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기본소득을 적극 지지하며

김재정 (언홍영·17)

靑年. 고등학교 시절 사회문화에서나 보던 이 단어는 어느새 법적 성인이 된 나의 또래를 지칭하는 말이 됐다. 청년은 예로부터 인생에서 푸르다고 할 수 있는 시기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사실 나와 대한민국의 20대는 그리 푸르지 않다. 가혹한 입시 지옥에서 시달린 후 맞이한 1학년은 취업 따위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즐거웠고 신촌에서 맞이한 2학년은 다시 한번 새내기로 살 수 있다는 기분에 취해 있었다. 4년, 마냥 길어 보였지만 화살같이 지나간 절반의 대학 생활의 후유증은 ‘취준’이라는 새로운 지옥이었다. 취업이 아닌 진짜 공부를 하려던 입학할 때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꿈은 없지만 잘 먹고 잘살고 싶은, 어엿한 ‘대한민국 청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런데 이 취준, 제대로 시작도 못 했는데 한두 푼 드는 문제가 아니다. 스펙을 위한 자격증과 어학용 책은 비싸고, 면접에 필요한 정장이며 교통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라도 병행하면서 준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진로에만 전념하는 친구들을 보면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써도 괜찮을지 조바심이 난다. 고시라고 다를까. 소위 ‘일타’라 불리는 강사들의 인터넷 강의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고, 신림동이나 노량진 근처만 가도 사회의 푸른 시간이 노랗게 죽어가고 있다.

이런 청년들에게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도록 수당을 지급하자는 것이 바로 청년 기본소득 정책이다. 사실 공공부조를 통해 이미 가구의 소득 수준이 낮은 어려운 이들에게는 기초생활수급 제도 등으로 일정하게 소득을 유지해주고 있다. 그러나 청년 기본소득의 핵심은 소득 제한 없이 시도별 선정 기준에 맞는 이들을 선발해 수당을 지급한다는 점이다. 기존 우리나라의 금전적 지원 정책의 경우 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선별해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청년 수당의 경우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예시로 경기도의 청년배당을 살펴보면 2019년 기준으로 만 24세가 되는 3년 이상의 거주 청년에게 지역 화폐를 이용해 10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한다. 해마다 만 24세가 될 청년들을 조사할 수 있으므로 다음 해의 지급 예산을 미리 편성할 수 있고, 지역 화폐를 지급함으로써 경기도 내의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청년 기본소득 정책이 완벽한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새롭게 시행된 금전적 지원정책이기에 새로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문제 역시 안고 있으며, 아무 제한 없이 지원한다는 점 때문에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부유층 역시 수혜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예산 편성이 가지는 문제의 경우, 비효율적으로 지급되고 있는 일자리 예산을 정리함으로써 일정 부분 해결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의 광범위함은 별개의 문제이다. 중산층 이상의 가구에 속하는 청년들에게 해당 수당이 지급된다면 더 수혜가 시급한 취약계층을 향한 지원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청년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핵심이다.

청년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는 당연히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 부처는 해당 정책에 사용되는 예산 배당에 있어 필요한 복지 예산을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낭비되고 있는 예산을 먼저 확인하고 감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예산을 청년수당에 편성함으로써 국가의 자원이 꼭 필요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는 인식을 형성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진로를 결정할 때, 문과와 이과 중 문과를 결정하고 진학할 학과를 결정하는 데에 관여한 것은 나의 꿈이었고, 목표였다. 그러나 꼭 3년이 흐른 지금 각종 꿈을 품고 모인 우리대학교의 학우들 사이에서도 취업에 유리한 과에 따라 서로를 저울질하는 문화가 팽배해있다. 내 꿈 하나 좇아가도 바보가 되는 21세기 우리나라에서 현실이라는 벽에 부닥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적어도 당장 내일을 살아갈 수당을 지원하는 일이 22살의 나에게는 아직 좋다. 혹자는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를 얘기할 수도 있고, 또 혹자는 국가의 예산 낭비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청년 기본소득에 담겨있는 뜻, 법적 성인인 청년이 취업이 되기 전까지는 기본적인 소득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길 바란다. 개인의 탓이 아니라 구조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보호와 소득 보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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