 변화를 어떻게 교육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 정책은 산업의 변혁기에 교육을 받거나, 저임금을 견디면서라도 일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하는 국민들을 오히려 국가의 지원금에 안주하게 만드는 정책에 불과한 것이다. 셋째로, 기존의 노동을 통해 버는 돈을 국가가 제공한다면 누가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기본소득으로 인해 일어나는 비경제활동 인원의 증가는 도미노 현상처럼 주변에 확산돼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본소득은 헬리콥터 머니가 아니라 조세에 기반하고 있어 조세가 줄어들면 함께 붕괴한다. 기본소득의 제공으로 인한 근로 의욕의 저하가 양산할 경제성장의 둔화는 전체 파이를 줄인다. 심지어는 노동할 수 없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복지마저 담보할 수 없게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1795년 영국에서 시행됐던 스핀햄랜드(Speenhamland) 법의 실패라는 전례로 뒷받침된다.

기본소득의 대안으로는 일자리 복지가 있다. 일은 인간에게 자조, 존재, 자유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유일한 길이다. 청년배당보다는 일자리, 기본소득보다는 기본근로를 제공하는 것이 실정에 맞고 윤리적으로도 올바르다. 근로 능력이 있는 이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복지 정책이다. 지난 2016년 6월,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 부결에서도 이 점이 강조된다. 기본소득은 경제적 궁핍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 권태와 방탕이란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은 단순히 임금을 받는 행위에서 나아가, 가정과 커뮤니티에서 유대감을 형성하는 행위다. 일자리 복지 정책은 기본소득보장보다 얻는 것이 많다.

결론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비윤리적인 기본소득 제공은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정책논의의 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 필요한 곳에만 사용해도 부족한 복지 재원을 무차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정책이 된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고찰하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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