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여학생회 폐지 과정과 앞으로의 방향을 살펴보다

지난 1월 7일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및 총여관련규정 파기, 후속기구 신설의안’(아래 총여 폐지의 안)이 찬성 78.92%로 가결됐다. 이로써 1988년 출범 이후 31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던 우리대학교 총여학생회(아래 총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우리신문사는 총여가 사라진 과정을 짚어보고 총여가 폐지된 타 대학의 사례에 비춰 총여 폐지 이후 상황을 전망하고자 한다.

 

은하선 강연부터 총여 재개편까지

 

총여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18년 5월 24일, 29대 총여 <모음>(아래 <모음>)이 은하선 작가를 ‘제2회 인권축제 <다시만난세계>’의 연사로 초청하면서 촉발됐다. 일부학생들은 은 작가가 과거 신성모독과 남성혐오 발언을 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강연을 반대했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은 작가의 강연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에 반발한 30여 명의 학생들은 강의실 밖에서 농성했다. <관련 기사 1813호 ‘강연, 농성, 격론’>

강연 후인 5월 25일부터는 온·오프라인에서 ‘<모음> 퇴진 및 재개편 운동’이 진행됐다. ‘<모음> 퇴진 및 재개편 추진단’은 재적생 1/10의 서명을 받아 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 ‘<모음> 퇴진 및 총여학생회 재개편 학생총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열린 55대 제15차 중운위는 7일간 이어졌다. 논의 결과, 중운위는 해당안을 ‘총여학생회 재개편 학생총투표’(아래 재개편 총투표)의 안으로 변경했다. 해당 안은 6월 2일 최종 가결됐다. <관련 기사 1814호 ‘표 끝에 선 총여학생회’>

이에 따라 6월 13~15일 재개편 총투표가 실시됐다. 투표 결과 재적인원 55.16%(1만 4천285명) 참여, 투표 인원 82.24%(1만 1천 748명)의 찬성으로 해당 안이 가결됐다. <모음>은 입장문을 통해 “총투표 결과를 받아들인다”며 “‘총여학생회 재개편 TFT’를 공개모집,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6월 26일에는 ‘총여학생회 폐지위원회’(아래 총폐위)가 결성되며 총여 폐지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총폐위 측은 ▲은하선 강연 후 제대로 된 사과가 이뤄지지 않은 점 ▲당시 총여학생회장의 거취를 밝히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총여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총폐위는 6월 29일부터 온라인으로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및 총여관련규정파기, 후속기구 신설에 대한 학생총투표 요청안’(아래 총투표 요청안)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30대 총여학생회 <PRISM> 당선,
그리고 총여 폐지

 

재개편TFT와 총투표 요청안 서명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선본 <PRISM>은 투표수 4천432표 중 3천2명(67.73%)의 지지를 얻어 30대 총여로 당선됐다. 30대 총여학생회장 이민선(신학·16)씨는 당선 직후 우리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총여의 존치 여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재개편 TFT에서 논의된 내용을 수용하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총여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12월 10일, 총폐위는 6월부터 진행된 총투표 요청안에 서명한 2천642명의 명단을 비상대책위원장 박요한(신학·16)씨에게 전달했다. 총투표 요청안은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칙」(아래 회칙)에서 총여 삭제 ▲성폭력담당위원회 신설의 내용을 담고 있다. 56대 제1차 중운위에서 일부 중운위원은 회칙 제18장*을 이유로 회칙 개정을 수반하는 총투표 안건은 중운위에서 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중운위원들은 회칙 제3장**을 근거로 안건을 중운위에서 심의하지 않고 1주일 내에 총투표 실시를 공고해야 한다고 맞섰다.

12월 13일 속개된 중운위에서는 총투표 요청안을 논의하던 중 총투표 요청안에 대한 연서명 명단(아래 서명안) 원본이 유실된 것을 발견했다. 중운위원의 의견은 원본이 유실됐으므로 서명안이 유효하지 않다는 측과 이미 학생복지처에서 확인이 끝났으므로 서명안이 유효하다는 측으로 갈렸다. 대립이 계속되자 박씨는 표결을 진행했으며 재적 14단위 중 13단위가 ‘유효’에 투표함에 따라 서명안의 유효성은 인정됐다.

표결 후에는 총투표 요청안을 중운위 내부에서 심의할 필요가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다시 이어졌다. 중운위원들 간 대립이 지속되자 박씨는 ‘총투표의 안건으로 회칙개정의 안을 상정·의결하여 회칙을 개정할 수 있다’는 안을 표결에 부쳤다. 재적 13단위 중 12단위 찬성으로 12월 18일, 총여 폐지의 안에 대한 총투표 실시 공고가 이뤄졌다. 이에 <PRISM>은 긴급 성명문을 발표했다. <PRISM>은 “중운위는 이미 총투표 실시를 결정한 채 표결을 진행했다”며 “총투표 의결은 총여회원의 의지와 자치기구의 권리를 정당성 없이 지운 행위”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0호 ‘중운위, 약 26시간의 논의 끝에 총투표 실시 의결’> 이후 1월 2~4일 총투표가 시행됐으며, 투표 결과 총여 폐지가 결정됐다. 

 

▶▶지난 1월 24일 우리대학교 정문에서 개최된 ‘학생총투표 규탄 기자회견’에서 30대 총여학생회장 이민선(신학·16)씨가 성명문을 낭독하고 있다.


총여 폐지가 확정된 후 <PRISM>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총투표 실시는 다수의 힘으로 학내 소수자 단체를 없애고자 한 월권”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게시했다. “재개편 TFT는 이어갈 것이며 총여와 총여회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소통하겠다”는 내용도 이어졌다. 12월 20~21일에는 총여 긴급 간담회가, 1월 24일에는 ‘총투표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이씨는 총폐위가 6월부터 총여 폐지의 안에 대한 서명을 받은 점을 들어 “총폐위는 처음부터 총여 재개편을 기다릴 용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총폐위를 비판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0호 ‘총여학생회, 총투표 결과 규탄 기자회견 열어’>

 

사라진 총여학생회‘들’

 

우리대학교를 마지막으로 서울권 대학의 총여는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총여의 시초격인 고려대와 서울대의 총여학생회는 지난 1984년에 구성됐으나 각각 1989년과 1993년에 사라졌다. 당시 학생운동의 주요 관심사였던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등의 거대담론 속에서 여성운동을 외치는 총여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에 따르면 1992년 고려대 여학생위원회(이하 고려대 여위)가 총학생회 산하 특별기구로 설립될 때에도 위와 같은 이유로 여성운동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고려대 여위 측은 총여 폐지 이후의 흐름에 대해 “총여가 해소된 후 여위가 자리잡기까지도 많은 반발과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대 총여 역시 학생운동의 맥락 속에서 그 부차적인 위치에 의문이 제기되던 중, 입후보자 부재로 폐지됐다. 그 후 여성운동 연합체인 ‘관악여성주의자모임’이 총여의 뒤를 이었다. 지난 2015년에는 총학생회 산하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가 설치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총여 폐지 흐름은 2010년대에 들어서 가속화됐다. 그 원인으로는 ▲학생들의 파편화 ▲총여 운영 문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쉬가 꼽힌다. 지난 2013년에는 건국대, 2014년에는 중앙대에서 몇 년간 입후보자가 없어 총여가 사라졌다. 2014년 홍익대에서도 총여가 본래 취지와 맞지 않게 운영됐다는 비판과 함께 폐지됐다. 그리고 지난 2018년 성균관대와 동국대, 2019년에는 우리대학교에서까지 총여의 명맥이 끊겼다. 

서울대 사회학과 배은경 교수는 “최근 1년간의 총여 폐지 흐름은 20대 남성들의 안티페미니즘과도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며 “뿐만 아니라 토론과 협력을 통한 공동체 형성보다 개인의 효율을 우선시하는 젊은 세대의 분위기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시립대, 숭실대, 경희대, 한양대에서는 총여가 형식적으로만 남아있을 뿐, 장기간 공석이다. 사실상 서울 시내 대학교에서 총여가 ‘전멸’한 것이다.

 

총여 없이 성평등한 학교 만들기?
타학교에 비춰보는 연세의 방향

 

각 학교의 총여 대체기구는 ▲여학생 복지 ▲성평등 캠페인 ▲성폭력 사건 공론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중앙대는 2014년 총여가 폐지되며 총학 산하 특별자치기구인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했다. 중앙대 인권센터 이정민 전문연구원은 “현재 성평등위원회에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잘 진행하고 있다”며 “총여 후속기구로서의 성평등위원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대체기구가 총여의 역할을 이어받아 성평등한 학내 문화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대체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예산 부족 ▲의결권 부재 ▲인지도 부족으로 독립적인 회칙 기구인 총여만큼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예산을 따로 배정받는 총여와 달리, 총학 산하기구는 총학 예산 일부를 배정받는다. 대체기구가 자금난에 시달리는 이유다. 홍익대 성인권위원회 측은 “예산 부족과 학내 인식 부족으로 인권 단체로서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체기구는 학생사회 내에서 공식적인 의결권이 없다. 고려대 여위 측은 “총여와 달리 여위는 의결권이 없어 담론 형성에 목소리를 낼 힘이 부족하고 성평등 사업을 학교 전체 차원에서 실행하기 어렵다”며 의결 권한 부재의 한계를 지적했다. 

예산 부족과 의결권 부재로 활동에 제약이 있으니 자연스레 인지도는 낮아진다. 중앙대 김정인(유아교육·17)씨는 “성평등위원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며 “전반적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많이 낮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여위 측 또한 “학내 인지도가 부족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여위의 존재를 몰라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비협조적인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총여와 성폭력담당위원회 사이,
성평등의 공백

 

총투표 결과, 개정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칙」 제15장 제86조에 의거해 총학생회장단 산하의 성폭력담당위원회가 신설된다. 그러나 총여가 폐지된 1월부터 지금까지 성폭력담당위원회에 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총여 폐지와 성폭력담당위원회 신설 사이의 공백은 길어지고 있다.

지난 2월 25일 열린 임시 중운위에서 성폭력담당위원회가 언급됐다. 문과대 학생회장 최승혜(독문·17)씨는 성폭력담당위원회 논의를 촉구했다. “오리엔테이션과 새내기배움터(아래 새터)가 몰려 있는 새내기맞이 기간에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에는 총여가 매뉴얼을 가지고 전문적으로 처리했지만, 지금은 공백이 생겨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오티, 새터기간 성폭력 사건 빈도에 대한 물음에 성평등상담소 최지나 직원은 “오티와 새터기간에 성폭력 신고가 잦은 편이었다”고 답했다. 실제로 이번 새내기맞이 행사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단과대 관계자 A씨는 “학생회 차원에서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함을 느꼈다”며 “도움받을 공식 기구도 없어 사건 해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비상대책위원장 박요한(신학·16)씨는 “지난 1~2월에 성폭력담당위원회 관련 논의가 시작됐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합의가 이뤄져도 보궐 선거가 있어 조심스럽다”며 “본격적인 논의는 보궐 선거를 통해 총학생회가 확정된 이후에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성폭력담당위원회에 관한 논의는 빨라도 4월 이후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성폭력담당위원회가 총여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총여는 성폭력 문제 해결 외에도 ▲여학생 복지 ▲소수자 인권 보호 ▲학내 성평등 인식 개선 등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최 직원은 “총여는 성폭력 담당 기구가 아니라 학내 소수자인 여학생을 보호하고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기구였다”며 “총여의 대체·후속기구로 성폭력담당위원회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성평등센터 노정민 전문상담원 역시 총여 후속기구가 성폭력 사건 처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노 전문상담원은 “사후 대처만이 아닌 사건을 예방하는 역할, 즉 대학사회 내에 성평등한 문화를 정착하는 사업을 총여의 대체기구가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문상담원은 “총여는 없어졌지만, 학생들이 주체가 돼 학생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학내 성평등 문화를 확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내 성평등은 총여의 유무와 관계없이 달성돼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총여가 사라진 지금, 현재 우리대학교 성평등은 기로에 서 있다.

 

* 제18장(회칙 및 세칙) 제104조 (회칙 개정안의 의결) 
① 회칙 개정안은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하고 학생총회, 학생총투표, 확대운영위원회 중 하나에서 의결한다.
② 회칙 개정안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의결한다.
1. 학생총회에서 본회의 재적인원 10분의 1 이상의 출석, 출석인원 과반수 찬성
2. 학생총투표에서 본회의 재적인원 과반수 참여, 참여인원 과반수의 찬성
3.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출석, 출석인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 제3장(학생총투표) 제19조(실시) ① 학생총투표는 확대운영위원 1/2, 중앙운영위원회 2/3, 본회의 회원 1/10 이상 혹은 총학생회장의 요구가 있을 때 총학생회장이 1주일 안에 총투표 실시를 공고한다. 

 

 

 

글 이승정 기자
bodo_gongju@yonsei.ac.kr
박제후 기자
bodo_hooya@yonsei.ac.kr

사진 하광민 기자
pangm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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